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27. 07:00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호세아
목차
호세아 8:1-14
찬송가 360장 행군 나팔 소리에
거짓 회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거짓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치료하시려고 보시는데 그들의 죄와 악이 드러났습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도둑질과 노략질이 여전히 성행하고 있었습니다(7:1). 그들은 죄에서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거짓을 말했습니다. 회개하는 척한 것입니다(7:13).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선포하십니다(1절).
원수가 덮치리니
1 나팔을 네 입에 댈지어다 원수가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에 덮치리니 이는 그들이 내 언약을 어기며 내 율법을 범함이로다
하나님께서는 "나팔을 네 입에 댈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나팔을 불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나팔을 불어야 하는 이유는 적군이 독수리처럼 덮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독수리가 덮치는 곳은 "여호와의 집"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집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으로 집을 삼아 그들과 함께 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택하시고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땅에 심으시고 그들을 집으로 삼으셔서 그들 가운데 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거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무한한 복과 은혜를 누리면서 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무한한 복과 은혜를 누리려면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고 율법을 준수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함께 사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십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려면 거룩해야 했습니다. 언약 조항과 율법에는 어떻게 사는 것이 거룩하게 사는 것인지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왕궁에서 살려면 왕의 법도를 따라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고 하나님의 율법을 범했습니다. 가장 거룩하고 아름답게 살아야 하는 곳에서 가장 추악하고 더럽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하나님과 함께 살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듣고 깨달아서 그 말씀을 준수해 나가는 것은 거룩함으로 연결됩니다. 그런데 거룩함은 목적이 아닙니다. 거룩함이 종착역이 아니고 거룩해서 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면서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함을 잃어버림으로 하나님에게서도 쫓겨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에 덮치"는 이는 이스라엘을 침략할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이라고 주석합니다(박윤선, 호세아서 주석, 53쪽).
외식자의 부르짖음
2 그들이 장차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우리 이스라엘이 주를 아나이다 하리라
적군이 갑자기 독수리처럼 덮칠 때에 그들은 다급해져서 하나님께 "나의 하나님이여 우리 이스라엘이 주를 아나이다"라고 부르짖는다고 하십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호세아서 주석, 54쪽).
이것은, 이스라엘이 긴급한 일을 당한 때에만 저렇게 하나님이 자기들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외식자들의 특징이다(마 7:22). 이런 말은, 그들의 말뿐으로서의 고백이고 그들의 행위와 생활은 아주 딴 것이다. 그것은 다음 귀절이 밝히 보여준다.
맞는 말씀입니다. 외식자들은 다급할 때에만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들은 평소에 하나님을 찾거나 하나님을 바라거나 하나님과 교제하지 않습니다. 다만 해결해야 하는 큰 문제를 만났을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을 찾가 자기가 주를 안다고 합니다. 평소에는 언약을 버리고 율법을 범했으면서 문제를 만나면 태세가 돌변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런 거짓에 속지 않으십니다.
이미 선을 버렸으니
3 이스라엘이 이미 선을 버렸으니 원수가 그를 따를 것이라
"우리 이스라엘이 주를 아나이다"라고 한 것이 외식인 것은 3절이 확증합니다. 이스라엘이 이미 선을 버린 것입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 "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
여기서 "선"이란 말은, 히브리 원어로 토브(טוֹב)이니 관사(冠詞) 없이 사용되어 강미(强味)를 보인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과 그와 관계하는 옳은 행위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평소에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마음을 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찾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 "버렸으니"라는 말(זָנַח)은 거절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매몰차게 거절했습니다. 그 결과는 원수가 그들을 추격하는(יִרְדְּֽפוֹ) 것입니다. 우리말로 "따를 것"이라고 번역이 되었는데 원어는 사냥꾼이 사냥감을 잡으려고 추격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떠나면 보호도 없어집니다. 그러면 원수가 뒤에서 추격하게 됩니다. 추격하는 목적은 삼키기 위해서입니다. 망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양이 목자를 떠나 양무리에서 이탈하면 그 양은 언제든지 포식자의 표적이 됩니다. 생명의 위협으로 불안에 떨게 되는 것입니다.
내게서 난 것이 아니며
4 그들이 왕들을 세웠으나 내게서 난 것이 아니며 그들이 지도자들을 세웠으나 내가 모르는 바이며 그들이 또 그 은, 금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었나니 결국은 파괴되고 말리라
이스라엘은 선을 버렸습니다(3절). 그들이 선을 버리고 한 일은 왕들을 세우는 일입니다. 또 지도자들을 세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세운 왕들과 지도자들은 하나님께서 모르는 자들입니다. 즉, 하나님의 인준을 받지 않은 자들입니다. 백성들이 자의로 세운 자들인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우상 숭배에 깊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여로보암이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의 선지자의 예언대로 된 것이나(왕상 11:31, 37)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택함이 된 것은 아니었다"라고 주석합니다.
