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11. 13:44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욥기
목차
욥기 34:1-30
찬송가 391장 오 놀라운 구세주
지혜와 지식 있는 자들을 부름
엘리후의 말이 이어집니다. "엘리후가 말하여 이르되 지혜 있는 자들아 내 말을 들으며 지식 있는 자들아 내게 귀를 기울이라 입이 음식물의 맛을 분별함 같이 귀가 말을 분별하나니 우리가 정의를 가려내고 무엇이 선한가 우리끼리 알아보자(1-4절)" 엘리후는 지혜 있는 자들과 지식 있는 자들을 부릅니다. 그들과 더불어 공론의 장을 열겠다는 것입니다. 음식물이 맛을 분별하는 것처럼 지혜와 지식 있는 사람들의 귀는 말의 옳고 그름을 분별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정의를 가려내고 무엇이 선한지를 알아보자고 합니다. 정의라고 번역된 원어는 미슈파트(מִשְׁפָט)입니다. 미슈파트의 원래 뜻은 재판입니다. 그러니까 재판을 열어서 무엇이 선한 것(טוֹב)인지 판단해 보자는 것입니다.
욥이 청구한 재판을 다시 아래로 가져옴
욥은 하나님께 재판을 청구했습니다. 하나님께 서류를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엘리후는 그것을 자기가 가져왔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지혜와 지식 있는 사람으로 더불어 공론의 장을 펼칩니다. 공론의 장에서 논의함으로 재판해서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려내 보자는 것입니다. 엘리후는 하나님께 청구한 것을 다시 가지고 내려옵니다. 욥이 청구한 것에 하나님께서 대답하실 의무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다시 여기에서 말해보자는 것입니다. 지혜와 지식있는 자들과 함께 말하면서 무엇이 선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여기 사용된 토브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좋았더라고 하신 그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갈 것도 없이 여기에서 우리가 같이 논의해 보자는 것입니다. 엘리후의 이러한 말은 하나님의 주권을 높이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욥의 말을 가져옴
"욥이 말하기를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부인하셨고 내가 정당함에도 거짓말쟁이라 하였고 나는 허물이 없으나 화살로 상처를 입었노라 하니 어떤 사람이 욥과 같으랴 욥이 비방하기를 물마시듯 하며 악한 일을 하는 자들과 한패가 되어 악인과 함께 다니면서 이르기를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나 무익하다 하는구나(5-9절)" 엘리후는 욥이 한 말을 공론화시킵니다. 지혜있는 자들에게 공론화시켜서 욥이 한 말들이 옳은 것인가, 선한 것인가를 판단해 보라는 것입니다. 욥은 27장 2절에서 "나의 정당함을 물리치신 하나님"이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엘리후는 그 말을 문제 삼습니다. 욥이 하나님께서 나의 정당함을 물리치셨다고 말한 것은 하나님께서 환난을 주셨기 때문에 마치 자기가 죄가 있는 것처럼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하소연입니다. 엘리후는 이것을 비방이라고 합니다.
욥을 오해한 엘리후
비방이라고 번역된 말은 라아그(לַעַג)입니다. 그 뜻은 조롱, 조소입니다. 그러니까 욥이 하나님을 조롱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엘리후가 욥을 오해한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을 조롱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해되지 않는 고통으로 하소연을 한 것입니다. 하소연과 조롱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누구든지 신앙 양심으로 하나님께 묻고 따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자기를 돌아보면서 양심에 거리낌이 없었던 욥의 담력입니다. 하나님께 하소연하면서 묻는 것은 믿음에 속하는 것이고 조롱하는 것은 불신앙에 속하는 것입니다. 종류가 완전히 다릅니다. 엘리후는 욥을 오해하면서 그가 악한 자들과 한 패가 되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나 무익하다는 것도 하나님을 향한 조롱입니다. 엘리후는 욥이 이렇게 하나님을 조롱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 친구가 빠졌던 잘못을 똑같이 범하는 엘리후
엘리후는 거창하게 말을 시작했습니다. 욥과 세 친구가 잘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했습니다. 그렇지만 말이 늘어나면서 세 친구가 빠졌던 잘못에 똑같이 빠지고 있습니다. 세 친구가 빠졌던 잘못은 바로 욥을 오해한 것입니다. 엘리후도 그들처럼 욥의 말을 오해했습니다.
