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욥기 10장 1-22절 | 마음 속에 가득한 영혼의 고통을 토로하는 욥

2023. 11. 14. 09:28성서유니온 매일성경/욥기

목차


    욥기 10:1-22

    찬송가 363장 내가 깊은 곳에서


    영혼의 괴로움이 말로 터져나옴

    10장에도 욥의 말이 계속 이어집니다.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불평을 토로하고 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1절)" 여기서 내 불평을 토로한다는 말은 자기 위에 불평이 임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영혼이 너무 곤비하기 때문에 눌러왔던 불평이 터져나와서 자기 위에 임하는 것을 묘사합니다. 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는 말은 나의 영호의 괴로움 안에서 내가 말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불평이나 원망은 아닙니다. 영혼의 괴로움이 심대해서 입으로 말이 나가는데 괴로움과 탄식의 말이 나간다는 뜻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 나를 정죄하지 마시옵고 무슨 까닭으로 나와 더불어 변론하시는지 내게 알게 하옵소서(2절)" 욥이 가진 영혼의 괴로움은 자기가 당하는 고통의 원인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욥은 조심스럽게 하나님께 그것을 여쭤봅니다. 여쭤보면서 나를 정죄하지 마시기를 구합니다. 욥은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기 때문에 더 영혼이 괴로운데 왜냐하면 자기에게 임한 고통의 원인을 도무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 고통이 왔는지 모르는 자의 토로

    고통의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심한 영혼의 괴로움을 당하는 욥은 자기가 속에 가지고 있던 의문을 꺼냅니다. "주께서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학대하시며 멸시하시고 악인의 꾀에 빛을 비추시기를 선히 여기시나이까(3절)" 주님은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학대하시고 멸시하시는 분이 아니시지 않습니까, 이렇게 의문을 제기합니다. 또한 악인의 꾀에 빛을 비추셔서 그 꾀가 이루어지게 하시고 그것을 선하다고 하시는 분이 아니시지 않습니까,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 아니실진대 왜 자기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가 하는 뜻입니다. 욥의 이 말은 불평이 아니고 영혼의 고통을 토로하는 것입니다. 그의 영혼의 고통은 고통의 원인을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욥의 토로에서 욥은 천상에서 일어난 일에 살짝 접근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잠시 악인의 꾀에 빛을 비추시는 중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선히 여기시고 악인의 뜻대로 끝나도록 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욥을 치도록 허락하신 것은 맞으나 그렇게 하신 선하신 계획이 따로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욥을 치고 괴롭게 하고 있지만 결코 자기의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심

    "주께도 육신의 눈이 있나이까 주께서 사람처럼 보시나이까 주의 이 어찌 사람의 과 같으며 주의 해가 어찌 인생의 해와 같기로 나의 허물을 찾으시며 나의 를 들추어내시나이까(4-6절)"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수준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으십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사람 수준에서 사람이 죄를 범한 대로 갚으셨다면 이 세상에 남아 있을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욥이 죄인인 것은 맞으나 그가 당하는 심대한 고통을 받을 만큼 하나님께 반역하거나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죄인인 것은 맞습니다. 일벌백계라는 말이 있습니다. 작은 죄라도 크게 벌하여 사람들이 죄 짓는 것을 두렵게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수준은 이렇습니다. 작은 죄라도 크게 벌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같지 않으십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마치 자기의 허물을 찾으시고 자기의 죄를 들추시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욥은 그것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매일성경 | 욥기 10장 1-22절 | 마음 속에 가득한 영혼의 고통을 토로하는 욥

    욥을 사랑으로 만드셨는데

    "주께서는 내가 악하지 않은 줄을 아시나이다 주의 에서 나를 벗어나게 할 자도 없나이다(7절)" 욥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아신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가 악하지 않은 줄을 아시지만 지금 자기를 고난 가운데 두시고 누르고 계십니다. 욥은 그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붙들고 영혼의 고통을 토로하는 것입니다. "주의 손으로 나를 빚으셨으며 만드셨는데 이제 나를 멸하시나이다(8절)" 욥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만드실 때 사랑하는 마음으로 친히 손으로 빚으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렇게 하셔서 자기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며 악에서 떠나 잘 살고 있었는데 왜 이제 자기를 멸하시는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를 만드신 그 일을 기억해 달라고 합니다. "기억하옵소서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 다시 나를 티끌로 돌려보내려 하시나이까 주께서 나를 젖과 같이 쏟으셨으며 엉긴 젖처럼 엉기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피부와 살을 내게 입히시며 뼈와 힘줄로 나를 엮으시고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나를 보살피심으로 내 을 지키셨나이다(9-12절)" 욥은 하나님께 자기를 어떻게 만드셨는가를 기억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흙을 뭉치듯 손수 빚으시고서는 아무 이유없이 왜 티끌로 돌려 보내려고 하시는가, 엉긴 젖처럼 엉기게 하시면서 피부와 살을 입히시고 뼈와 힘줄로 엮으셔서 욥을 만드시고 또 생명과 은혜를 베푸시고 욥을 보살피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셔서 욥의 영을 지키셨다고 합니다. 여기 나오는 욥의 영은 루아흐(רוּחַ)입니다. 위에 영혼과 마음으로 나오는 네페쉬(נֶפֶשׁ)와는 다른 단어입니다. 네페쉬는 "인격, 생명, 자아"라는 뜻이지만 루아흐는 "호흡, 숨결, 바람, 영"이라는 뜻입니다. 루아흐가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욥을 창조하실 때 그를 보살피셔서 그에게 숨결을 불어 넣으시고 그것을 지키셨다는 의미입니다. 

