2023. 11. 23. 17:47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욥기
목차
욥기 18:1-21
찬송가 372장 그 누가 나의 괴롬 알며
우리가 말하리라
욥의 말에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합니다.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에 가서 말의 끝을 맺겠느냐 깨달으라 그 후에야 우리가 말하리라(1-2절)" 빌닷은 "너희가 어느 때에 가서 말의 끝을 맺겠느냐"라고 하면서 깨달으라고 합니다. 말을 좀 그만하고 이제는 깨달으라는 뜻입니다. 그 후에야 우리가 말할 것이라고 합니다. 말을 그만 두어야 말을 하지 않겠느냐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빌닷은 상대방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상대방이 말을 하면 말의 내용을 깊이 생각하고 그 마음을 읽으려고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어찌하여 우리를 짐승으로 여기며
"어찌하여 우리를 짐승으로 여기며 부정하게 보느냐(3절)" 빌닷은 욥이 자기들을 짐승으로 본다고 합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친구들의 마음을 가리어 깨닫지 못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주께서 그들의 마음을 가리어 깨닫지 못하게 하셨사오니 그들을 높이지 마소서(17:4)" 이것을 빌닷은 욥이 그들을 짐승 취급했다고 여겼습니다. 사실은 지각이 없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짐승과 다름 없습니다. 빌닷은 욥의 이 말에 분개했습니다. 그런데 분개하기 전에 욥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정말 우리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물었어야 했습니다. 욥은 사실을 말했는데 빌닷은 욥이 자기들을 무시한다면서 분개부터 했습니다.
울분을 터뜨리며 자기 자신을 찢는 사람아
그러면서 욥을 공격했습니다. "울분을 터뜨리며 자기 자신을 찢는 사람아 너 때문에 땅이 버림을 받겠느냐 바위가 그 자리에서 옮겨지겠느냐(4절)" 빌닷은 욥에게 울분을 터뜨리며 자기 자신을 찢고 있다고 합니다. 욥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해도 아무 영향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욥이 헛된 일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런 욥을 악인이라고 합니다. "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의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이요 그의 장막 안의 빛은 어두워지고 그 위의 등불은 꺼질 것이요(5-6절)" 악인의 빛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빛이 아니기 때문에 꺼질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맞는 말입니다만 욥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욥의 빛이 꺼진 것 같은 상황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잠시 욥에게 고난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욥이 악인이라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그렇지 않아도 빛이 꺼진 것 같아 괴로워하는 욥에게 너는 악인이라고 정죄하는 말입니다.
그가 미련한 꾀에 스스로 빠질 것이니
"그의 활기찬 걸음이 피곤하여지고 그가 마련한 꾀에 스스로 빠질 것이니(7절)" 악인은 활기찬 것 같아도 금방 기력이 없어집니다. 게다가 악인은 항상 자기 꾀에 스스로 빠집니다. 자기 말로 자기가 정죄를 당하고 자기가 파놓은 함정에 자기가 빠지는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만 욥이 기력이 없어진 것이나 욥이 함정에 빠진 것 같이 된 것은 욥이 악인이라서가 아닙니다. 빌닷은 욥을 악인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그의 발이 그물에 빠지고 올가미에 걸려들며 그의 발 뒤꿈치는 덫에 치이고 그의 몸은 올무에 얽힐 것이며 그를 잡을 덫이 땅에 숨겨져 있고 그를 빠뜨릴 함정이 길목에 있으며(8-10절)" 악인은 항상 자기의 악으로 자기가 망합니다. 악은 그 어떤 일도 이룰 수 없습니다. 악이 악을 멸합니다. 악은 속성 상 발을 그물에 빠뜨리고 올가미로 걸고 덫을 놓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빠지는 것은 선이나 의가 아닙니다. 바로 악입니다. 악이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을 죽이려고 했던 사망세력은 스스로를 죽이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음이 죽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런데 욥에게 이것이 적용이 되는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욥을 괴롭히는 악에게 이것이 적용이 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려는 악이 스스로를 죽였듯이 욥을 괴롭히는 악이 스스로를 패하게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승리가 나타날 것입니다. 빌닷은 이것을 욥에게 말할 것이 아니고 욥을 괴롭히는 악에게 말했어야 했습니다.
재앙을 이미 당하고 있는 욥에게
"무서운 것이 사방에서 그를 놀라게 하고 그 뒤를 쫓아갈 것이며(11절)" 욥은 잠으로 고통에서 벗어나 쉼을 얻으려고 할 때(7:13-14) 하나님께서 자기를 놀래키신다고 고백했습니다. 빌닷은 이러한 욥의 고통을 가지고 네가 악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 아니냐고 합니다. 무서운 것이 사방에서 그를 놀라게 하고는 그런 의미입니다. 욥이 당하는 괴로움에 대해서 나눈 것을 가지고 욥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악한 것입니다. "그의 힘은 기근으로 말미암아 쇠하고 그 곁에는 재앙이 기다릴 것이며 질병이 그의 피부를 삼키리니 곧 사망의 장자가 그의 지체를 먹을 것이며(12-13절)" 욥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끊어진 것 같이 되었습니다. 마치 기근으로 힘이 쇠한 것처럼 되었습니다. 재앙을 이미 당하고 있습니다. 욥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부에 종기가 났습니다. 질병이 피부를 삼킨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사망의 장자라고 합니다. 사망의 장자라는 것은 피부가 썩어가는 질병을 가리킵니다. 피부가 썩는 것이 마치 시체가 썩는 것과 같다고 해서 사망의 장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욥의 피부가 짓무르고 고름이 맺히고 그 자리가 가려워서 긁으니 다시 상처가 덧나고 하는 것이 마치 그런 질병처럼 보였습니다. 욥은 그렇게 죽음과 가까웠습니다. 문제는 욥이 악인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빌닷은 욥의 처지를 묘사하면서 악인이 바로 그렇다고 하고 있습니다. 악한 일을 당한다고 다 악인이 아닌데 빌닷은 욥이 당하는 외면의 모습만 보고 그를 악인이라고 한 것입니다.
