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26. 07:00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호세아
목차
호세아 7:1-16
찬송가 290장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여호와께 돌아가자고 했지만
6장에서는 여호와께로 돌아가자고 합니다(6:1) 매를 맞았지만 매 맞은 곳을 싸매어 주시고 낫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부활을 소망합니다(6:2). 부활을 소망하면서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합니다(6:3). 여호와를 아는 것이 곧 영생입니다(요 17:3). 아담은 하나님을 아는 것에 실패하고 하나님께 반역했습니다(6:7). 아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을 아는 것을 등한시 하고 반역을 범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심판을 당했습니다(6:10-11). 그 심판에서 특별히 제사장이 부각됩니다(6:8-9). 그 이유는 제사장의 직임 때문입니다. 제사장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여호와를 알도록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거짓을 행하며
1 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할 때에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이 드러나도다 그들은 거짓을 행하며 안으로 들어가 도둑질하고 밖으로 떼 지어 노략질하며
2 내가 모든 악을 기억하였음을 그들이 마음에 생각하지 아니하거니와 이제 그들의 행위가 그들을 에워싸고 내 얼굴 앞에 있도다
6장 1절에서 백성들은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돌아가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רָפָא) 것이요"라면서 그들의 믿음과 소망을 고백했습니다. 이에 대한 응답이 1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치료(רָפָא)하시려고, 즉 낫게 하시려고 보니까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이 드러났습니다.
그들은 거짓을 행했습니다. 즉 하나님을 속이려고 했습니다. 안에서는 도둑질을 하고 밖에서는 노략을 일삼았습니다. 거짓을 행했다는 것은 마치 그런 일이 없다는 듯이 행동했다는 뜻입니다. 겉으로는 의로운척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마음에서 간과했습니다. 무엇을 간과했냐면 여호와께서 그들의 모든 악을 기억하고 계셨음을 간과했습니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모르시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죄는 현재(이제 עַתָּה֙) 그들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은 현재 보시고 계셨습니다. 또한 그들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의 얼굴 앞에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치료하려고 하셨습니다(1절). 그러나 그렇게 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럴 능력이 없으셔서 치료를 못하신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죄입니다. 이사야 59장에도 똑같이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손이 짧아서 구원을 못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너희의 죄악이 너희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고 너희 죄가 하나님의 얼굴을 가렸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너희의 처지를 듣지 않으시는 것이라고 합니다(사 59:1-2).
아무리 하나님께 돌아가자고 해서 하나님을 구하고 돌아간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돌아왔다고 거저 받아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자주 범하는 착각 중 하나입니다. 내가 돌아왔는데 왜 돕지 않으시느냐, 내가 이렇게 도와달라고 구하는데 왜 모른척 하시느냐, 이럽니다. 그런데 그의 죄가 아직 그대로 있습니다. 죄에서 돌이키지도 않았고 예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도움만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저 낫기만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로 오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받아주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라고 무턱대고 가르쳐 놓으니까 사람들이 이렇게 오해해서 내가 가기만 하면 도와주시겠지 이러는 것입니다. 여전히 자기가 살아있으면서 여전히 그 마음 안에 죄를 품고 있으면서 도와달라고 하니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안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악으로, 거짓말로
3 그들이 그 악으로 왕을, 그 거짓말로 지도자들을 기쁘게 하도다
당시 이스라엘은 사회 전체가 부패했습니다. 왕과 지도자들이 악과 거짓말을 기뻐하는 지경까지 간 것입니다. 이것은 1절의 도둑질과 노략질에 연관됩니다. 도둑질을 하고 노략질을 해서 그것을 가지고 권력자들에게 아부한 것입니다. 권력자들은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그것이 악이든 거짓이든 상관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심히 부패한 사회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다 간음하는 자라
4 그들은 다 간음하는 자라 과자 만드는 자에 의해 달궈진 화덕과 같도다 그가 반죽을 뭉침으로 발효되기까지만 불 일으키기를 그칠 뿐이니라
호세아는 그들을 다 간음하는 자라고 합니다. 간음하는 자는 음욕으로 가득합니다. 음욕으로 가득한 것이 마치 달궈진 화덕과 같다고 합니다. 화덕은 반죽을 뭉쳐서 그 반죽이 발효될 때까지는 그것을 가열하기를 중단합니다. 반죽이 발효되면 바로 화덕을 가열합니다. 그러므로 화덕에서 불을 끄는 것은 필요에 의해서 불을 끄는 것입니다. 이처럼 간음을 행할 때 음욕이 잠시 소강상태가 되는 것은 다시 음욕이 불일듯 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간음은 우상숭배를 나타냅니다. 우상숭배 제의 안에 간음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문자적으로 간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사람이 죄를 짓는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기본적인 일입니다. 죄를 안 지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전적으로 타락했습니다.
