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23. 07:00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호세아
호세아 4:1-19
찬송가 426장 이 죄인을 완전케 하시옵고
3장 문맥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을 사랑하십니다(3:1). 그 사랑은 그들이 다른 신을 섬기고 유흥을 즐겨도 변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호세아 선지자에게 알게 하시고 호세아의 상징 행동으로 백성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곧 호세아에게 음녀가 된 그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호세아는 고멜을 다시 사와서 근신하라고 말했습니다(3:2-3). 그 근신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포로가 되어서 겪을 일을 미리 보여주는 근신이었습니다(3:4). 근신 후에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돌아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3:5).
이스라엘의 심각한 사회상
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2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4장 1절은 너희는 들으라(שִׁמְע֥וּ)로 시작합니다. 들어야 할 것은 여호와의 말씀입니다(דְבַר־ יְהוָ֖ה). 들어야 하는 주체는 이스라엘 자손들(בְּנֵ֣י יִשְׂרָאֵ֑ל)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들어야 하는 말씀은 여호와께서 법적으로 다투시는 말씀(רִ֤יב)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땅의 주민들을 법적으로 고소하시는데 그 고소하시는 내용은 이 땅에 진실(אֱמֶ֧ת)도 없고 인애(חֶ֛סֶד)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דַּ֥עַת אֱלֹהִ֖ים)도 없다는 것입니다. 진실과 인애와 여호와를 아는 것은 2장 19-20절에 나오는 것입니다. 즉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신부로 맞이하시고 그에게 장가 드실 때에 당연히 있는 것들이 바로 진실과 인애와 여호와를 아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여호와와 언약을 맺은 언약 백성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가지고 계신 속성들을 그들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땅에는 그것들이 없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것을 고소하신 것입니다. 진실과 인애와 여호와를 아는 지식에 대해서는 2장 19-20절의 해석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그 땅에 거주민이 여호와의 백성이기 때문에 그 땅에는 진실과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없었습니다. 다만 있는 것이라곤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이 있었습니다. 이 다섯 가지는 다 부정사 형태로 나옵니다. 앞에 나오는 진실과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명사형태로 나오는 것과 대조됩니다. 이것이 부정사 절대형(동사를 강조함, 동시 동작 행동을 나타냄)으로 나온다는 것은 이런 일들이 그 땅에서 계속 자행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우리 말로 번역하자면 "저주하는 행동과 속이는 행동과 살인하는 행동과 도둑질하는 행동과 간음하는 행동이 있다"라고 변역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행동이 강조되는 것입니다. 이런 행동들은 진실과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들입니다.
그 다음 나오는 말은 포악하여(פָּרָ֕צוּ)입니다. 이 말(פָּרַץ)은 "밖으로 터져 나온다, 갑자기 증가한다, 흩뿌린다(To break out, burst forth, increase, spread)"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앞에 나온 행동들이 잔잔히 이어지는 것이 아니고 자꾸 자꾸 증가하고 퍼져가는 모양을 묘사합니다. 그 결과는 피가 피를 뒤잇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문자적으로 피가 흐르는데 또 피가 흘러서 피 흘림이 전염된다는 뜻입니다. 2절은 우리말로 그냥 읽으면 그렇구나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데 원어로 보면 당시 이스라엘의 죄악상이 얼마나 심각했는지가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이 자꾸 자꾸 증가하고 퍼져나가서 그것 때문에 피해를 보고 피 흘리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는 형국인 것입니다. 피를 흘린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생명을 빼앗긴다는 뜻입니다. 이 안에는 모든 억울한 일이 다 포함됩니다.