공포의 왕, 유황
"그가 의지하던 것들이 장막에서 뽑히며 그는 공포의 왕에게로 잡혀가고 그에게 속하지 않은 자가 그의 장막에 거하리니 유황이 그의 처소에 뿌려질 것이며(14-15절)" 여기서 공포의 왕은 사망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악인이 사망의 아들에게 괴롭힘 당하다가 비참하게 죽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악인은 혼자 망하는 것이 아니고 그의 온 가족이 망한다고 합니다. 그에게 속하지 않은 자가 그의 장막에 거하리니가 그런 뜻입니다. 유황이 그의 처소에 뿌려진다는 것은 악인이 마치 소돔과 고모라처럼 망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유황불로 멸망당했습니다. 이것은 욥을 대놓고 저주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시들 것이며... 사라지고... 쫓겨날 것이며...
"밑으로 그의 뿌리가 마르고 위로는 그의 가지가 시들 것이며 그를 기념함이 땅에서 사라지고 거리에서는 그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을 것이며(16-17절)" 악인은 다시 소생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뿌리가 마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악인은 가지도 시들게 됩니다. 그렇게 되어 열매를 맺을 수 없게 됩니다. 그가 하는 것이 다 허무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악인은 일시적으로 이 세상에서 유명한 자처럼 높아질 수도 있는데 결국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광명으로부터 흑암으로 쫓겨 들어가며 세상에서 쫓겨날 것이며 그는 그의 백성 가운데 후손도 없고 후예도 없을 것이며 그가 거하던 곳에는 남은 자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18-19절)" 악인은 그렇게 소멸될 것입니다. 악인들의 후손은 점점 소멸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악인은 자기뿐만 아니라 온 가문이 다 멸망될 것입니다. 그 이름을 기릴 자가 하나도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의 운명에 서쪽에서 오는 자와 동쪽에서 오는 자가 깜짝 놀라리라 참으로 불의한 자의 집이 이러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처소도 이러하니라(20-21절)" 그의 운명에 서쪽에서 오는 자와 동쪽에서 오는 자를 개역한글에서는 그의 날을 인하여 뒤에 오는 자가 앞선 자의 두려워하던 것같이 놀라리라라고 번역했습니다. 이것은 동시대 사람과 후대 사람이 놀란다는 뜻입니다. 개역개정의 뜻은 악인의 운명을 보고 서쪽에서 오는 사람도 놀라고 동쪽에서 오는 사람도 놀란다는 뜻입니다. 어떤 풍습에 사는 사람이든지 다 놀란다는 뜻입니다. 두 가지 해석 다 악인의 결국을 보고 사람들이 놀란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불의한 자의 결국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처소도 그렇게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아예 도시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소돔과 고모라처럼 된다는 뜻입니다.
당하고 있는 고통으로 논박 거리를 삼는 악함
빌닷의 이 말은 욥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라서 더 뼈아픕니다. 욥은 지금 열 명이나 되었던 자식들이 다 죽은 상태입니다. 그런 욥에게 그의 백성 가운데 후손도 없고 후예도 없을 것이라는 말은 욥의 마음을 후벼팠을 것입니다. 욥이 그 일을 지금 당하고 있는데 악인이 그런 일을 당한다고 하니 그 일을 당하고 있는 욥으로서는 영락없이 악인의 본보기가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결백을 주장할 수도 없게 그렇게 논박을 하는데 안 그래도 고통스러운 사람에게 그 고통을 가지고 공격한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악한 것입니다. 빌닷은 욥을 이렇게 무참히 공격했습니다. 위로하러 왔다가 위로를 받지 않는다고 이렇게 무참히 공격하니 사람은 참 악합니다. 이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항상 자기 중심적이고 논박에 지기 싫어하고 자기 자존심을 위해서는 고통을 당하는 사람의 고통도 공격거리로 삼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부패성입니다.
말로 고통 당하는 욥과 예수 그리스도
나중에 예수님 당시 종교지도자들도 똑같은 짓을 저질렀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신데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그를 죄인이라(요 9:24)고 했습니다. 자기들이 무시하는 사마리아 사람이라(요 8:48)고 하기도 했습니다. 더한 말도 했는데 예수님보고 귀신이 들렸다(요 8:48)라고 하기까지 했습니다.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 입는다고 하기도 했습니다(마 12:24). 나중에는 예수님이 신성모독을 했다고 정죄하기도 했습니다(마 26:65). 그런데 이 비방을 누구에게 받았느냐, 바로 하나님을 누구보다 잘 섬긴다고 자부하는 당시 종교지도자들, 즉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에게 이런 비방을 받았습니다. 욥처럼 말입니다. 욥도 당시 지혜자라고 하는 각 지역에서 유명한 사람들,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와서 말로 욥을 이렇게 비방했습니다. 이러한 욥의 고난은 예수님의 고난을 예표합니다(박윤선, 욥기 주석, 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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