지도자들과 왕의 행태
5 우리 왕의 날에 지도자들은 술의 뜨거움으로 병이 나며 왕은 오만한 자들과 더불어 악수하는도다
박윤선 목사님은 5절을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호세아서 주석, 49쪽).
여기 "우리 왕의 날"이라는 말은 이스라엘 왕의 생일이나 혹은 취임한 날을 가리킨다. 이 귀절의 의미는, 그 나라의 지도자들이 왕의 연회에 참여하여 유흥(遊興)에 빠지며 왕은 그런 사람들과 합작(合作)하니 그 나라는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오만한 자들과 악수하는도다"는 원어를 직역하자면 "그는 그의 손을 조롱하는 자들(לֹצְצִֽים)에게 뻗는다(מָשַׁךְ)"입니다. 조롱하는 자들은 앞에서는 아첨하지만 뒤에서는 악한 계획을 갖고 실행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악한 계획은 바로 왕을 엎드러뜨리는 것을 포함합니다(7절).
간교하여 화덕 같으니
6 그들이 가까이 올 때에 그들의 마음은 간교하여 화덕 같으니 그들의 분노는 밤새도록 자고 아침에 피우는 불꽃 같도다
7 그들이 다 화덕 같이 뜨거워져서 그 재판장들을 삼키며 그들의 왕들을 다 엎드러지게 하며 그들 중에는 내게 부르짖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조롱하는 자들이 왕에게 가까이 올 때 그들의 마음은 간교합니다. 왕을 위하는 것 같으나 실상은 왕을 해하려고 합니다(7절). 그들의 마음이 화덕같다고 하는 것은 그 마음에 다른 마음, 즉 충성되지 못한 마음, 음란한 마음(4절)을 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왕을 모시려는 마음이 아니라 분노의 마음으로 왕에게 가까이 오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다 화덕 같이 뜨거워져서 그 재판장들을 삼킨다고 합니다. 이것은 마치 화덕을 예열시킨 다음에 떡 반죽을 거기에 넣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이 재판장들을 삼키는 것은 우연히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계획하고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의 왕들을 다 엎드러지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도 그들 중에는 여호와께 부르짖는 자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호세아서 주석, 49쪽).
이것은, 이스라엘 나라의 지도자들 중에서 음모(陰謀)에 의하여 모든 반란(叛亂)을 빚어낸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씀이다. 그 때 20년 동안에 여섯 사람이 서로 뒤이어 임금이 된 일이 있었으니 얼마나 반역이 자주 일어난 사실을 알 수 있다(왕하 15:10, 14, 25).
뒤집지 않은 젼병이로다
8 에브라임이 여러 민족 가운데에 혼합되니 그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
8절은 에브라임이 여러 민족 가운데 혼합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비유하기를 그것이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라고 합니다. 전병을 구울 때 뒤집지 않으면 못 먹게 됩니다. 한 쪽은 타고 한 쪽은 덜 익기 때문입니다. 여러 민족 가운데 혼합되는 것 가운데 현저한 것이 바로 우상 숭배입니다. 에브라임은 금송아지를 섬겼는데 금송아지를 가리켜서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혼합주의 신앙입니다. 또한 바알 신앙을 들여와서 하나님을 가리켜서 나의 바알이라고 불렀습니다(2:16). 이처럼 여호와를 섬기면서 동시에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렇게 완전히 망쳐서 그들은 못 먹을 전병처럼 되었습니다.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도다
9 이방인들이 그의 힘을 삼켰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무성할지라도 알지 못하는도다
에브라임은 혼합주의 신앙 때문에 지성이 완전히 어두워졌습니다. 9절은 두 번이나 "알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알지 못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들은 자기들의 심각한 상태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알지 못한 것은 이방인들이 그의 힘을 삼켰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힘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힘을 이방인이 삼켰다는 것은 이방 종교가 들어와서 그들의 여호와 신앙을 못쓰게 함으로 그들에게서 힘을 빼앗았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우상 숭배의 죄에 빠져서 더 이상 하나님을 힘입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렇게 되어 심히 쇠약해졌습니다. 젊은이가 노인이 되어 백발이 무성하게 되는 그림처럼 쇠약해진 것입니다. 그렇게 쇠약해져갔지만 자기들이 그렇게 힘이 빠졌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생명을 얻고 그 생명이 더욱 풍성하게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과 함께 거하면서 하나님을 기뻐해야만 그렇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생명을 잃고 죽음에 성큼 다가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혼합주의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그들은 실상은 우상을 숭배하면서도 자기들은 여호와를 섬기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교만
10 이스라엘의 교만은 그 얼굴에 드러났나니 그들이 이 모든 일을 당하여도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구하지 아니하도다
10절은 "그리고 응답할 것이다(וְעָנָ֥ה)"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야 복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응답하는 것은 바로 이스라엘의 교만입니다. 교만이 응답하는데 그의 얼굴 안에서 응답합니다. 그들의 얼굴에 쇠약해지는 것으로 인해서 슬픈 기색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고 도리어 교만이 가득한 것입니다.
