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14. 10:51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욥기
목차
욥기 36:26-37:24
찬송가 69장 온 천하 만물 우러러
하나님은 높으시니
엘리후의 말이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높으시니 우리가 그를 알 수 없고 그의 햇수를 헤아릴 수 없느니라 그가 물방울을 가늘게 하시며 빗방울이 증발하여 안개가 되게 하시도다 그것이 구름에서 내려 많은 사람에게 쏟아지느니라(36:26-28)"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의로우심으로 행하시는 일들은 신비합니다. 사람이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햇수를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헤아릴 수 없습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은 영원하시다는 것을 그의 햇수를 헤아릴 수 없다는 말로 표현합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도 다 알 수 없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시어 무엇을 행하시는가를 알 수 없습니다(36:31).
누가 능히 깨달으랴
"겹겹이 쌓인 구름과 그의 장막의 우렛소리를 누가 능히 깨달으랴 보라 그가 번갯불을 자기의 사면에 펼치시며 바다 밑까지 비치시고 이런 것들로 만민을 심판하시며 음식을 풍성하게 주시느니라 그가 번갯불을 손바닥 안에 넣으시고 그가 번갯불을 명령하사 과녁을 치시도다 그의 우레가 다가오는 풍우를 알려 주니 가축들도 그 다가옴을 아느니라(36:29-33)" 구름과 우렛소리, 번갯불로 하나님께서는 뜻하신 대로 행하십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따라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하나님께서는 만민을 심판하시기도 하시고 음식을 풍성하게 주시기도 하십니다. 너무 많은 비가 내리면 심판이요 적절한 비가 내리면 축복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신비합니다. 한 가지 일로 심판도 하시고 복도 내리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번갯불을 과녁에 맞추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일은 빗나가지 않습니다. 정확하게 성취됩니다. 자연을 보면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일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레소리가 나면 큰 비가 내릴 것을 압니다. 사람만이 아니고 가축들도 아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정확합니다. 다만 사람의 지혜는 한정적이어서 그 정확한 일이 어떤 의도로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모릅니다.
내 마음이 떨며
"이로 말미암아 내 마음이 떨며 그 자리에서 흔들렸도다 하나님의 음성 곧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똑똑히 들으라 그 소리를 천하에 펼치시며 번갯불을 땅 끝까지 이르게 하시고 그 후에 음성을 발하시며 그의 위엄 찬 소리로 천둥을 치시며 그 음성이 들릴 때에 번개를 멈추게 아니하시느니라 하나님은 놀라운 음성을 내시며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큰 일을 행하시느니라(37:1-5)" 이 우레 소리는 두려운 소리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떨리게 하는 소리입니다. 이 소리는 하나님의 음성에 비유됩니다. 우레소리가 크게 계속 들린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그럴 때 사람은 경외감을 느낍니다. 자연에 대한 경외감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으로 이어집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레소리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비유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레소리를 발하시면서 사람들을 두렵게 하시어 무슨 일을 행하시는지 사람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옛날 루터는 큰 우레소리를 동반한 뇌우로 하나님께 부복하여 엎드렸습니다. 그렇게 자기 인생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엘리후도 자기 마음이 떨었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서 흔들렸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우레소리를 사용하십니다. 사람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셔서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가 지으신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눈을 명하여 땅에 내리라 하시며 적은 비와 큰 비도 내리게 명하시느니라 그가 모든 사람의 손에 표를 주시어 모든 사람이 그가 지으신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나 짐승들은 땅 속에 들어가 그 처소에 머무느니라(37:6-8)" 하나님께서는 눈도 내리시고 적은 비와 큰 비도 내리십니다. 이러한 기상 상황에 처한 사람은 밖에 나가서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의 손에 표를 주시어" 이 말은 사람들이 하던 일을 멈춘다는 말입니다. 손으로 일을 할 때는 생각을 깊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손을 멈추면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은 기상상황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셨고 다스리심을 알게 하십니다. 농사 짓는 것이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하십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생각하게 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위엄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손을 쉬면서도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짐승과도 같습니다. 눈이 오거나 비가 오면 짐승은 그저 땅 속에 들어가 자기 처소에 머물 뿐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달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심을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혹은 징계를 위하여 혹은 땅을 위하여 혹은 긍휼을 위하여
"폭풍우는 그 밀실에서 나오고 추위는 북풍을 타고 오느니라 하나님의 입김이 얼음을 얼게 하고 물의 너비를 줄어들게 하느니라 또한 그는 구름에 습기를 실으시고 그의 번개로 구름을 흩어지게 하시느니라 그는 감싸고 도시며 그들의 할 일을 조종하시느니라 그는 땅과 육지 표면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 명령하시느니라 혹은 징계를 위하여 혹은 땅을 위하여 혹은 긍휼을 위하여 그가 이런 일을 생기게 하시느니라(37:9-13)" 하나님께서 폭풍우를 보내실 때 마치 밀실에 가두었다고 보내시는 것처럼 하십니다. 추위를 보내실 때는 북쪽 바람을 타고 보내십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의 입김이 부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입김을 부셔서 얼음을 얼게 하신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는 물의 양을 조절하십니다. 물이 많아지게도 하시고 적어지게도 하시는 것입니다. 즉 해수면이 올라가게도 하시고 내려가게도 하십니다. 구름에 습기를 실으시고 구름을 이리저리 옮기십니다. 그렇게 해서 기상 현상으로 땅에 있는 모든 자들을 움직이십니다. 사람의 역사에도 이런 일들이 관찰됩니다. 큰 민족이 대이동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이 기상현상과 맞물리는 것입니다. 엘리후는 그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뜻하신 대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징계를 뜻하실 수도 있고 긍휼을 뜻하실 수도 있습니다. 또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자연, 즉 땅을 위하실 수도 있습니다. 똑같은 비가 각각 다른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비에 속한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헤아릴 수 없는 일입니다.
