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욥기 16장 18절 - 17장 16절 |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시니라, 중보자와 담보물

2023. 11. 22. 15:12성서유니온 매일성경/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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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욥기 16:18-17:16

    찬송가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땅에는 안식이 없음, 하늘에 계신 중보자

    욥의 말이 계속 이어집니다. 앞에서 욥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대적하시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묘사했습니다. 이어서 욥은 땅에서는 안식이 없다고 합니다. "아 내 를 가리지 말라 나의 부르짖음이 쉴 자리를 잡지 못하게 하라(16:18)" 땅에서는 안식할 수 없다는 말을 땅을 향한 명령으로 표현합니다. 욥의 이 말은 땅이 자기 피를 가리려고 하는 시도를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부르짖음이 땅에서 쉴 자리를 잡는 것 또한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늘을 바라봅니다.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시니라(16:19)" 욥은 자기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다고 합니다. 욥은 하늘에 계시는 중보자를 바라봅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3-34)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하나님 우편에 계시면서 우리를 위해서 증언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욥이 땅에서 안식을 찾지 않겠다는 것은 곧 하늘에서 자기를 위해 중보하시는 예수님 안에서 안식을 찾겠다는 말입니다. 욥이 중보자의 이름을 예수님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고통을 당하면서 욥은 중보자를 알고 바라보는 깊이가 더 깊어졌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중재자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고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니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와 인자와 그 이웃 사이에 중재하시기를 원하노니(16:20-21)" 욥이 중보자를 의지하는 깊이는 굉장히 깊어졌습니다. 어디까지 깊어졌냐면 하나님과 사람 사이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중보자가 필요하다는 데까지 깊어졌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진술입니다. 에베소서 2장에 보면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 없던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습니다. 하나가 되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은 사람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막힌 담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막힌 담을 중보자이신 예수께서 허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각 사람이 예수님과 연결되고 예수님과 연결되므로 사람과 사람이 하나를 이루는 것입니다.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렇게 하나가 된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몸이 되어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됩니다.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와 인자와 그 이웃 사이에 중재하시기를 원하노니(16:21)" 욥이 깨달은 대로 진술한 이 말씀이 참 깊은 말씀인 것입니다. 욥은 끊임없이 자기를 조롱하는 친구들의 적대감이 없어지는 것은 오직 하늘에 계신 중보자의 중보로만 가능함을 인식하고 진술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 누구도 자기 힘으로 사람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인간적인 사랑은 가능하겠지만 신적인 사랑,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랑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예수님을 의지해서 예수님 안에서 그를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고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사랑입니다. 

     

    매일성경 | 욥기 16장 18절 - 17장 16절 |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시니라, 중보자와 담보물

    담보물을 주소서

    "수년이 지나면 나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갈 것임이니라(16:22)" 이 구절의 원문에는 "왜냐하면"이 들어있습니다. 그가 중보자에게 중재를 의뢰한 것은 자기가 수년이 지나면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적대감으로 인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욥은 자기 기운이 쇠하여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기운이 쇠하였으며 나의 이 다하였고 무덤이 나를 위하여 준비되었구나(17:1)" 욥은 죽음을 가깝게 느낄만큼 고통으로 쇠약해져 있었습니다. "나를 조롱하는 자들이 나와 함께 있으므로 내 눈이 그들의 충동함을 항상 보는구나 청하건대 나에게 담보물을 주소서 나의 손을 잡아 줄 자가 누구리이까(17:2-3)" 그런데 욥을 조롱하는 자들이 함께 있습니다. 욥은 자기 마지막을 조롱하는 자들과 함께 있는 보내고 있다는 것도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웠습니다. 욥은 이 일에 있어서도 하나님께 해결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담보물을 달라고 합니다. 담보물은 자기가 옳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물건입니다. 보증금 같은 것입니다. 여기서 손을 잡아 준다는 것은 보증해준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보증해주시는 분은 바로 중보자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히 7:22)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으로서 영원히 제사장의 직분, 사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직분을 수행하십니다. 그것을 히브리서는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고 말씀합니다. 욥은 이러한 보증을 하나님께만이 아니라 사람에게까지 보여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불명예스럽게 조롱 가운데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이 참으로 수치스럽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그들의 마음을 가리어

    순간 욥은 아,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깨닫지 못하게 하심이구나 하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주께서 그들의 마음을 가리어 깨닫지 못하게 하셨사오니 그들을 높이지 마소서 보상을 얻으려고 친구를 비난하는 자는 그의 자손들의 눈이 멀게 되리라(17:4-5)"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눈이 먼 것과 같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깨닫지 못하게 하시는 것은 그들을 향한 심판이기도 합니다.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상태는 분명 심판을 받은 상태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욥의 친구들은 욥을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자의 자손들은 눈이 멀게 되리라는 말씀은 진리입니다. 욥이 친구들을 저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친구들처럼 하나님께서 깨닫지 못하게 하시는 자들, 그런 자들은 비유적으로 그들의 자손들이라 할 수 있스빈다. 그런 사람들은 눈이 멀어 보아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고치셔서 보게 하셨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요한복음 9장입니다.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40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만약 바리새인들이 자기들이 맹인인 것을 진정 깨달았다면 예수님께 나아가서 고쳐주시기를 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도 맹인인가 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예수님은 너희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심으로 그들이 고침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마치 이것처럼 욥의 친구들은 알지 못하면서 깨닫지 못하면서 본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있지 않은 욥의 허물을 있다고 가정하고 욥을 치고 있습니다. 보지 못하면서 보는 것처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맹인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니라

    "하나님이 나를 백성의 속담거리가 되게 하시니 그들이 내 얼굴에 침을 뱉는구나 내 눈은 근심 때문에 어두워지고 나의 온 지체는 그림자 같구나 정직한 자는 이로 말미암아 놀라고  없는 자는 경건하지 못한 자 때문에 분을 내나니 그러므로 의인은 그 을 꾸준히 가고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니라 너희는 모두 다시 올지니라 내가 너희 중에서 지혜자를 찾을 수 없느니라(17:6-10)" 욥이 당하는 고통이 계속 가중되고 있는데 특히 자기의 마지막이 백성의 속담거리가 되고 사람들이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것 같은 상황이라는 것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께서 그대로 끝내시지 않으실 것을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의인은 그 길을 꾸준히 갈 것이고 점점 힘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을 육체에는 희망이 없음

    "나의 이 지나갔고 내 계획, 내 마음의 소원이 다 끊어졌구나 그들은 밤으로 을 삼고  앞에서 어둠이 가깝다 하는구나 내가 스올이 내 집이 되기를 희망하여 내 침상을 흑암에 펴놓으매 무덤에게 너는 내 아버지라, 구더기에게 너는 내 어머니, 내 자매라 할지라도 나의 희망이 어디 있으며 나의 희망을 누가 보겠느냐(17:11-15)" 그러나 욥은 자기 계획과 소원이 다 끊어졌다고 느낍니다. 그러면서 이 땅에는 소망이 없음을 다시 진술합니다. 스올이 내 집이 되기를 희망하여 내 침상을 흑암에 펴놓으며 이런 진술은 자기가 그렇게 된다는 것이 아니고 땅에 희망을 갖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이 나의 희망이 어디 있으며 나의 희망을 누가 보겠느냐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흙 속에서 쉴 때에는 희망이 스올의 문으로 내려갈 뿐이니라(16절)" 이 말은 육체에는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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