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욥기 11장 1-20절 | 소발의 말, 진리를 담고 있으나 욥의 말을 완전히 오해함

2023. 11. 15. 20:28성서유니온 매일성경/욥기

목차


    욥기 11:1-20

    찬송가 419장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욥의 말을 책잡는 소발

    욥기 11장은 소발의 말입니다. 소발은 나아마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가 가장 나중에 말을 한 것으로 보아서 그는 엘리바스와 빌닷 보다 연소자였을 것입니다. "말이 많으니 어찌 대답이 없으랴 말이 많은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함을 얻겠느냐(2절)" 이 말은 진리입니다. 말이 많으면 많은 만큼 그에 대해서 대답할 말도 많아집니다. 게다가 말이 많으면 사람 안에 있던 죄성이 말에 담겨서 튀어나오기 쉽습니다. "네 자랑하는 말이 어떻게 사람으로 잠잠하게 하겠으며 네가 비웃으면 어찌 너를 부끄럽게 할 사람이 없겠느냐(3절)" 소발은 욥이 자랑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욥을 오해한 것입니다. 욥은 자기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욥이 계속 주장하는 것은 자기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갑작스러운 재난을 당할 만한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욥은 망할 때 아, 이것은 내 잘못이다, 이렇게 인정하기 힘들만큼 초자연적인 손길을 느꼈습니다. 네 번 연거푸 재난의 소식을 받았는데 거기에 딱 한 명만 그 소식을 전하라는 듯이 살아 남아서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그런 상황을 경험한 욥은 자기가 당하는 재난은 죄로 인한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네가 비웃으면" 또한 소발은 욥이 하나님의 의를 비웃는 것으로 오해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비웃은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당한 상황이 의롭지 못한 것 아니냐 하면서 토로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욥의 말을 오해함

    "네 말에 의하면 내 도는 정결하고 나는 주께서 보시기에 깨끗하다 하는구나(4절)" 소발의 오해가 이 진술에 담겨있습니다. 욥이 자기가 정결하다고 했다고 합니다. 욥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도 깨끗하다 하실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욥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물으시면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자기는 죄인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자기는 죄인이라서 누구도 하나님 손에서 자기를 건질 수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소발은 상대방의 말 뜻을 깊이 헤아리지 않고 상대방을 자기 생각대로 규정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에 호소함

    "하나님은 말씀을 내시며 너를 향하여 입을 여시고 지혜의 오묘함으로 네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의 지식이 광대하심이라 하나님께서 너로 하여금 너의 를 잊게 하여 주셨음을 알라(6절)" 소발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에 호소합니다. 욥이 스스로를 자랑한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 앞에서 스스로 자랑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너로 하여금 너의 죄를 잊게 하여 주셨음을 알라"는 말씀을 개역한글은 "하나님의 벌하심이 네 죄보다 경하니라"라고 번역했습니다. 개역개정은 이것을 의역한 것입니다. 개역한글의 번역이 더 원문에 가깝습니다. 이 말은 옳은 말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죄를 그대로 벌하신다면 그 누구도 삶을 영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노 중이라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합 3:2). 다만 이것이 욥의 경우에는 맞지 않을 뿐입니다. 욥은 죄 때문에 벌로 이런 환난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욥은 지금 당하고 있는 환난 때문에 자기의 죄악됨과 수치를 더 깊이 경험하고 느끼고 있습니다. 누구나 환난을 당하면 그렇게 되는 법입니다. 그런데 소발은 하나님께서 너의 죄를 잊게 해 주셨다고 잘못 판단하고 있습니다. 

     

