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29. 07:00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호세아
목차
호세아 10:1-15
찬송가 409장 나의 기쁨은 사랑의 주님께
9장 문맥
9장에서 호세아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땅에 거주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9:3). 그 이유는 그들이 음행하여 그들의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9:1). 하나님의 땅에서 쫓겨난 그들은 부정하게 될 것입니다(9:4). 그리고 결국 자식이 없어지고 망할 것입니다(9:12, 14, 16). 그들이 망하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선지자의 경고를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9:17). 그로 인해 하나님께 버림 받았기 때문입니다(9:17).
9장에서는 하나님의 땅에서 쫓겨난 비참함과 그들의 열매 없음의 심판을 말씀합니다. 이제 10장에서는 그들에게 임할 심판의 철저함과 두려움을 묘사합니다. "산더러 우리를 가리라 할 것이요(8절)" 또한 10장에서는 이스라엘에게 복으로 주셨던 풍요와 번영이 우상숭배의 타락을 가져왔음을 지적합니다(1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고 촉구하십니다.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라고 하십니다(12절).
그들이 두 마음을 품었으니
1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그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을 많게 하며 그 땅이 번영할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하도다
2 그들이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벌을 받을 것이라 하나님이 그 제단을 쳐서 깨뜨리시며 그 주상을 허시리라
3 그들이 이제 이르기를 우리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므로 우리에게 왕이 없거니와 왕이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리요 하리로다
4 그들이 헛된 말을 내며 거짓 맹세로 언약을 세우니 그 재판이 밭이랑에 돋는 독초 같으리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가리켜서 "열매 없는 무성한 포도나무"라고 하십니다.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면 그 나무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포도나무를 목재로 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뗄감이 될 따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가나안 땅에 심은 것은 마치 포도나무를 심은 것 같아서 그들에게서 열매를 얻고자 하심이었습니다(시 80:8). 하나님께서는 극상품 포도 나무를 심으셨고 울타리로 두르셔서 보호하셨고 망대도 세우셨고 술틀도 파셨습니다(사 5:2).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열매는 정의와 공의였습니다(사 5:7). 그러나 이스라엘은 정의와 공의의 열매를 맺지 않고 그 반대의 열매, 즉 포학과 부르짖음이라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것이 호세아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이사야가 지적한 이스라엘의 죄입니다.
호세아는 좀 다른 죄를 지적하는데 그것은 그들의 열매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열매가 없다는 것은 앞의 9장과 연결됩니다. 9장은 이스라엘을 에브라임이라고 부릅니다. 에브라임의 어원은 "열매를 맺는다"라는 뜻의 파라(פָּרָה)입니다. 9장은 에브라임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9:11). 그들은 자녀를 낳지 못할 것이고 혹시 자녀를 낳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자녀를 죽이실 것이라고 하십니다(9:16).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시리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스라엘은 열매 없는 포도나무와 같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열매가 없다고 하는 말(בָּקַק)은 "비다, 버리다, 사람 수를 줄이다, 흩어버리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열매는 이스라엘의 인구수를 뜻합니다. 이스라엘의 인구수가 급격하게 줄어들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즉, 9장과 그 내용이 이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에브라임의 인구수를 급격하게 줄이시고 멸망시키시는 이유는 "그 열매가 많을 수록 제단을 많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람 수가 많아질수록 우상 제단도 많게 했습니다. 땅이 좋아질수록(כְּט֣וֹב) 주상들을 좋아지게(הֵיטִ֖יבוּ)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 땅에 복(טוֹב)을 주실수록 그 복을 가지고 주상을 세련되게 꾸몄습니다. 여기서 주상(מַצֵּבָה)은 뭔가를 기념해서 세우는 기둥같은 것입니다. 이런 주상은 원래는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기념하거나 기억하기 위해서 세워야 하는데 이들은 그것을 우상 섬기듯 하거나 아니면 바알 신 등 우상을 위해서 그런 것들을 세우고 화려하게 꾸몄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두 마음을 품었"다고 하십니다(2절). 두 마음을 품었다는 것은 그들이 제단을 많게 하고 주상을 아름답게 꾸밀 때에 그들의 생각에 이것은 여호와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이런 의식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동시에 그들은 그 마음이 우상으로 향할 때에는 그것을 우상을 위한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혼합주의 신앙입니다. 같은 것인데 어떤 때에는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고 어떤 때에는 우상을 위해서 사용하고 그랬습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호세아서 주석, 66쪽).
