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욥기 9장 1-16절 | 자기 의를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의 높으심을 인정하는 욥

2023. 11. 12. 10:28성서유니온 매일성경/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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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욥기 9:1-16

    찬송가 91장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자기 의를 주장하지 않는 욥

    빌닷의 말에 욥이 대답합니다. 빌닷의 말에는 욥을 격동시키는 요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욥은 빌닷을 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빌닷이 그렇게 말한 것에 반박하여 자기의 의를 더 주장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친구의 말을 붙들고 씨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붙들고 씨름하기 시작합니다.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내가 이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1-2절)" 빌닷과 엘리바스의 말을 욥이 모르지 않습니다. 욥도 압니다. 자기도 이 일이 그런 줄을 안다고 합니다. 욥은 이 모든 것을 알지만 지금 자기가 당하고 있는 일은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욥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라고 하면서 자기가 의롭다고 말한 것이 아님을 변명합니다. 욥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욥이 자기의 결백을 주장한 것은 욥이 당하는 고통의 성격이 자기가 죄를 범해서 온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 뜻이지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욥은 사람의 전적타락을 이미 알고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높으심

    "사람이 하나님께 변론하기를 좋아할지라도 천 마디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하리라(3절)"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변론하고자 할 때 받아주십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변론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받아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변론에 진지하게 임하신다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다 옳기 때문에 사람은 천 마디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하게 됩니다. 변론하고자 하나님께 나아갔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며 엎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마음이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시니 그를 거슬러 스스로 완악하게 행하고도 형통할 자가 누구이랴(4절)"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거스를 자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거스를 수 없는 것은 첫째 그 누구도 하나님의 지혜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 누구도 힘에 있어서 하나님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거슬러서 스스로 형통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형통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매일성경 | 욥기 9장 1-16절 | 자기 의를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의 높으심을 인정하는 욥

    모든 것을 주장하심

    "그가 진노하심으로 산을 무너뜨리시며 옮기실지라도 산이 깨닫지 못하며(5절)"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심으로 견고하게 서 있는 산을 무너뜨리실 수 있으십니다. 산이 깨닫지 못한다는 말은 그것이 아무 어려움 없이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사람에게 산을 옮기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만 하나님께는 너무 쉬운 일입니다. 심지어 옮겨지는 산도 그것을 깨닫지 못할 정도로 하나님께서는 산을 쉽게 옮기실 수 있으십니다. "그가 을 그 자리에서 움직이시니 그 기둥들이 흔들리도다 그가 를 명령하여 뜨지 못하게 하시며 별들을 가두시도다 그가 홀로 하늘을 펴시며 바다 물결을 밟으시며 북두성과 삼성과 묘성과 방의 밀실을 만드셨으며 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셀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행하시느니라(6-10절)" 하나님께서 산을 쉽게 옮기실 수 있는 것처럼 모든 자연만물을 다 주관하십니다. 땅을 주관하시고(6절) 해와 별들을 주관하시고(7절) 하늘과 바다를 주관하십니다(8절). 북두성과 삼성과 묘성과 남방의 밀실을 만드시고 주관하십니다(9절). 이 별들은 하늘의 권세들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모든 권세들을 만드시고 그 지혜와 능력으로 주관하십니다. 그 모든 일은 측량할 수 없고 기이합니다. 셀 수 없습니다(10절). 하나님은 그렇게 높으신 분이십니다. 욥은 자기도 그것을 알고 있다고 친구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깨닫지 못함

    "그가 내 앞으로 지나시나 내가 보지 못하며 그가 내 앞에서 움직이시나 내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하나님이 빼앗으시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무엇을 하시나이까 하고 누가 물을 수 있으랴(11-12절)" 사람이 하나님과 변론할 수 없고 또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에 간섭할 수 없음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뻔히 하나님께서 내 앞에 지나가셔도 사람은 그것을 볼 수 없습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지만 사람은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이런 미약한 존재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막거나 무엇을 하시냐고 물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뭘 물어도 알아야 물을 수 있는 법입니다. 아예 모르는 것은 묻지도 못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그런 처지입니다. 뭘 알아야, 깨달아야 물을 수 있는데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니 묻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의를 믿지 않고 하나님의 긍휼에 기대는 욥

    "하나님이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시나니 라합을 돕는 자들이 그 밑에 굴복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감히 대답하겠으며 그 앞에서 무슨 말을 택하랴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대답하지 못하겠고 나를 심판하실 그에게 간구할 뿐이며(13-15절)" 여기서 라합을 돕는 자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들 중에서 라합은 그 우두머리를 상징합니다. 이 라합은 큰 바다괴물로도 나오는데 심히 두려운 혼돈과 공허의 세력을 뜻합니다. 사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런 라합과 같은 존재, 사탄이라도 하나님 밑에서 일하고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하건만 하물며 자기가 하나님께 뭐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자기가 완전히 의롭다고 할 지라도 하나님의 크신 능력 앞에서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다만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간구할 뿐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보면 욥의 믿음은 자기의 의를 믿는 믿음이 아니고 하나님의 긍휼을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손길을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의 원인이 자기에게 있지 않음

    "가령 내가 그를 부르므로 그가 내게 대답하셨을지라도 내 음성을 들으셨다고는 내가 믿지 아니하리라(16절)" 욥은 하나님께 계속 간구를 올려 드리고 있었습니다.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부르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자기의 부르짖음에 대답하셨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자기의 음성을 듣고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대답하신 것은 하나님의 풍성하신 긍휼을 따른 것이지 자기가 원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모든 일의 원인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가 원인이 될 수 없다는 믿음입니다. 욥은 자기 중심적으로 사안을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이해되지 않는 일을 맞닥뜨렸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자기 심정을 토로하는 것뿐입니다. 욥은 하나님 중심적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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