    환난 때문에 부끄러워 머리를 들지 못함

    "그러한데 주께서 이것들을 마음에 품으셨나이다 이 뜻이 주께 있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범죄하면 주께서 나를 인으로 인정하시고 내 죄악을 사하지 아니하시나이다 내가 악하면 화가 있을 것이오며 내가 의로울지라도 머리를 들지 못하는 것은 내 속에 부끄러움이 가득하고 내 환난을 내 눈이 보기 때문이니이다(13-15절)" 13절에 나오는 이것들은 14절 이하의 내용을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기의 죄악을 사하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욥은 자기가 의로울지라도 머리를 들지 못한다고 합니다. 욥이 지금 당하는 환난 때문입니다. 욥이 당하는 환난은 욥을 부끄럽게 하고 있습니다. 욥은 자기 몸이 종기로 가득하고 터지고 재에 앉아 기와로 몸을 긁고 있는 자기 자신을 볼 때 부끄러웠습니다. 그런 환난을 당할 정도의 악을 범하지 않았지만 머리를 들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웠습니다. 

    마치 사냥꾼에게 붙잡힌 사자와도 같음 

    "내가 머리를 높이 들면 주께서 젊은 사자처럼 나를 사냥하시며 내게 주의 놀라움을 다시 나타내시나이다 주께서 자주자주 증거하는 자를 바꾸어 나를 치시며 나를 향하여 진노를 더하시니 군대가 번갈아서 치는 것 같으니이다(16-17절)" 욥이 머리를 높이 들 수 없는 이유는 그가 조금이라도 머리를 들려고 하면 마치 젊은 사자를 사냥하듯이 하나님께서 놀라움으로 나타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욥은 자기가 고통의 자리를 떨치고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마치 사냥꾼의 손에 든 사자에 비유합니다. 17절의 증거하는 자는 욥에게 다가오는 고통을 의미합니다. 욥에게는 육체의 고통과 영혼의 고통이 번갈아가면서 임하고 있는데 그것을 군대가 번갈아서 치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 고통은 증거하는 자인데 바로 욥이 얼마나 연약한지 얼마나 무가치한지를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욥은 그러한 영혼의 고통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도무지 왜 그런지 알 수 없다는 고통도 굉장히 컸습니다. 

    죽기 전에 잠시 잠깐이라도 평안 주시기를 간구함

    "주께서 나를 태에서 나오게 하셨음은 어찌함이니이까 그렇지 아니하셨더라면 내가 기운이 끊어져 아무 눈에도 보이지 아니하였을 것이라 있어도 없던 것 같이 되어서 태에서 바로 무덤으로 옮겨졌으리이다(18-19절)" 너무 고통스러웠던 욥은 자기가 태에서 나오지 않았더라면 하면서 한탄합니다. 왜 그렇게 한탄하냐면 영혼의 고통과 육체의 고통 때문에 잠시라도 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욥은 하나님께 잠시 잠깐이라도 평안을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 은 적지 아니하니이까 그런즉 그치시고 나를 버려두사 잠시나마 평안하게 하시되 내가 돌아오지 못할 땅 곧 어둡고 죽음의 그늘진 땅으로 가기 전에 그리하옵소서 땅은 어두워서 흑암 같고 죽음의 그늘이 져서 아무 구별이 없고 광명도 흑암 같으니이다(20-22절)" 욥은 자기가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욥은 흑암 가운데 앉아 있습니다. 죽음의 그늘 가운데 앉아 있는 것입니다. 왜 흑암이냐면 하나님에 대해서 자기 작은 지혜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욥이 당한 재난이 욥을 흑암에 밀어 넣었습니다. 욥은 그 흑암에서 죽음의 고통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 고통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에서 떨어져서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것 같은 고통입니다. 그 고통 중에서 욥은 잠시 잠깐이라도 평안을 달라고 간구합니다. 죽기 전에 잠깐이라도 평안했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아뢰는 것입니다. 욥의 고통은 이렇게 컸습니다. 여기서 확실한 것은 심대한 고통 가운에에서도 하나님을 향해서 믿음의 간구를 올려 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욥의 인내입니다(약 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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