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욥기 19장 1-29절 | 사면으로 둘러싸여 무너뜨림을 당하고 희망이 나무 뽑듯 뽑혔지만 소망을 잃지 않는 욥

2023. 11. 24. 06:41성서유니온 매일성경/욥기

목차


    욥기 19:1-29

    찬송가 170장 내 주님은 살아계셔


    말로 나를 짓부수기를 

    빌닷의 말에 욥이 대답합니다.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가 내 마음을 괴롭히며 말로 나를 짓부수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1-2절)" 빌닷의 말은 욥을 심히 괴롭게 했습니다. 그 말은 철거기계가 집을 짓이겨서 부수듯이 욥의 마음을 부서뜨렸습니다. 그렇지만 욥은 그를 치는 말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것도 대단합니다. 왜냐하면 주변에서 계속 네가 잘못이라고 하면 사람이 아무 잘못이 없다고 하더라도 내가 잘못인가 이렇게 마음이 기울어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가스라이팅이라고 합니다. 사리분별이 흐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계속 붙들고 믿음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허물이 내게만 있느냐

    "너희가 열 번이나 나를 학대하고도 부끄러워 아니하는구나 비록 내게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그 허물이 내게만 있느냐 너희가 참으로 나를 향하여 자만하며 내게 수치스러운 행위가 있다고 증언하려면 하려니와 하나님이 나를 억울하게 하시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신 줄을 알아야 할지니라(3-6절)" 욥의 친구들이 욥을 학대한 것은 분명 잘못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욥이 만약 허물이 있다면 그들도 허물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에게 그 재난에 상응하는 큰 죄가 있다고 했지만 욥에게는 그런 죄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욥도 자기가 죄인임을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크고 초자연적이고 연속적인 재난을 불러온 죄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가 죄인이라면 친구들도 죄인인 것인데 친구들은 자만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욥에게 수치스러운 행위가 있다, 재난에 합당한 큰 죄가 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욥은 이것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자기는 이 재난의 원인을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시는 것입니다(요 9:1-3). 욥은 친구들에게 그것을 좀 알라고 촉구합니다. 그러나 친구들은 거기까지 생각할 깊이가 없었습니다. 

    내 희망을 나무 뽑듯 뽑으시고

    "내가 폭행을 당한다고 부르짖으나 응답이 없고 도움을 간구하였으나 정의가 없구나 그가 내 을 막아 지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내 앞길에 어둠을 두셨으며 나의 영광을 거두어가시며 나의 모를 머리에서 벗기시고 사면으로 나를 헐으시니 나는 죽었구나 내 희망을 나무 뽑듯 뽑으시고(7-10절)" 욥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사실 욥은 친구들에게 말로 폭행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지만 응답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구했으나 하나님께서 신원해주지 않으셨습니다. 정의가 없구나는 그런 뜻입니다. 정의가 세워지면 억울하게 폭행 당한 사람의 억울함이 풀립니다. 그러나 그 억울함이 신원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욥의 길을 막아서 지나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욥의 앞길에 어두움을 두셨습니다. 욥의 영광을 거두어가셨습니다. 욥의 관모, 즉 욥의 영예를 벗기셨습니다. 그렇게 하시고 사면에서 욥을 허셨습니다. 마치 집을 헐듯이 욥이 무너지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욥은 죽음을 느꼈습니다. 이 죽음은 하나님과 단절된 느낌입니다. 하나님은 욥의 희망을 나무 뽑듯 뽑으셨습니다. 나무는 뿌리가 있어서 쉽게 뽑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나무를 얼마나 세게 잡아 당기셨는지 나무라 뿌리채 땅에서 들려 나왔습니다.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욥의 희망은 뽑혔습니다. 

     

    매일성경 | 욥기 19장 1-29절 | 사면으로 둘러싸여 무너뜨림을 당하고 희망이 나무 뽑듯 뽑혔지만 소망을 잃지 않는 욥

    나를 향하여 진노하시고 

    "나를 향하여 진노하시고 원수 같이 보시는구나 그 군대가 일제히 나아와서 을 돋우고 나를 치며 내 장막을 둘러 진을 쳤구나(11-12절)" 욥이 느끼기에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향해서 진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원수같이 보셨습니다. 하나님의 군대가 욥에게 진군했습니다. 진군해서 욥을 쳤습니다. 군대가 성을 에워싸듯이 그렇게 욥의 집을 둘러서 에워쌌습니다. 공성전을 펼치기 위함입니다. 성을 향해서 화살을 쏘고 공성퇴로 성문을 부수고 군대가 진격해서 성문을 넘어 쳐들어오면서 수많은 백성을 죽이는 것처럼 욥에게 그런 공격을 가하고 있었습니다.

    내 친척은 나를 버렸으며

    "나의 형제들이 나를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내게 낯선 사람이 되었구나 내 친척은 나를 버렸으며 가까운 친지들은 나를 잊었구나 내 집에 머물러 사는 자와 내 여종들은 나를 낯선 사람으로 여기니 내가 그들 앞에서 타국 사람이 되었구나(13-15절)" 욥이 공격을 당함으로 욥의 형제들이 욥을 멀리 떠났습니다. 욥은 가까운 형제들이 떠나고 모든 사람이 욥을 낯선 사람처럼 대하고 친척이 버리고 친지들이 욥을 잊어버리는 공격을 당했습니다. 심지어 욥의 집에 머물러 사는 자, 즉 욥에게 신세를 지는 사람들, 그리고 여종들까지 욥을 업신여겼습니다. 욥은 그들에게 선을 행했지만(31:32) 그들은 욥을 이방인 취급했습니다. 없는 사람 취급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아야 그 생명이 의미가 있고 행복감이 오는 법인데 욥은 그런 것을 다 빼앗겼습니다. 욥은 사회적으로 철저하게 고립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군대에 의해서 둘러싸여 공격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나를 업신여기고