    매일성경 | 욥기 11장 1-20절 | 소발의 말, 진리를 담고 있으나 욥의 말을 완전히 오해함

    하나님의 광대하심

    "네가 하나님의 오묘함을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완전히 알겠느냐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무엇을 하겠으며 스올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그의 크심은 보다 길고 바다보다 넓으니라 하나님이 두루 다니시며 사람을 잡아 가두시고 재판을 여시면 누가 능히 막을소냐(7-10절)" 이러한 소발의 말은 방금 욥이 한 말과도 일치합니다. 욥도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욥은 계속 자기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을 모르겠다, 도무지 알 수 없어서 괴롭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발은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지혜롭다고 말한 것처럼 몰아 붙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보다 높으시고 음부보다 깊으십니다. 땅보다 크시고 바다보다 넓으십니다. 여러분이 폭풍우 치는 바다 한 가운데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 자연 현상이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그 앞에서 사람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깊이 깨달을 것입니다. 그런 시각으로 보면 그것들을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이신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재판 자리에서 사람의 죄를 물으신다면 그 누가 의롭다고 할 수 있을까요? 소발의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욥은 이 말도 했습니다. 자기를 하나님의 손에서 건질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심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하지 않으시는 듯하나 다 보시느니라(11절)" 이 말씀도 진리입니다. 악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런 것들은 상관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 보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말도 욥에게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욥은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고난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발의 말은 욥이 악한 일을 행했고 그 일 때문에 재판을 받고 벌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전에 네가 이 벌에 상응하는 엄청난 일을 저지른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 벌에 상응하는 일이라기 보다는 이 벌보다 훨씬 큰 악을 저지른 것이다, 이런 뜻입니다. 이 말도 욥에게는 큰 돌덩이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친구들이 오기 전에 이미 욥은 이 재난의 뜻을 알기 위해서 자기 과거 행적을 샅샅이 찾아 반추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도무지 이런 재난을 받을만한 죄악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소발은 이 재난보다 더 큰 악이 너에게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소발의 말은 그 내용은 진리지만 그 말이 욥을 향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굉장히 잘못된 말입니다. 

    욥을 허망한 사람이라고 함

    "허망한 사람은 지각이 없나니 그의 출생함이 들나귀 새끼 같으니라(12절)" 허망한 사람은 지각이 없다는 것은 자기가 무슨 죄악을 저질렀는지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욥이 만약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른다면 그것은 욥이 허망한 사람이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욥을 들나귀 새끼에 비유합니다. 들나귀 새끼는 굉장히 빠릅니다. 길들여지지 않습니다. 사람이 다가가면 잡힐 듯 가만히 있다가도 손이 닿을만 하면 빠르게 도망한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짐승은 신의가 없는 사람을 비유합니다. 허망한 사람은 이런 들나귀 새끼처럼 본성대로 살면서 신의가 없고 길들여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넌지시 말하는 것은 욥이 지금 그런 상태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만일 네가 마음을 바로 정하고 주를 향하여 을 들 때에(13절)" 그래서 소발은 욥에게 마음을 정하라고 합니다. 들나귀 새끼처럼 신의 없이 이리저리 빠져나가지 말고 마음을 정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들라고 합니다. 여기서 손을 들라는 것은 항복하라는 의미입니다. 이리저리 도망하지 말고 항복하고 순하게 받을 벌을 받으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소발의 말이 틀린 것은 욥은 지금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는 신의 없이 굴지도 않았고 재앙에 반하여 반발하거나 도망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곧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입으로 범죄하지 않고 인내하고 있습니다. 

    욥에게 효력 없는 해결책을 제시함

    "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가 네 장막에 있지 못하게 하라 그리하면 네가 반드시 흠 없는 얼굴을 들게 되고 굳게 서서 두려움이 없으리니(14-15절)" 만약 욥이 죄를 발견했다면 소발의 말처럼 했을 것입니다. 멀리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욥이 괴로운 것은 재난의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해결이 안 되니 더 괴로운 것입니다. 흠 없는 얼굴을 들게 되고 굳게 서서 두려움이 없기를 그 누구보다 욥이 바라고 있습니다. "곧 네 환난을 잊을 것이라 네가 기억할지라도 물이 흘러감 같을 것이며 네 생명의 날이 대낮보다 밝으리니 어둠이 있다 할지라도 아침과 같이 될 것이요 네가 희망이 있으므로 안전할 것이며 두루 살펴보고 평안히 쉬리라(16-18절)" 욥도 환난을 잊을 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소발의 이 말은 나중에 욥에게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다만 소발이 말한 것보다 훨씬 깊은 차원에서 이루어집니다. 죄를 발견하고 버려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신비하심을 경험하여 그렇게 됩니다. "네가 누워도 두렵게 할 자가 없겠고 많은 사람이 네게 은혜를 구하리라(19절)" 지금 욥은 잠자리에서도 하나님께서 두렵게 하심으로 쉬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세 친구가 와서 말로 욥을 치고 있습니다. 그랬던 욥은 나중에 이 말씀처럼 됩니다. 나중에 세 친구는 욥에게 은혜를 구하는 처지가 됩니다. 소발은 이 말을 할 때에 자기가 욥에게 은혜를 구하는 사람이 될 줄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자들은 눈이 어두워서 도망할 곳을 찾지 못하리니 그들의 희망은 숨을 거두는 것이니라(20절)"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악한 자들은 도망할 수 없습니다. 또한 숨을 거두어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영원한 형벌 가운데 떨어질 것입니다. 욥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말이지만 일반적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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