"두 마음을 품"는 죄악은 고쳐지기 어려운 중병(重病)이다. 그 이유는, 그것이 아첨하는 성질을 가진 것이기 때문이다. 아부(阿附)하는 자는 얼른 붙잡아 회개시키기 어렵다. 그런 자들에게는 심판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제단을 쳐서 깨뜨리시며 그 주상을" 파괴하시리라고 호세아는 말한다.
3절은 왜냐하면(כִּ֤י)으로 시작합니다. 그들이 두 마음을 품어서 제단과 주상을 세운 이유는 그들에게 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왕이 없으면, 백성들은 방자하여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합니다(삿 17:6, 21:25). 그들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각자 자기를 위해서 제단을 만들고 각자 자기를 위해서 주상을 꾸민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각자가 살 길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은 우상을 숭배하는 왕만 있었지 다윗과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면서 백성들을 보호하는 왕은 없었습니다. 그 결과 여로보암 2세 이후에는 반역에 반역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왕을 의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된 이유(כִּ֣י)는 그들이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이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상 숭배를 하는 왕만 계속 나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유다로 향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고서는 각자 살 길을 찾아서 여호와도 섬기는 척 하고 우상도 섬겼습니다. 3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핑계를 대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이런 핑계를 거짓으로 맹세하는 말들이라고 하십니다(4절). "거짓 맹세"라고 할 때 거짓이라는 말(שָׁוְא)은 "빈, 가치 없는, 거짓된"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거짓으로 맹세하면서 언약을 세웠다고 합니다. 거짓으로 맹세하면서 언약을 세웠기 때문에 그 언약이 제대로 적용될 리가 없습니다. 역시나 그 재판이 밭이랑에 돋는 독초 같다고 합니다. 여기 재판이라는 말(מִשְׁפָּ֔ט)은 언약을 맺은 것의 적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밭이랑에서는 농작물이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밭이랑에서 독초가 나온다고 합니다. 이것처럼 언약을 맺었으니 당연히 거기에서 공의와 정의와 인애가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독초가 나온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언약을 맺어도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벧아웬의 송아지로 말미암아
5 사마리아 주민이 벧아웬의 송아지로 말미암아 두려워할 것이라 그 백성이 슬퍼하며 그것을 기뻐하던 제사장들도 슬퍼하리니 이는 그의 영광이 떠나감이며
6 그 송아지는 앗수르로 옮겨다가 예물로 야렙 왕에게 드리리니 에브라임은 수치를 받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계책을 부끄러워할 것이며
7 사마리아 왕은 물 위에 있는 거품 같이 멸망할 것이며
8 이스라엘의 죄 곧 아웬의 산당은 파괴되어 가시와 찔레가 그 제단 위에 날 것이니 그 때에 그들이 산더러 우리를 가리라 할 것이요 작은 산더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리라
언약을 맺었는데 그 결과가 밭이랑에 독초가 돋는 것같이 된 것은 벧아웬에 송아지 우상이 생긴 것과 같습니다(5절).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를 금하셨습니다. 그리고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집에 여로보암은 금송아지 우상을 떡하니 세워 놓았습니다. 그렇게 해 놓고 그것이 여호와를 섬기는 방법이라고 선전했습니다. 벧아웬(בֵּית אָוֶן)은 사악함의 집, 또는 헛됨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벧엘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음으로 하나님의 집이 사악함의 집, 헛됨의 집이 된 것입니다.
그 결과는 백성이 그것 때문에 슬퍼하게 될 것이고 그것의 제사장들도 슬퍼하게 될 것인데 그것으로부터 그것의 영광이 떠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사마리아 주민은 그 송아지 때문에 두려워할 것입니다.
왜 두려워하냐면 그 송아지가 앗수르로 옮겨갈 것이기 때문입니다(6절). 이 송아지는 에브라임과 이스라엘이 신으로 섬기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앗수르로 가서 야렙 왕에게 예물이 된다고 합니다. "야렙 왕"에서 "야렙(יָרֵב)"의 어근은 다투다라는 뜻의 리바브(רָבַב)입니다. 그러므로 야렙 왕이라는 것은 다툼을 일으키는 자라는 뜻입니다. "야렙 왕"은 호세아 5장 13절에서도 나오는데 에브라임은 그에게 사람을 보내서 도와달라고 했지만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이 왕은 다투어서, 즉 이스라엘을 공격하여서 송아지를 예물로 받아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에브라임은 수치를 당하고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계책을 부끄러워했습니다. 즉 유다 왕 아하스는 앗수르의 도움을 바랐지만 도움은커녕 공격을 받은 것입니다.