쇠잔하는 자연
3 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거기 사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3절은 2절의 당연한 귀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3절은 "그러므로(עַל־ כֵּ֣ן)"로 시작합니다. 땅에서 자꾸 피가 흐르기 때문에 땅이 슬퍼합니다. 슬퍼한다고 번역된 히브리 원어(אָבַל)는 좀 더 강한 말입니다. 이 말은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사람들 때문에 애통해하고 비통해한다는 의미입니다. 땅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해하고 피를 흘리기 때문에 거기 사는 모든 것(כָּל־יוֹשֵׁ֣ב בָּ֔הּ)이 다 쇠잔할 것이라고 합니다. 땅 위에 있는 들짐승과 공중의 새 뿐만 아니라 땅 아래 바다에 사는 물고기도 없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사람이 사람의 피를 흘리는 것은 자연 만물을 쇠잔하게 합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인류가 그 죄로 인하여 고난을 받음에 따라 동식물(動植物)이나 광물(鑛物)까지도 도탄(塗炭)에 빠진다는 것은, 구약의 일반적 사상이다(사 16:8, 24:3-6; 습 1:2, 3; 렘 12:4; 욜 1:10, 18)"라고 주석합니다. 이와 비슷하게 사도 바울은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롬 8:22)"라고 씁니다.
제사장과 다투는 자처럼
4 그러나 어떤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처럼 되었음이니라
이런 비참한 현실을 보면서 비탄해 하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사람들을 붙잡고 다툴 것입니다. 이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냐,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 이것은 지도자의 잘못 아니냐, 이런 식으로 다투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너희끼리 다투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안에서 책임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 누구를 책망할 수 있는 단계를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네 백성들이"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 당신님의 백성들이 아니요 "너의 백성들"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너"는 "제사장"을 가리킵니다. 제사장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잘 가르쳐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백성들이 그 땅에서 피를 넘치도록 흘리는 이유는 그들이 제사장에게 교육을 잘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누구를 책망할 것이 못 됩니다. 모두의 책임입니다.
넘어지겠고
5 너는 낮에 넘어지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넘어지리라 내가 네 어머니를 멸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너", 곧 제사장이 낮에 넘어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제사장은 낮에, 백성들이 정상적으로 생활하는 시간, 즉 평소에 그들을 가르쳐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낮에 넘어집니다.
또한 제사장과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넘어집니다. 선지자는 제사장과 같이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서 돌이키게 하는 사람입니다. 특별히 선지자는 비상시, 즉 백성들이 어둠 가운데 빠졌을 때에 그들을 깨우치는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제사장처럼 선지자도 자기의 직임을 잘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밤에 넘어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제사장과 선지자가 넘어지는 것, 즉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큰 재앙이 됩니다. 그것은 이미 심판이 시작된 것인데 그 결과는 "내가 네 어머니를 멸하리라"입니다. 즉 이스라엘 나라가 멸망 당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흥망(興亡)이 결정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그 나라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제사장과 선지자가 없으니 그 나라는 멸하기로 작정된 것이나 다름 없게 됩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5절에서 "내가 네 어머니를 멸하리라"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6절이 명확하게 드러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멸망 당하는 이유는 그 안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지식은 바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여기서 "너"는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이 지식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지식이 없어서 망하게 된 것입니다. 제사장이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잘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이 자기의 직임을 잘 감당하지 못함으로 하나님께서는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직임을 등한시하는 사람은 그 직임을 빼앗기게 되어 있습니다. 제사장이 직임을 빼앗기게 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에 가장 정통해야 하는 사람들이 율법을 잊었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잊었기 때문에 그들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잘 가르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백성이 지식이 없어서 망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제사장들이 그 직임을 빼앗겼다는 것은 그 자녀들도 제사장으로 세움을 잊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라는 말씀의 뜻입니다. 이 말씀은 실제로 성취되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에 많은 제사장 가문에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여기 이 말씀은 교역자들에게 울림이 되어야 합니다. 교역자들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연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꾸 자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고 그것을 열심히 연구함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잊으면 안 되고 자꾸 묵상하고 마음에 품고 생각해야 합니다. 거기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아는 데에서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인생의 다른 모든 면이 성숙해가고 성장해가고 풍성해지는데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있어서는 자꾸 뒤로 퇴보하고 우선 순위에서 밀리고 거기에서 즐거움을 얻지 못하게 된다면 백성들, 즉 성도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가 망합니다. 결국 직임을 빼앗기게 됩니다.