네 송아지는 버려졌느니라
5 사마리아여 네 송아지는 버려졌느니라 내 진노가 무리를 향하여 타오르나니 그들이 어느 때에야 무죄하겠느냐
은, 금으로 자기를 위하여 만든 우상(4절)은 바로 송아지였습니다(5절). 이 송아지 우상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호세아서 주석, 54쪽).
왕상 12:25-33 참조. "송아지" 우상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배워 가진 것이었다. 애굽에서 사람들이 숫소는 오시리스라는 신에게 바치고 암소는 이시스라는 신에게 바쳤다. 하나님은 영광의 참 신이시다. 그를 아는 이스라엘이 저런 추잡(醜雜)한 우상을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격동시키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도 하나님을 아는 신자가 순간순간 하나님보다 피조물(被造物)을 더 사랑할 때에 하나님의 진노가 불타오르지 않을 수 없다.
여로보암이 송이지를 내세운 것은 그것이 오래된 우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여호와 신앙을 변질시켰습니다. 교회는 이런 것도 주의해야 합니다.
사람이 만든 것
6 이것은 이스라엘에서 나고 장인이 만든 것이라 참 신이 아니니 사마리아의 송아지가 산산조각이 나리라
은, 금으로 만든 송아지는 이스라엘에서 난 것입니다. 장인, 즉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그것은 참 신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것이지 사람이 하나님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유물론자인 포이어바흐(1804-1872)는 종교는 사람이 고안해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사람이 주장해서는 그것을 의지한다고 하면서 사람이 참 어리석다고 했습니다. 어리석다는 그의 말은 맞습니다. 다만 그는 유물론 입장에서 기독교의 하나님도 사람이 고안해서 만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주장도 참 어리석은 것입니다.
참 신이 아니기 때문에 사마리아의 송아지는 산산조각이 날 것입니다. 사람이 만든 것으로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그것을 신이라고 하면서 아무리 그것에 의미를 부여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요
7 그들이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라 심은 것이 줄기가 없으며 이삭은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요 혹시 맺을지라도 이방 사람이 삼키리라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둔다는 것은 헛된 것을 심고 그것 때문에 파괴를 당한다는 뜻입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호세아서 주석, 55쪽).
"바람"은 인간의 노력을 비유하고 "광풍"은 멸망을 비유하였다(Keil and Delitzsch). 그리고 그 아래 비유는 이스라엘의 농작물(農作物)의 실패 뿐 아니라, 그 모둔 소위(所爲)의 무가치(無價値) 또는 그 나라 자체의 멸망을 가리킨다.
우상 숭배는 헛된 것을 심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모든 열매를 망칩니다. 농사도 소출을을 거둘 수 없을 정도로 망칩니다. 혹시 얼마 소출을 거둔다고 하더라도 적군이 와서 그것을 빼앗아 갑니다. 이처럼 우상 숭배의 소득은 멸망입니다.
이미 삼켜졌은즉
8 이스라엘은 이미 삼켜졌은즉 이제 여러 나라 가운데에 있는 것이 즐겨 쓰지 아니하는 그릇 같도다
이스라엘은 이미 삼켜졌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이미 삼켜졌다는 것은 우상 숭배로 인해서 영적으로 적에게 이미 삼켜졌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곧 앗수르에게 삼켜지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영적인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 물질 세계에 확정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우상 숭배로 변질된 이스라엘은 그 어디에 두어도 쓸모가 없습니다. "즐겨 쓰지 아니하는 그릇"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쓸모는 하나님과 함께 거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빛은 말 아래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두어야 합니다. 소금은 맛을 내어야 합니다. 맛을 잃으면 길에 버려져서 사람에게 밟힐 뿐입니다. 우상 숭배는 하나님의 백성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소멸시킵니다. 하나님 백성의 쓸모를 잃어버리게 합니다.
앗수르로 갔고
9 그들이 홀로 떨어진 들나귀처럼 앗수르로 갔고 에브라임이 값 주고 사랑하는 자들을 얻었도다
이스라엘이 "들나귀"로 비유되는 것은 그들이 길들여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본성 안에 죄성이 있음을 나타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향하여 항상 반역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회개할 수도 없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할 수도 없습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으면 그는 예수님의 양무리에 편입됩니다. 더이상 홀로 떨어진 들나귀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양무리 안에 소속되어서 목자이신 예수님의 인도를 따라갑니다. 순하게 목자이신 예수님만 믿고 의지하며 따라가는 것입니다.
앗수르로 갔다는 것은 앗수르에게 도움을 청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갔다는 말(עָל֣וּ)의 어감이 좀 강합니다. 그 말은 올라갔다는 뜻입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에 대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보다도 앗수르 나라를 올려다 보고 간 것은 잘못이다"라고 주석합니다. 여기 올라가다라는 말은 사람이 하나님의 산에 올라간다고 할 때 쓰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박윤선 목사님의 주석대로 그들이 앗수르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은 하나님 자리에 앗수르를 올려 놓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에브라임이 값 주고 사랑하는 자들을 얻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앗수르의 도움을 위해서 돈을 지불한 것을 가리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왕 므나헴은 앗수르 왕 불이 와서 그 땅을 치려고 할 때에 그에게 은 천 달라트를 주면서 자기를 도와달라고 했습니다(왕하 15:19). 므나헴은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모든 큰 부자에게 강탈했습니다(왕하 15:20).