그대가 아느냐
"욥이여 이것을 듣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오묘한 일을 깨달으라 하나님이 이런 것들에게 명령하셔서 그 구름의 번개로 번쩍거리게 하시는 것을 그대가 아느냐 그대는 겹겹이 쌓인 구름과 완전한 지식의 경이로움을 아느냐 땅이 고요할 때에 남풍으로 말미암아 그대의 의복이 따뜻한 까닭을 그대가 아느냐 그대는 그를 도와 구름장들을 두들겨 넓게 만들어 녹여 부어 만든 거울 같이 단단하게 할 수 있겠느냐(37:14-18)" 엘리후는 이제 욥을 향하여 말합니다. 욥이 이런 것을 다 아느냐고 합니다. 거기에 더해서 욥에게 당신이 하나님을 도울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이 도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사람은 그 일로 하나님을 깨닫고 찬양할 뿐입니다. 혹 사람이 하나님께 사용 받을 수는 있으나 그것도 사람이 하나님을 도왔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따를 뿐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모든 일을 헤아려서 돕는 자의 위치에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엘리후는 욥에게 사람의 한계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한계는 명확합니다. 그렇게 유한한 인간이 어찌 하나님께 대답을 강요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31:35). 하나님께서 대답하실 의무가 없으시다는 것입니다(34:29).
욥의 당돌함을 지적함
"우리가 그에게 할 말을 그대는 우리에게 가르치라 우리는 아둔하여 아뢰지 못하겠노라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어찌 그에게 고할 수 있으랴 삼켜지기를 바랄 자가 어디 있으랴(37:19-20)" 엘리후는 욥이 얼마나 당돌했는지를 지적합니다. 욥의 당돌함을 반어법을 사용해서 표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할 말을 우리에게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그만큼 당돌하게 말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아둔하여 아뢰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아둔하다는 것도 반어법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다 헤아리지 못하여 아뢰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맞는 것이 아니냐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사람이 하나님께 말하고 싶다고 하여 다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말이 많으면 허물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레 5:4; 잠 12:13; . 허물이 많아지게 하는 것은 심판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엘리후는 욥이 당돌하게 말한 것은 심판을 자초하는 일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레소리로 온 세상이 진동할 때에 그렇게 말을 함부로 할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위엄이 너무 두렵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경외하고
"그런즉 바람이 불어 하늘이 말끔하게 되었을 때 그 밝은 빛을 아무도 볼 수 없느니라 북쪽에서는 황금 같은 빛이 나오고 하나님께는 두려운 위엄이 있느니라 전능자를 우리가 찾을 수 없나니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사 정의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심이니라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경외하고 그는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모든 자를 무시하시느니라(37:21-24)" 천지가 진동하는 우레소리와 큰 비가 지나갔습니다. 바람이 불어서 하늘이 말끔하게 되었습니다. 해가 찬란하게 빛나기 때문에 그 누구도 해에 눈을 맞출 수 없습니다. 북쪽에서는 황금 같은 빛이 나와서 하나님의 위엄을 보여줍니다. 고대 세계관에서 북쪽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입니다. 그곳으로부터 하나님의 위엄이 나타나서 사람들을 두렵게 합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지극히 크시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권능으로 정의를 행하십니다. 즉 모든 사안에 대해서 정의롭게 판단하십니다. 그리고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의는 실로 무한합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자연현상도 다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의로 행하시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할 수밖에 없습니다. 두려운 마음으로 우러러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지혜롭다고 자랑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지혜로워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아주 조금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무시하십니다. 무시하신다는 것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가치가 없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절정에 이르는 욥기
엘리후는 자연현상, 특별히 기상현상으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노래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 앞에서 욥이 당돌하게 말한 것이 얼마나 잘못한 것인지를 지적합니다.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시는데 같은 비로 어떤 이에게는 징계를 주시고 어떤 이에게는 긍휼을 베푸시는 신비를 사람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레 소리로 사람의 마음이 떨리게 하시고 어떤 이들은 그것으로 회개하게 하시는 그 긍휼을 우리는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엘리후가 욥에게 당신은 아십니까(37:15-17) 하면서 세 번 물은 것은 38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물음의 서두 역할을 합니다. 욥기는 이제 절정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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