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욥기 38장 19-38절 | 욥의 눈을 들어 하나님의 위엄과 인자하심을 바라보게 하시는 하나님

2023. 12. 16. 12:52성서유니온 매일성경/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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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욥기 38:19-38

    찬송가 78장 저 높고 푸른 하늘과


    광명과 흑암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

    하나님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어느 것이 광명이 있는 곳으로 가는 이냐 어느 것이 흑암이 있는 곳으로 가는 이냐 너는 그의 지경으로 그를 데려갈 수 있느냐 그의 집으로 가는 을 알고 있느냐(19-20절)" 낮과 밤이 일정하게 교차되듯이 광명과 흑암도 교차됩니다. 광명이 나올 때는 흑암이 물러가고 흑암이 올 때는 광명이 물러갑니다. 이런 현상은 그것들이 마치 자기 집에서 일정하게 나오는 것 같습니다. 자연에 빛이 필요한 만큼 어둠도 필요합니다. 사람의 성장 호르몬은 밤이 가장 깊었을 때 사람이 어두움 가운데서 잠들었을 때 가장 활발하게 분비된다고 합니다. 밤은 동식물에게 쉼과 회복의 시간인 것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광명이 좋아보이지만 흑암이 일정하게 땅을 덮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고난의 원인을 묻는 것

    욥이 당하는 고난도 마찬가지입니다. 욥은 고난을 받아 그 믿음이 자랐습니다. 욥은 고난의 원인을 알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광명의 집이나 흑암의 집을 알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욥은 고난의 원인보다 고난이 그에게 어떤 유익이 되는지를 생각했어야 합니다. 나중에 욥은 고난의 결과에 승복합니다. 욥의 믿음이 성장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네가 아마도 알리라 네가 그 때에 태어났으리니 너의 햇수가 많음이니라(21절)" 이 말씀은 욥이 고난의 원인을 하나님께 묻는 행동이 어떤 것인지를 풍자합니다. 고난의 원인을 묻는 것은 마치 광명이나 흑암이 있는 곳을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창조하실 때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눈 곳간과 우박 창고

    "네가 눈 곳간에 들어갔었느냐 우박 창고를 보았느냐 내가 환난 때와 교전과 전쟁의 을 위하여 이것을 남겨 두었노라(22-23절)"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눈 곳간과 우박 창고를 아느냐고 물으십니다. 광명과 흑암의 집에 이어서 등장하는 것이 눈 곳간과 우박 창고입니다. 이것도 시적인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눈과 우박을 주관하시면서 뜻하신 대로 내리시는데 마치 그것들을 곳간과 창고에 두셨다가 내리시는 것으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눈과 우박을 저장해 주시는 이유는 다 쓸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환난 때와 교전과 전쟁의 날에 그것들을 쓰시려고 저장해 두시는 것입니다.

    고난도 다 쓰임이 있음

    눈은 보통 한파와 함께 옵니다. 한파는 환난의 때에 환난을 가중시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우박으로 심판하셨습니다(출 9:22-26). 또한 여호수아가 전쟁할 때에 우박으로 적군을 쳐서 무찌르셨습니다(수 10:11). 이처럼 하나님께서 눈이나 우박을 만드시는 이유는 다 쓰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으로서는 그 쓰임을 다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욥이 당하는 고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눈이나 우박같은 고난을 주신 것은 그것으로 하실 일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일은 바로 사탄의 입을 막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일입니다. 그 일은 전쟁의 일과도 같습니다.  