그들이 교만했다는 것은 그들이 그렇게 쇠약해져감을 당하면서도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않고 구하지도 않았다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그들은 사실 자기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9절). 교만은 이렇게 무섭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잠 16:18). 교만한 자, 곧 악인이 걸려넘어질 때에는 무엇에 걸려 넘어지는지도 모른다고 합니다(잠 4:19). 교만은 이렇게 사람을 어둡게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어리석은 비둘기
11 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 같이 지혜가 없어서 애굽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앗수르로 가는도다
그들이 돌아가고 구해야 할 대상은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리석어서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고 애굽을 향하여 부르짖고 앗수르로 갑니다. 이것은 어리석은 비둘기가 하는 행동입니다. 어리석은 비둘기는 사냥꾼이 자기를 잡으려고 만든 덫에 들어갑니다. 이런 비둘기처럼 이스라엘은 애굽이나 앗수르가 자기들을 삼키려고 하는 줄 모르고 그들에게 도움을 구한답시고 달려간 것입니다. 그들의 교만이 그들을 이토록 어리석게 했습니다.
징계하리라
12 그들이 갈 때에 내가 나의 그물을 그 위에 쳐서 공중의 새처럼 떨어뜨리고 전에 그 회중에 들려 준 대로 그들을 징계하리라
그들이 애굽이나 앗수르를 향하여 갈 때에, 곧 도움을 바라고 이방 나라로 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물을 그 위에 쳐서 떨어뜨리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들이 도움을 바라고 갔지만 도리어 애굽이나 앗수르 때문에 곤란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에 그들에게 경고한 그대로 그들을 징계하는 것입니다.
화 있을진저
13 화 있을진저 그들이 나를 떠나 그릇 갔음이니라 패망할진저 그들이 내게 범죄하였음이니라 내가 그들을 건져 주려 하나 그들이 나를 거슬러 거짓을 말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건져주려고 하셨습니다(13절). 그들을 치료하려고 하신 것입니다(1절).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께 거짓을 말했습니다. 죄를 지으면서도 죄가 없는 양 하나님께 나아간 것입니다. 속죄의 피를 의지하지 않고 자기 방법으로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것은 거짓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을 떠나서 애굽이나 앗수르로 향해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크나큰 죄악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들에게 화를 선포하셨습니다.
성심으로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며
14 성심으로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며 오직 침상에서 슬피 부르짖으며 곡식과 새 포도주로 말미암아 모이며 나를 거역하는도다
그들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저 침대에서 흐느낄 뿐이었습니다. 침대에서의 흐느낌은 회개의 울음이 아니고 육신적 고뇌의 표현일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익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절기에 하나님을 위해서 모이는 것이 아니라 "곡식과 새 포도주로 말미암아" 모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입니다.
절기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정한 때입니다. 목적이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절기는 추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라고 주신 것이 절기인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하나님은 빼고 곡식과 포도주만 기뻐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심각하게 모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과 교제하여 복과 즐거움을 누리라고 주신 절기에 복과 즐거움만을 바라고 모이는 것이니 이것은 반역과 다름 없었습니다.
힘 있게 하였으나
15 내가 그들 팔을 연습시켜 힘 있게 하였으나 그들은 내게 대하여 악을 꾀하는도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힘 있게 하셨습니다. 그들을 힘 힜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훈련시키시듯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힘 있게 하시기 위해서 그 팔을 연습시켜서 강하게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이스라엘은 그 힘을 믿고 하나님을 대하여 악을 꾀했습니다. 힘이 없었다면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했을 것인데 힘이 생겨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가지도 않은 것입니다.
속이는 활 같으며
16 그들은 돌아오나 높으신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니 속이는 활과 같으며 그들의 지도자들은 그 혀의 거친 말로 말미암아 칼에 엎드러지리니 이것이 애굽 땅에서 조롱거리가 되리라
16절은 그들이 돌아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높으신 자에게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혹시 몸은 돌아오는지 모르지만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하나님을 향해서 반역의 마음을 가진 것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런 그들의 상태는 마치 속이는 활과 같았습니다. 속이는 활은 곧게 뻗지 못했든지 아니면 제작이 잘못 되었든지 조준을 바로 해도 제대로 날아가지 않는 활입니다. 그들의 행동은 마치 회개한 것 같으나 그들의 마음이 아직 죄로 가득했기 때문에 그들은 속이는 활과 같이 과녁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지도자들은 그 혀의 거친 말로 말미암아 칼에 엎드러진다고 합니다. 그 혀의 거친 말은 직역하면 그 혀의 분노입니다. 그 혀의 분노는 하나님을 거슬러서 거짓을 말하는 것(13절)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칼에 엎드러집니다. 그 결과 그들은 도움을 얻으러 갔던 애굽 땅에서 조롱거리가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모든 좋은 것을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하나님께만 구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이 오직 우리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 속으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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