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13. 13:28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욥기
목차
욥기 36:1-25
찬송가 73장 내 눈을 들어 두루 살피니
하나님을 위하여 할 말이 더 있음
엘리후의 말이 이어집니다. "엘리후가 말을 이어 이르되 나를 잠깐 용납하라 내가 그대에게 보이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아직도 할 말이 있음이라(1-2절)" 엘리후는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할 말이 더 있다고 합니다. 욥이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심
"내가 먼 데서 지식을 얻고 나를 지으신 이에게 의를 돌려보내리라 진실로 내 말은 거짓이 아니라 온전한 지식을 가진 이가 그대와 함께 있느니라(3-4절)" 엘리후는 자기가 먼 데서 지식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는 엘리후가 여러 방면에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얻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먼 옛날 일로도 얻을 수 있고 또 먼 곳에서 오는 소식으로도 얻을 수 있습니다. 엘리후는 그렇게 해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얻었습니다. 그것으로 그가 내린 결론은 하나님은 의로우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의 결백을 앞세운 것은 잘못이라는 뜻입니다. 욥이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는 중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의로우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의 지식이 온전한 지식이라고 합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을 향한 자기의 지식에 관해서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능하시나 아무도 멸시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사(5절)" 엘리후는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시다고 했습니다. 옳으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는 아무도 멸시하시지 않으시는 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의로우시기 때문에 심판하신다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의로우시기 때문에 아무도 멸시하지 아니하신다 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지혜가 무궁하시지만 아무도 멸시하시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입니다.
사람을 멸시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악인을 살려두지 아니하시며 고난 받는 자에게 공의를 베푸시며 그의 눈을 의인에게서 떼지 아니하시고 그를 왕들과 함께 왕좌에 앉히사 영원토록 존귀하게 하시며 혹시 그들이 족쇄에 매이거나 환난의 줄에 얽혔으면 그들의 소행과 악행과 자신들의 교만한 행위를 알게 하시고 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명하여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시나니(6-10절)" 이 구절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아무도 멸시히지 않으시는가가 잘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박해하고 압제하는 자를 살려두지 않으십니다. 왜 그러냐면 아무도 멸시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멸시하지 않는 사람을 멸시하여 박하는 사람이 바로 악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인을 살려두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악인에게 고난 받는 자의 권리를 세워주십니다. 악인에게 고난 받은 의인을 복권시키셔서 왕들과 함께 앉고 존귀하게 하십니다.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의인이 족쇄에 매이거나 환난의 줄에 얽혀서 고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그들의 귀를 여시기 위함입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귀가 닫힙니다. 그러다가 고난을 받으면 귀가 열리게 됩니다. 그렇게 귀를 여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심으로 그들이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는 사람을 멸시하지 않으시는 의입니다. 사람을 돌이키게 하시는 의입니다.
귀를 여시는 하나님
"만일 그들이 순종하여 섬기면 형통한 날을 보내며 즐거운 해를 지낼 것이요 만일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면 칼에 망하며 지식 없이 죽을 것이니라 마음이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은 분노를 쌓으며 하나님이 속박할지라도 도움을 구하지 아니하나니 그들의 몸은 젊어서 죽으며 그들의 생명은 남창과 함께 있도다 하나님은 곤고한 자를 그 곤고에서 구원하시며 학대 당할 즈음에 그의 귀를 여시나니(11-15절)" 귀를 여신다는 말씀이 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고난을 당하게 하시는 이유는 사람의 귀를 여시기 위함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사람은 평안할 때는 잘 듣지 않다가도 고난을 당할 때에는 듣게 됩니다. 귀가 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멸시하지 않으시고 고난을 주셔서라도 그들의 귀를 열어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데도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지식 없이 죽습니다. 왜냐하면 귀를 열어 하나님의 교훈을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마음이 경건하지 않은 자들로 판명납니다. 왜냐하면 고난을 받을 때 겸손하지 않고 분노를 더 쌓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속박하시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살아있어도 죽은 것과 다름 없습니다. 그들의 생명은 남창과 함께 있습니다. 여기서 남창은 여신을 경배하는데 바쳐진 남자를 뜻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가장 더러운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난을 겪으면서도 귀를 열지 않는 자들은 이런 더러운 남창과도 같다고 합니다.
욥에게 권고함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대를 환난에서 이끌어 내사 좁지 않고 넉넉한 곳으로 옮기려 하셨은즉 무릇 그대의 상에는 기름진 것이 놓이리라 이제는 악인의 받을 벌이 그대에게 가득하였고 심판과 정의가 그대를 잡았나니 그대는 분노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많은 뇌물이 그대를 그릇된 길로 가게 할까 조심하라 그대의 부르짖음이나 그대의 능력이 어찌 능히 그대가 곤고한 가운데에서 그대를 유익하게 하겠느냐 그대는 밤을 사모하지 말라 인생들이 밤에 그들이 있는 곳에서 끌려 가리라 삼가 악으로 치우치지 말라 그대가 환난보다 이것을 택하였느니라(16-21절)" 엘리후가 보기에 욥에게 닥친 환난은 죄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멸시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을 환난에서 이끌어 내시고 싶어하십니다. 좁은 곳에서 넉넉한 곳으로 옮기려고 하십니다. 엘리후는 욥에게 그러한 하나님의 뜻에 반하지 말라고 합니다. 분노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합니다. 분노를 쌓는 것은 악인이 하는 행동입니다. 그렇게 하지 말기를 권고합니다. 이어지는 말은 문맥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뇌물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른 번역을 보면 이해가 됩니다. "욥 어른은 뇌물을 바쳐서 용서받을 생각은 아예 하지 마십시오. 속전을 많이 바친다고 하여 용서받는 것은 아닙니다(18절, 새번역)" 뇌물이 나온 것은 그러니까 돈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시도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의 때문에 고난이 왔다면 구원도 하나님의 의로 인해서 오는 것입니다. 엘리후는 욥에게 밤을 사모하지 말라고 합니다. 밤은 하나님에게서 숨으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밤은 그 누구도 하나님에게서 숨기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주시는 교훈
"하나님은 그의 권능으로 높이 계시나니 누가 그같이 교훈을 베풀겠느냐 누가 그를 위하여 그의 길을 정하였느냐 누가 말하기를 주께서 불의를 행하셨나이다 할 수 있으랴 그대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고 높이라 잊지 말지니라 인생이 그의 일을 찬송하였느니라 그의 일을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나니 먼 데서도 보느니라(22-25절)" 하나님께서는 권능을 베푸실 때 인생에게 교훈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인생에게 주시는 교훈은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뜻이 우선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길을 정할 이가 없고 하나님께 주께서 불의를 행하시나이까 할 수 있는 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멸시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다루시되 인생들이 하나님을 기억하고 높이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모든 사람이 우러러 보도록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엘리후는 욥의 고난을 하나님의 의로 해석함
엘리후는 욥의 고난이 죄 때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멸시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인생이 잘못가는 것을 돌이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시고 그들의 귀를 여신다고 합니다(10, 15절). 고난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과 일치합니다. 요한복음 9장에서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를 보고 제자들은 그 원인을 죄에서 찾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 9:3)
엘리후의 말과 예수님의 말이 일치합니다. 엘리후가 욥을 오해한 것은 잘못입니다. 하지만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엘리후는 하나님께 꾸중을 듣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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