    광명의 길이나 동풍의 길, 우레나 번개의 길을 바꿀 수는 없음

    "광명이 어느 로 뻗치며 동풍이 어느  에 흩어지느냐 누가 홍수를 위하여 물길을 터 주었으며 우레와 번개 을 내어 주었느냐(24-25절)" 하나님께서는 지금 계속 근원을 물으십니다. 이번에는 광명이 어느 길로 뻗치는 지를 물으십니다. 지구가 돌아서 해가 뜰 때 여러 지형지물로 그늘이 생깁니다. 지구가 돌면서 그 그늘이 가리는 곳이 바뀝니다. 그것은 마치 광명이 길을 정해서 움직이는 것과 같습니다. 보통 사람은 집을 짓거나 할 때에 그늘이 어디에 생기고 해가 어디에 잘 드는지를 생각합니다. 그렇게 할 때 그늘을 치운다고 산을 옮기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동풍도 마찬가지입니다. 동풍은 동쪽에서 오는 뜨거운 바람입니다. 동풍이 불면 곡식이 시들게 됩니다. 그럴 때 사람은 동풍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극복할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그 근원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꾸려고 해도 바꿀 수도 없습니다. 홍수가 났을 때 생기는 물길도 그렇고 우레와 번개의 길도 그렇습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오는지를 잘 관찰하고 대비를 하려고 하지 그 길을 바꾸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이길 힘을 구하는 것이 곧 지혜임

    세 친구가 욥에게 회개를 강요한 것은 마치 광명의 길이나 동풍의 길, 홍수의 물길이나 우레와 번개의 길을 바꾸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욥이 자기 당하는 고통의 원인을 알려고 하나님을 붙들고 끝까지 하소연하는 것도 그런 행동입니다. 지혜로운 행동은 이미 닥친 것에 대한 극복입니다. 고난이 왔으니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여 고난을 이길 힘을 구하는 것이 더 지혜로운 행동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이것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고난이 아무 쓸모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누가 사람 없는 에, 사람 없는 광야 를 내리며 황무하고 황폐한 토지를 흡족하게 하여 연한 이 돋아나게 하였느냐(26-27절)" 하나님께서는 사람 없는 땅, 광야에도 비를 내리십니다. 앞에서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실 때 혹은 징계를 위하여 혹은 땅을 위하여 혹은 긍휼을 위하여 내리신다고 했습니다(욥 37:13). 이 엘리후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사람 없는 땅에 비를 내리시는 것은 땅을 위하여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일도 하나님의 주권과 긍휼에 속한 일입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아무 쓸모 없는 일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고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난은 아무 쓸모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황무한 땅에 비가 온 후 연한 풀이 돋아나는 것처럼 고난 후에 삶은 더 다채롭고 흡족하고 풍성해집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근원에 대한 질문은 기능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됨

    "에게 아비가 있느냐 이슬방울은 누가 낳았느냐 얼음은 누구의 태에서 났느냐 공중의 서리는 누가 낳았느냐 은 돌 같이 굳어지고 깊은 바다의 수면은 얼어붙느니라(28-30절)" 하나님께서는 비와 이슬방울과 얼음과 서리의 근원도 물으십니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셔서 생기게 하시고 내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근원을 따지자면 여러 이론이 있겠지만 한도 끝도 없습니다. 결국 왜 이런 것들이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이 질문은 결국 이것들이 내려서 무슨 작용을 하는가로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근원에 대한 질문은 기능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고난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고난이 오는가를 물으면 여러 원인에 대해서 한도 끝도 없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그 결론은 고난으로 어떤 유익이 있는가에서 납니다. 고난의 결과가 고난의 의미를 밝혀주는 것입니다. 물이 돌 같이 굳어지고 깊은 바다의 수면이 얼어붙는 현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이 얼기 때문에 해수면의 높낮이가 조절됩니다. 왜 어느냐, 왜 얼지 않느냐를 따질 것이 아니고 어는 것이 어떤 결과를 내는가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매일성경 | 욥기 38장 19-38절 | 욥의 눈을 들어 하나님의 위엄과 인자하심을 바라보게 하시는 하나님

