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욥기 13장 1-19절 | 하나님과 변론하는 것과 하나님을 위하여 변론하는 것

2023. 11. 17. 13:25성서유니온 매일성경/욥기

목차


    욥기 13:1-19

    찬송가 70장 피난처 있으니


     

    하나님과 변론하는 것

    13장은 12장에 이어서 욥의 대답이 계속됩니다. "나의 눈이 이것을 다 보았고 나의 귀가 이것을 듣고 깨달았느니라 너희 아는 것을 나도 아노니 너희만 못하지 않으니라 참으로 나는 전능자에게 말씀하려 하며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1-3절)" 욥은 친구들이 말한 것을 자기도 이미 다 보았고 다 들었기 때문에 이미 깨달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너희가 아는 것을 자기도 안다고 합니다. 친구들의 말은 욥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욥이 이미 아는 것을 재차 말했습니다. 그들은 욥이 씨름하는 것에 근접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욥은 다시 그 시선을 하나님께로 향합니다. 이 문제는 친구들의 말을 들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직접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과 변론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변론하려는 것은 불경건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원통하거나 억울한 마음을 감추고 하나님 앞에서 괜찮은 척하는 것이 외식이요 불경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과 변론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 1:18)."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 쓸모 없는 의원

    "너희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요 다 쓸모 없는 의원이니라 너희가 참으로 잠잠하면 그것이 너희의 지혜일 것이니라(4-5절)" 욥은 친구들이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계속 욥이 큰 죄를 지었다고 욥을 몰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참이 아닙니다. 그들의 추론에서 나온 거짓입니다. 그들은 그 거짓에서 말을 내고 있기 때문에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였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욥을 치료하려고 하고 있는데 그것이 전혀 욥을 낫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쓸모 없는 의원입니다. 쓸모 없는 의원은 병을 치료하기는커녕 오히려 병을 더 악화시킵니다. 욥의 친구들이 그랬습니다. 이런 상태였기 때문에 욥은 친구들에게 잠잠하라고 합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지혜로운 것이라고 합니다. 

     

    매일성경 | 욥기 13장 1-19절 | 하나님과 변론하는 것과 하나님을 위하여 변론하는 것

    하나님을 위하는 변론하는 일의 위험성

    "너희는 나의 변론을 들으며 내 입술의 변명을 들어 보라 너희가 하나님을 위하여 불의를 말하려느냐 그를 위하여 속임을 말하려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낯을 따르려느냐 그를 위하여 변론하려느냐 하나님이 너희를 감찰하시면 좋겠느냐 너희가 사람을 속임 같이 그를 속이려느냐 만일 너희가 몰래 낯을 따를진대 그가 반드시 책망하시리니(6-10절)"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이 이야기한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입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아무 잘못 없는 너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시겠느냐, 이것이 그들의 논지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불의를 말하고 하나님을 위한다면서 속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를 변호하십니다. 누가 하나님을 변호하려고 하는 것을 죄라고 하십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을 변호할 수 있겠습니까? 유한이 어찌 무한하신 하나님을 변호한다고 변호사 역할을 자처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 중에서는 아무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 누구의 조언도 받지 않으시는 주권자이십니다. "만일 너희가 몰래 낯을 따를진대"는 그런 말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낯을 보아드리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반드시 책망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하여 변론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신비 앞에 두 손을 들고 자기의 무지를 인정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예수님도 스스로를 변론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셨습니다. 또한 당신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친히 나타내셨습니다. 이러하건만 사람 중 어느 누가 하나님을 위하여 변론하고 하나님의 낯을 보아 드릴 수 있겠습니까? 환난 당한 사람이 하나님을 원망할 때 사역자들은 자꾸 그 앞에서 하나님을 변명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무슨 일이 닥치든지 내가 당하리라