쇠하기 시작하리라
10 그들이 여러 나라에게 값을 주었을지라도 이제 내가 그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지도자의 임금이 지워 준 짐으로 말미암아 쇠하기 시작하리라
그들이 여러 나라에 값을 주었다는 말(תָּנָה)과 9절의 에브라임이 값주고 사랑하는 자들을 얻었다고 할 때 값을 주었다는 말(תָּנָה)이 같은 말입니다. 그러니까 당장에는 값을 주고 침략을 안 할 것처럼 하고 물러갔습니다(왕하 15:20).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제" 즉 지금 그들을 모으신다고 하십니다. 물러갔던 이방 나라들, 특별히 앗수르를 불러서 그들을 치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돈으로 해결하려고 했는데 그것이 헛수고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돈으로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들은 지도자의 임금이 지워 준 짐"으로 버거워하기 시작했습니다. 부자에게 은 오십 세겔 씩을 강제적으로 거두어서(왕하 15:20) 내게 함으로 국력이 쇠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돈이면 해결될 줄 알았는데 해결책이라고 생각한 바로 그것 때문에 나라가 더 쇠약해졌습니다. 나중에 앗수르가 다시 쳐들어왔을 때 대항할 어떤 힘도 남아있지 않게 된 것입니다.
죄를 위하여 제단을
11 에브라임은 죄를 위하여 제단을 많이 만들더니 그 제단이 그에게 범죄하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에브라임은 죄를 위하여 제단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에브라임이 제단을 많이 만들었을 때에 그것은 백성들이 편하게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은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위한 제단을 만들었고 그 사이에 수많은 제단을 또 만들었습니다(왕하 10:29). 그것이 죄를 위하여 만든 것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거역하면서 그렇게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나아오라고 하셨는데 북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정치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즉, 하나님을 위하여가 아니고 자기를 위하여 임의로 여호와 신앙을 변질시켰습니다. 하나님께 반역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제단을 많이 만든 것은 죄를 위하여 그렇게 한 것입니다.
죄를 위하여 만든 제단들은 백성들을 계속 범죄하게 했습니다. 죄의 악순환이 계속 발생했습니다.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면서 종종 하나님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어떤 조치를 취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잘 보면 그것 때문에 죄의 악순환이 생겨납니다. 신자는 이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특별히 교회 지도자는 이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를 위하여 율법을
12 내가 그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그들은 이상한 것으로 여기도다
제단을 그렇게 많이 만든 것은 율법을 어긴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을 위하여 당신님의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기록하셔서 주신 이유는 "그를 위하여(ל֔וֹ)"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배워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올바르게 나아가도록, 그렇게 해서 복과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서 율법을 기록해서 주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성경 말씀이 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우리가 배워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풍성한 생명을 누리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을 이상한 것(זוּר)으로 여겼습니다. 이상한 것으로 여겼다는 것은 전혀 낯선 것으로 여겼다는 뜻입니다. 자기들과 전혀 상관 없는 것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생명의 길을 제시하건만 그것은 전혀 자기들과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생명으로부터 떨어져나가게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땅에서 쫓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의 죄악을 기억하여
13 그들이 내게 고기를 제물로 드리고 먹을지라도 여호와는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악을 기억하여 그 죄를 벌하리니 그들은 애굽으로 다시 가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단에서 제물을 드리고 그것을 먹는 제사 의식은 계속 행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것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형식으로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일지라도 그 내용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짐승을 제물로 드리고 그 피를 쏟는 것은 속죄를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속죄의 효력이 전혀 없다고 합니다.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여" 그들의 죄를 계속 기억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그들의 믿음이 거짓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형식을 취했지만 그 마음은 우상에게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그런 거짓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속죄제사가 효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벌하신다고 합니다. 그 벌은 바로 "그들은 애굽으로 다시 가리라"입니다. 애굽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는데 애굽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합니다. 이것은 죄와 사망의 노예 상태로 다시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자기를 지으신 이를 잊어버리고
14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이를 잊어버리고 왕궁들을 세웠으며 유다는 견고한 성읍을 많이 쌓았으나 내가 그 성읍들에 불을 보내어 그 성들을 삼키게 하리라
진정한 보호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보호입니다. 아무리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또는 안락하게 살기 위해서 각종 건축물을 지어도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시지 않으면 그 모든 것이 헛것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유다가 자기들을 위해서 지은 건축물들에 불을 보내신다고 하십니다. 즉, 불사름의 심판을 내리신다는 뜻입니다(렘 38:23 참조). 이런 심판은 자기를 지으신 이를 잊어버린 자가 당하는 심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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