    "내가 내 종을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니 내 입으로 그에게 간청하여야 하겠구나 내 아내도 내 숨결을 싫어하며 내 허리의 자식들도 나를 가련하게 여기는구나 어린 아이들까지도 나를 업신여기고 내가 일어나면 나를 조롱하는구나 나의 가까운 친구들이 나를 미워하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돌이켜 나의 원수가 되었구나(16-19절)" 사람들이 욥을 업신여기는데 심지어 욥의 집에 있는 노예도 욥을 업신여겼습니다. 전에 욥은 집안의 노예들도 잘 살 수 있도록 돌보고 안식을 제공하고 그들에게 선을 베풀었습니다(31:31). 그랬는지 지금은 욥이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욥의 아내도 욥을 꺼리고 같이 있기 싫어했습니다. 욥의 자식들도 욥을 가련하게 여겼다는 것은 이미 죽어 안식을 누리는 그들이 오히려 욥을 불쌍히 여길 정도로 욥의 처지가 험악했다는 뜻입니다. 어린 아이들도 욥을 업신여기고 조롱했습니다. 욥의 가까운 친구들이 욥을 미워했고 욥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욥을 대적하여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욥은 이런 상황을 사람에게 허물하지 않고 하나님을 붙들고 하소연합니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군대가 자기를 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욥은 이러한 재난을 달게 받으면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람을 정죄하거나 미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내 피부와 살이 뼈에 붙었고 남은 것은 겨우 잇몸 뿐이로구나(20절)" 욥의 피부와 살이 다 뼈에 붙을 정도로 욥은 쇠약해 졌습니다. 살이 남아 있는 곳이라고는 잇몸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피골이 상접했습니다. 이런 처지에 있는 욥은 친구들에게 요청합니다.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하나님의 이 나를 치셨구나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처럼 나를 박해하느냐 내 살로도 부족하냐(21-22절)" 욥은 하나님의 손이 자기를 치셨으니 제발 불쌍히 여겨 달라고 친구들에게 부탁합니다. 왜 하나님처럼 자기를 박해하느냐고 합니다. 욥은 끝까지 하나님과 씨름합니다. 그러면서 내 살로도 부족하냐고 합니다. 지금 피골이 상접해서 모든 살이 빠졌는데 그것으로도 부족하느냐 더 박해를 해야 하겠느냐 이런 뜻입니다. "나의 말이 곧 기록되었으면, 책에 씌어졌으면, 철필과 으로 영원히 돌에 새겨졌으면 좋겠노라(23-24절)" 욥은 자기의 이런 말이 기록되기를 소원합니다. 책에 쓰이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책에 쓰여서 영원히 보존되기를 원합니다. "철필과 납으로 영원히 돌에 새겨졌으면"이 그런 뜻입니다. 욥의 이 말대로 욥이 당한 일과 친구들이 욥에게 한 말과 욥이 그에 대해서 한 말들은 성경으로 보존되었습니다. 욥이 자기 말이 기록되기를 바란 것은 욥이 당하는 고통이 굉장히 특수한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로서 굉장히 특수한 일이라고 욥은 느끼고 있습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위에 서실 것이라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조하구나(25-27)" 욥은 이런 특수한 고통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바라봅니다. 욥은 대속자가 살아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마침내 땅 위에 서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대속자가 역사의 마지막에 이 땅에 오실 것을 소망하는 말입니다. 욥은 자기가 죽은 후에, 즉 자기 영혼이 육체를 떠난 후에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받아주시리라 강력하게 믿고 소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받아주시는 이유는 바로 대속자 때문입니다. 욥은 죽은 후에 하나님을 내 눈으로 보겠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낯설게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욥은 하나님을 친밀하게 알고 하나님과 교제했던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하는 고통도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해석하고 받고 있는 것입니다. 욥은 그 날을 바라보며 마음이 초조했습니다. 이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서 하나님과 복락을 누리기를 간절히 바랐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칼을 두려워 할지니라

    "너희가 만일 이르기를 우리가 그를 어떻게 칠까 하며 또 이르기를 일의 뿌리가 그에게 있다 할진대 너희는 칼을 두려워 할지니라 분노는 칼의 형벌을 부르나니 너희가 심판장이 있는 줄을 알게 되리라(28-29절)" 욥은 친구들에게 경고합니다. 친구들이 일의 뿌리가 그에게 있다, 즉 욥이 큰 잘못을 해서 고통을 당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려면 너희도 칼을 두려워할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렇게 욥을 치는 것은 근거가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칼의 형벌을 부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장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실 때를 욥의 친구들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맞는 말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혀를 칼처럼 썼습니다. 분노로 혀를 놀렸습니다.

    예수님을 예표하는 욥

    그에 대한 벌은 칼의 형벌입니다. 나중에 욥이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하나님 앞에 벌을 받았을 것입니다(42:8). 여기서 욥은 대속자처럼 행동합니다. 자기를 치고 고통을 안겨준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한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예표합니다. 욥이 그렇게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욥을 높여주셨습니다(42:10). 이것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시고 높아지신 것을 예표하는 일입니다. 욥은 가까운 이들이 욥을 업신여기고 사랑하는 자가 자기를 대적하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이것도 예수님의 고통을 예표합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허락하신 고통은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로만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의인이 고통 당하였는데 그 의인을 치고 고통스럽게 한 악인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시고 그 기도로 그 악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나중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기를 못박는 사람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또한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예수님을 죽인 당사자들이 예수님께서 받으신 그 고난의 혜택을 누린 것입니다. 이처럼 욥의 고난은 십자가의 고난을 예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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