    묘성과 삼성과 북두성, 하늘의 궤도

    "네가 묘성을 매어 묶을 수 있으며 삼성의 띠를 풀 수 있겠느냐 너는 별자리들을 각각 제 때에 이끌어 낼 수 있으며 북두성을 다른 별들에게로 이끌어 갈 수 있겠느냐 네가 하늘의 궤도를 아느냐 하늘로 하여금 그 법칙을 에 베풀게 하겠느냐(31-33절)" 여기서 묘성(כִּימָה)은 플레이아데스 성단입니다. 일곱 개의 별이 가장 밝게 빛나는 성단인데 주변이 어둡거나 장노출을 해서 촬영을 하면 별이 더 많이 보입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는 이 별들을 아틀라스와 플레이오네 사이에서 태어난 일곱 자매라고 합니다. 이 별 무리는 봄에 나타납니다. 삼성(כְּסִיל)은 오리온 자리를 가리킵니다. 이 별자리는 총 60여 개의 별들을 한 데 묶어서 부르는 것입니다. 이 별자리는 겨울철에 남쪽 하늘에서 보이는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냥꾼 오리온의 이름을 따서 오리온이라고 부릅니다. 이 오리온 자리는 북극해를 제외한 모든 바다에서 볼 수 있기 때문에 항해할 때 유용하게 쓰인 별자리입니다. 북두성(עַיִשׁ)은 큰 곰자리를 뜻합니다. 큰 곰자리 안에 있는 유명한 별자리로는 북두칠성이 있습니다. 북두칠성은 큰 곰자리 안에 포함됩니다. 이 큰 곰자리는 북극성 근처에 있기 때문에 사계절 내내 보입니다. 이런 별자리들은 때에 따라서 하늘에 펼쳐집니다. 이 별자리들이 보이는 것에 따라서 사람들은 항해나 여행의 기준을 삼습니다. 이런 기준을 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천체의 움직임과 고난을 당할 때의 대처 

    욥이 고난의 원인을 알려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천체를 움직이시는 이유를 알려달라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천체를 움직이시는 이유가 아니라 그것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가를 아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기준을 삼고 가고자 하는 곳에 이를 수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난이 닥쳤을 때 고난이 지시하는 길로 나아가는 것에 더 마음을 써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체로 욥의 눈을 향하게 하심은 그런 뜻입니다. 

    구름과 물과 번개 안에 서린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어야 함

    "네가 목소리를 구름에까지 높여 넘치는 이 네게 덮이게 하겠느냐 네가 번개를 보내어 가게 하되 번개가 네게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하게 하겠느냐(34-35절)" 별자리를 말씀하신 하나님은 다시 구름과 번개에 관해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구름에게 명령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번개에게 명령할 수도 없습니다. 구름이 흘러가서 어느 지점에 물이 내리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또한 번개에게 명령하실 때 번개는 하나님께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라고 대답합니다. 구름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에서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고 번개가 치는 것에서 하나님의 명령 소리를 듣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런데 고난이 극심하면 시선이 자기 자신에게만 머물게 됩니다. 고난의 이유를 찾느라 이런 것들은 바라보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눈을 들어서 이런 것들을 바라보고 생각하게 하십니다. 

    가슴 속의 지혜

    "가슴 속의 지혜는 누가 준 것이냐 수탉에게 슬기를 준 자가 누구냐 누가 지혜로 구름의 수를 세겠느냐 누가 하늘 주머니를 기울이겠느냐 티끌이 덩어리를 이루며 덩이가 서로 붙게 하겠느냐(36-38절)" 하나님께서는 가슴 속의 지혜를 말씀하십니다. 지혜는 머리에 있는 것이 아니고 가슴 속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참 지혜는 경험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경험과 그 때 이는 감정 섞인 깨달음이 지혜를 형성합니다. 고난은 사람에게 이런 지혜를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수탉에게도 슬기를 주셔서 아침마다 새벽을 알리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지혜를 주신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을 사랑하라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고난은 사람으로 하여금 더욱 지혜롭게 해서 아침마다 새벽을 알리는 수탉처럼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고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로 구름의 수를 세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마치 정원을 가꾸듯이 원하시는 곳에 물을 주십니다. 그렇게 해서 먼지를 잠재우시고 흙을 비옥하게 하십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욥의 시선을 하나님의 위엄과 인자하심으로 향하게 하심

    하나님께서는 욥의 시선을 여러 가지 현상으로 향하게 하십니다. 그 모든 현상 안에는 하나님의 위엄과 인자하심이 서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그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렇게 하셔서 고난의 원인이 아니라 고난의 결과를 생각하게 하십니다. 욥은 지금 하나님으로부터 고난에 관하여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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