    "그의 존귀가 너희를 두렵게 하지 않겠으며 그의 두려움이 너희 위에 임하지 않겠느냐 너희의 격언은 재 같은 속담이요 너희가 방어하는 것은 토성이니라 너희는 잠잠하고 나를 버려두어 말하게 하라 무슨 일이 닥치든지 내가 당하리라(11-13절)" 하나님의 존귀가 나타날 때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두려움이 사람에게 임할 때 피할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보다 높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격언은 재 같은 속담입니다. 그 격언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 맞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욥에게는 딱 재 같은 속담입니다. 욥이 당하는 일은 그들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이 하나님을 방어한다고 하면서 펴는 논리는 금방 무너질 토성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환난 당하는 욥에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너희는 잠잠하고" 첫째 잠잠해야 합니다. 아,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 깨닫고 잠잠히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가 보아야 합니다. "나를 버려두어" 둘째로 욥을 그냥 두어야 합니다. 욥을 말로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욥이 당하는 일이 그렇게 중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말하게 하라" 셋째로 욥이 말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욥이 충분히 말하여 그 고통을 토로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어야 합니다. 욥은 "무슨 일이 닥치든지 내가 당하리라"라고 합니다. 욥은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재난을 당하면서 더 담대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루시는 손길을 마다하지 않고 담대하게 자기가 당하겠다고 합니다. 자꾸 이리 피하라, 저리 피하라 이렇게 조언하지 말라고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설 때에는 이렇게 단독자로 서게 됩니다. 그 어떤 사람도 그를 도울 수 없습니다. 도우실 분은 오직 중보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보혜사이신 성령님이십니다. 

    내가 희망이 없노라 -> 내가 그를 믿노라

    "내가 어찌하여 내 살을 내 이로 물고 내 생명을 내 에 두겠느냐(14절)" 이 말의 뜻은 자기가 자기 생명을 끝까지 붙잡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종기로 살이 곪고 떨어져 나간다고 그것을 다시 물어서 자기 것으로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그 누구도 자기 생명을 스스로 붙잡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자기 자신의 손에 달려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15절)" 이 구절에서 "내가 희망이 없노라"는 맛소라 사본에서 난외 주에 "없다(לא)"라는 말을 "나에게(ל֣וֹ)"로 읽을 수 있다고 나옵니다. "로(없다)"를 "리(나에게)"로 읽으면 "내가 희망이 없노라"가 아니고 "내가 그를 믿노라"가됩니다. 이것이 내용상 더 자연스럽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죽이셔도 욥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서 하나님과 끊어져서 지옥의 고통을 맛보시고 죽음을 당하셨을 때에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셨습니다. 이것이 믿는 자들의 특징입니다. 죽음에 처해져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아뢰겠다는 것입니다. 욥은 그것이 자기의 구원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경건하지 않은 자는 그 앞에 이르지 못하나니 이것이 나의 구원이 되리라(16절)" 경건하지 않은 자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함으로 하나님 앞에 이르지 못합니다. 하지만 욥은 끝까지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게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께 이르는 것,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 버리신 것 같은 상황이지만 하나님은 선하시니 중보자 안에서 나를 받아주시리라 하면서 끝까지 하나님께 아뢰고 나아가 하나님께 이르는 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내가 정의롭다 함을 얻을 줄 아노라

    "너희들은 내 말을 분명히 들으라 내가 너희 귀에 알려 줄 것이 있느니라 보라 내가 내 사정을 진술하였거니와 내가 정의롭다 함을 얻을 줄 아노라 나와 변론할 자가 누구이랴 그러면 내가 잠잠하고 기운이 끊어지리라(17-19절)" 욥은 자기가 정의롭다 함을 얻을 줄 안다고 합니다. 18절에 미슈파트(מִשְׁפָט)와 체데크(צָדַק)가 다 나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욥의 경우를 재판하실 때, 즉 욥이 당한 환난과 욥이 그 환난에 대하여 하나님께 찬양하고 믿음을 보인 것을 심판하실 때 욥이 옳다고 하실 것이다, 이런 뜻입니다. 욥이 모든 사안에 대해서 다 의롭다는 것이 아니고 욥의 양심상 욥이 당하고 있는 이 환난에 대해서, 이 특정한 경우에 대해서는 자기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뜻입니다. 욥은 이것을 친구들에게 분명히 들으라고 합니다(17절). 그러면서 자기를 대적할 사람이 누구냐고 합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자기는 입을 닫고 죽을 것이라고 합니다. 자기는 그와 더 이상 변론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하나님의 처분에 따라서 죽는 것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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