엘리후의 하나님 묘사는 진리를 담고 있음
하지만 엘리후의 하나님 묘사는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구절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너희 총명한 자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결코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행위를 따라 갚으사 각각 그의 행위대로 받게 하시나니 진실로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시느니라 누가 땅을 그에게 맡겼느냐 누가 온 세상을 그에게 맡겼느냐 그가 만일 뜻을 정하시고 그의 영과 목숨을 거두실진대 모든 육체가 다 함께 죽으며 사람은 흙으로 돌아가리라(10-15절)" 엘리후는 다시 총명한 자들에게 말합니다. 지혜와 지식있는 사람들(2절)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엘리후가 말하는 내용은 하나님에 관한 것입니다. 요지는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외부에서 하나님께 부여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하나님께 세상을 맡긴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공의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목숨을 거두시기를 뜻하신다고 하여도 그것은 공의로운 것입니다. 모든 일의 시작과 주도권은 의로우신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욥은 잘못했습니다. 자기의 의로움이 하나님께 어떤 의무를 지우는 것처럼 말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정죄할 수 없음
"만일 네가 총명이 있거든 이것을 들으며 내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정의를 미워하시는 이시라면 어찌 그대를 다스리시겠느냐 의롭고 전능하신 이를 그대가 정죄하겠느냐 그는 왕에게라도 무용지물이라 하시며 지도자들에게라도 악하다 하시며 고관을 외모로 대하지 아니하시며 가난한 자들 앞에서 부자의 낯을 세워주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들이 다 그의 손으로 지으신 바가 됨이라 그들은 한밤중에 순식간에 죽나니 백성은 떨며 사라지고 세력 있는 자도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제거함을 당하느니라(16-20절)" 엘리후는 욥의 말을 오해했습니다. 엘리후는 욥이 하나님께서 정의를 미워하신다고 말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그런식으로 하나님께 반역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말들의 결론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들릴 수 있습니다. 엘리후는 욥에게 하나님께서 욥의 말대로, 즉 자기가 오해한 대로 정의를 미워하신다면 세상을 다스리실 수 없다고 합니다. 욥이 하나님을 정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끝까지 하나님을 붙들었을 뿐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정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높은 자들을 포함해서 모든 높은 것들이 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는 것들을 지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순식간에 심판하시기도 하십니다. 그렇게 하셔서 사람들이 방종하지 않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의로우시고 지혜로우신 분이십니다.
인과응보가 아닌 하나님의 주권
"그는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행악자는 숨을 만한 흑암이나 사망의 그늘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시기에 오래 생각하실 것이 없으시니 세력 있는 자를 조사할 것 없이 꺾으시고 다른 사람을 세워 그를 대신하게 하시느니라 그러므로 그는 그들의 행위를 아시고 그들을 밤 사이에 뒤집어엎어 흩으시는도다(21-25절)" 하나님께서 사람을 순식간에 제거하실 수 있으신 이유는 사람의 모든 것을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숨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게서는 사람을 심판하실 때 오래 생각하실 것이 없으십니다. 조사하실 것도 없으십니다. 바로 실행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다 아시기 때문에 밤 사이에 뒤집어엎으실 수 있으십니다. 그렇게 해서 다른 사람을 세워서 높은 자리를 대신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능하신 분이십니다.
엘리후가 중요하게 말하는 것은 인과응보의 법칙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능히 심판하시고 순식간에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셔도 완전히 공의로우시다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엘리후의 말은 세 친구들의 말과는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높은 자들을 갑자기 심판하시는 이유
"그들을 악한 자로 여겨 사람의 눈 앞에서 치심은 그들이 그를 떠나고 그의 모든 길을 깨달아 알지 못함이라 그들이 이와 같이 하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이 그에게 상달하게 하며 빈궁한 사람의 부르짖음이 그에게 들리게 하느니라 주께서 침묵하신다고 누가 그를 정죄하며 그가 얼굴을 가리신다면 누가 그를 뵈올 수 있으랴 그는 민족에게나 인류에게나 동일하시니 이는 경건하지 못한 자가 권세를 잡아 백성을 옭아매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26-30절)" 이 구절에서도 핵심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나님께서 정권을 한 번에 갈아 엎으시는 이유는 높은 자들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과 빈궁한 사람들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상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혹시 하나님께서 침묵하신다고 해도 하나님을 정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주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시다가도 갑자기 높은 자들을 심판하시는데 그렇게 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경건하지 못한 자가 권세를 잡아서 백성들을 옭아매지 못하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즉 인과응보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행하시는 것입니다.
엘리후의 말과 세 친구의 말
엘리후의 말을 잘 관찰하지 않으면 세 친구의 말과 똑같이 들립니다. 잘 관찰해보면 세 친구의 말과는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후가 세 친구와 똑같은 것은 바로 욥을 오해했다는 것입니다. 엘리후가 세 친구와 다른 것은 인과응보로 하나님을 설명하지 않고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으로 하나님을 묘사한다는 것입니다. 욥기는 이렇게 단계를 밟아가고 있습니다. 진리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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