여기에서 송아지의 무능이 철저하게 드러났습니다. 우상은 헛된 것입니다. 위기 때 구원해주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백성과 제사장들은 슬퍼한다고 합니다(5절). 이것은 사람이 얼마나 무지한지를 보여줍니다.
사마리아 왕은 물 위에 있는 거품 같이 멸망할 것이라고 합니다(7절). 앗수르의 침공으로 멸망 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죄, 즉 벧엘에 금송아지를 세워 놓고 숭배한 죄는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곧 아웬의 산당은 파괴되고 가시와 찔레가 그 제단 위에서 날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산더러 우리를 가리라 할 것입니다. 작은 산더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할 것입니다(8절).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철저하고 무서운지를 보여줍니다. 이런 모습은 계시록 6장 16절에도 나오는데 거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땅의 사람들(계 6:15)입니다. 즉 하나님 백성과 대비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들의 모습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때 회개하지 않고 끝까지 불신앙을 고수하는 모습입니다.
네가 기브아 시대로부터 범죄하더니
9 이스라엘아 네가 기브아 시대로부터 범죄하더니 지금까지 죄를 짓는구나 그러니 범죄한 자손들에 대한 전쟁이 어찌 기브아에서 일어나지 않겠느냐
10 내가 원하는 때에 그들을 징계하리니 그들이 두 가지 죄에 걸릴 때에 만민이 모여서 그들을 치리라
11 에브라임은 마치 길들인 암소 같아서 곡식 밟기를 좋아하나 내가 그의 아름다운 목에 멍에를 메우고 에브라임 위에 사람을 태우리니 유다가 밭을 갈고 야곱이 흙덩이를 깨뜨리리라
하나님께서는 기브아의 시대를 말씀하십니다. 기브아의 시대는 9장 9절에서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9장 9절에서 하나님은 에브라임이 "그들은 기브아의 시대와 같이 심히 부패한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10장 9절에서 "이스라엘아 네가 기브아 시대로부터 범죄하더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브아의 시대는 사사기 19장에서 21장까지 나오는 사건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서 일어난 일로 때문에 발생한 열한 지파 대 베냐민 지파의 전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지금도 기브아에서 일어난 범죄와 같은 죄를 계속 범하고 있다고 하십니다.
기브아에서 일어난 범죄의 핵심은 레위인의 타락과 나그네를 선대하지 않은 것과 포학과 음행입니다. 이런 일은 이방인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심각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죄를 이스라엘은 계속 범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호세아 4장과 5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4장 2절에 보면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라고 말씀합니다. 5장 2-3절에 보면 "패역자가 살육죄에 깊이 빠졌으매 ... 에브라임아 이제 네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이 더러워졌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죄는 기브아 시대에 일어난 죄와 같은 것입니다. 이런 범죄한 자손들에 대해서 전쟁이 일어날 것인데 그 전쟁은 마치 기브아 시대에 일어났던 전쟁과 같을 것입니다(9절 하).
그 전쟁은 기브아 시대와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왜냐하면 기브아 시대의 전쟁은 열한 지파가 베냐민 지파를 대하여 벌인 전쟁인 반면, 여호와께서 징계로 벌하실 전쟁은 만민이 모여서 이스라엘을 치는 전쟁이기 때문입니다(10절). 그 전쟁으로 인해서 에브라임의 사정은 비참해질 것입니다(11절).
에브라임의 사정이 비참해 지는 것은 곡식 밟기를 좋아하던 암소가 멍에를 메고 사람을 태워서 밭을 가는 힘든 노역을 하는 처지로 전락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일을 하나님께서 행하신다고 하십니다. 원어를 보면 베아니(וַאֲנִ֣י)가 나오는데 이 말은 "그러나 내가"라고 해석이 되면서 "내가"를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에브라임의 목에 멍에를 메우시겠다는 뜻입니다. 곡식을 밟는다는 것은 타작마당에서 일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일하면서 마음껏 먹을 수 있었고 또 그리 힘들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랬는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멍에를 메게 하심으로 그는 멍에를 메고 그 무거운 멍에를 끌어 밭을 갈아야 했습니다. 이전과 비교하면 굉장히 힘든 노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내가 에브라임을 타게 하겠다(אַרְכִּ֤יב)"입니다. 누가 타게 하겠다는 것은 생략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은 의역해서 "사람을 태우리니"라고 합니다. 이 말은 이방 나라가 에브라임을 타고 마음대로 끌고 다니게 하겠다는 뜻입니다. 앗수르가 에브라임을 압제하고 마음대로 끌고 갈 것을 암시합니다.
이 일로 유다는 밭을 갈게 됩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야곱은 그에게 파괴할 것이다(יְשַׂדֶּד־ל֖וֹ יַעֲקֹֽב)"입니다. 이것은 기브아의 전쟁을 생각나게 하는 표현입니다. 이스라엘 열한 지파가 베냐민을 거의 멸절시켰듯이 유다와 야곱이 에브라임을 파괴하는 것처럼 묘사합니다. 이것은 유다 왕 요시야 때에 성취되었습니다. 요시야가 북왕국 이스라엘에 있는 모든 제단을 파괴한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13 너희는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
14 그러므로 너희 백성 중에 요란함이 일어나며 네 산성들이 다 무너지되 살만이 전쟁의 날에 벧아벨을 무너뜨린 것 같이 될 것이라 그 때에 어머니와 자식이 함께 부서졌도다
15 너희의 큰 악으로 말미암아 벧엘이 이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이스라엘 왕이 새벽에 정녕 망하리로다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공의는 체데카(צְדָקָה)입니다. 이 공의를 심으면 인애, 즉 헤세드(חֶ֔סֶד)를 거둡니다. 공의는 하나님의 뜻에 딱 맞게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대로 행하는 것이 공의입니다. 그렇게 공의를 심으면 헤세드, 즉 언약적 사랑이라는 열매가 맺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면서 이웃을 사랑하면 사회에 사랑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자기를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이 일로 가장 큰 혜택을 보는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종이 우리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라고 하십니다. 위에서 밭을 가는 이미지를 그대로 사용하시면서 마음을 갈아 엎으라고 하십니다. 마음을 갈아 엎어서 여호와를 찾으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여호와를 찾으면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공의가 비처럼 내리면 의의 열매가 나오는데 그것이 바로 인애입니다. 그러므로 공의와 인애는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심을 수 있고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 마음 밭을 갈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 뜻을 깨달아 돌이켜 죄 사함을 얻는 것입니다(막 4:12).
그러나 "너희" 즉 이스라엘은 악을 밭 갈고 죄를 거두었습니다. 거짓 열매를 먹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길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길이 아닌 것은 다 죄요, 거짓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길과 자기 용사의 많음을 의뢰했습니다(13절).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데 자기 자신을 믿은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악입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성경은, 신구약이 다 함께 인간의 자기 신뢰를 악의 근본으로 여기며 정죄한다"라고 주석합니다(박윤선, 호세아서 주석, 70쪽).
자기를 신뢰하면 망합니다(15절, 정녕 망하리로다). 하나님께서는 "너희 백성 중에 요란함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십니다. 용사가 아무리 많아도 그들이 단결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 백성 가운데 요란함이 일어난다는 것은 반란이 연이어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반란은 상대를 숙청함으로 일어납니다. 그 결과 용사들이 내전으로 자꾸 죽어나가게 됩니다. 그렇게 싸울 사람이 없게 되고 또한 산성들이 다 무너지게 된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사람이 스스로를 의지할 때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살만"은 앗수르 왕 살만에셀을 가리키고 "벧아벨"은 아르벨의 집(בֵּית אַרְבֵּאל)이라는 뜻인데 그곳이 어디인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르벨의 집이 살만에셀에 의해서 파괴될 때 어머니가 그 자식 위에 산산조각이 나면서 엎드러진(רֻטָּֽשָׁה) 일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어머니는 성벽이나 요새를 비유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식이 어머니를 의뢰하듯이 네가 너의 용사들과 산성들을 의뢰하지만 그것들이 다 무너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15절은 벧엘이 너희에게 이같이 행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벧엘에서 섬긴 우상 숭배의 죄가 그들을 철저하게 파괴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벧엘의 우상 숭배를 이용한 이스라엘 왕은 새벽에 망할 것이라고 합니다. 곧 동이 트기 전에 살아남지 못하고 망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벧엘을 이용해서 어떻게 왕권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그것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따라서 공의를 심으면 인애를 거둡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반면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하면 그것이 우리를 망하게 합니다. 죄가 죄 지은 사람을 죽입니다. 아무도 죄의 그런 작용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어리석은 것은 스스로를 믿는 것입니다. 신자는 스스로를 믿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신자는 철저하게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들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면서 오직 여호와를 찾는 사람들입니다.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성령님의 은혜로 공의를 심을 수 있습니다. 이것 또한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여호와를 찾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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