영화를 변하여
7 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제사장들은 번성할 수록 하나님께 범죄했습니다. 제사장은 영광스러운(כָּבוֹד) 직분입니다. 그 영광은 그들이 하나님을 안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을 잊고 하나님을 등한시했습니다(6절).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제사장이 하나님을 모른다니! 그러므로 그들의 영화(כְּבוֹדָ֖ם) 즉 제사장이라는 그 영광은 곧 그들에게 수치(욕, קָלוֹן)가 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물어봐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이 제사장이라는 것 자체가 수치가 되는 것입니다.
속죄제물을 먹고
8 그들이 내 백성의 속죄제물을 먹고 그 마음을 그들의 죄악에 두는도다
8절 말씀에 대해서는 박윤선 목사님이 잘 해석해 놓았습니다. 그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박윤선, 호세아서 주석, 34쪽).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다. 그들은 백성을 위하여 제사를 드려준 뒤에 제물을 분깃으로 먹는데(레 10:17) 그것에 재미를 붙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백성들의 범죄 건수(犯罪件數)가 많아지기를 원하였다. "그 마음을 그들의 죄악에 둔"다는 말씀이 그 뜻이다. "마음을 둔다"는 말(יִשְׂא֥וּ נַפְשֽׁוֹ)은 영혼을 쳐든다는 뜻이니 사모한다는 의미이다(Keil and Delitzsch). 제사장들이 이렇게 되면 직업적(職業的) 종교가들이 된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미워하신다.
제사장은 자기 직임을 돈과 연관 지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의 거룩한 직임을 세속 직업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먹고 사는 것인데 그것을 잊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결국 일반 백성처럼 되어버렸습니다(9절, 6절 해석 참조).
행위대로 갚으리라
9 장차는 백성이나 제사장이나 동일함이라 내가 그들의 행실대로 벌하며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리라
10 그들이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며 음행하여도 수효가 늘지 못하니 이는 여호와를 버리고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9-10절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호세아서 주석, 34쪽).
제사장들이 그 직분을 오용(誤用)하였으니 만큼, 저들은 백성들과 같이 멸망한 것이다. 저들은 불법하게라도 먹기를 좋아하지만 그것이 저들에게 복이 되지 못한다. 저들이 불법하게 처첩(妻妾)을 두어도 자손이 퍼지지 않을 것이니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런 행위를 저주하시기 때문이다(10절).
제사장은 거룩합니다. 제사장이 거룩하다고 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속해서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그리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거룩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의 행위를 다 보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겠다고 하십니다(9절). 직임만 믿고 행실을 거룩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책임을 물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을 물으실 때에 제사장들은 열매가 없는 저주를 받게 됩니다.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고 음행하여도 수효가 늘지 않는 저주를 당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먹는 것에 집중했습니다(8절). 그러나 그것이 그들에게 복이 되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집중해야 할 사람들이 먹는 것에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직임을 받은 사람들은 그 직임에 충실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래야 열매가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성관계를 가져도 자녀가 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여호와를 버렸기 때문입니다. 열매있는 삶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따르는 것으로만 영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저주는 제사장만 받는 것이 아니고 일반 백성들도 받는 것입니다. 일반 백성이 이런 저주를 받는 이유는 제사장들이 백성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일반 백성들도 아무 열매를 거두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제사장에게도 당연히 타격이 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저주의 시작은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이 여호와를 버리고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 백성도 여호와를 버린 것입니다.
마음을 빼앗느니라
11 음행과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가 마음을 빼앗느니라
여기서 음행과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는 우상 숭배를 가리킵니다. 우상 숭배 제의에 포함된 음행과 음주는 사람의 정욕을 부추깁니다. 바알 숭배는 사람이 쾌락을 추구하면서 정욕을 채우면 그것이 또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준닥 가르쳤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가르침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마음이 미혹되어
12 내 백성이 나무에게 묻고 그 막대기는 그들에게 고하나니 이는 그들이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버리고 음행하였음이니라
우상숭배자들은 하나님께 묻지 않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길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 뜻대로 하려고 하다보니 나무에게 묻고 막대기 점을 치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무는 나무로 만든 우상, 곧 드라빔(3:4)을 의미하고 막대기는 막대기점(Rhabdomancy)에 사용된 지팡이를 가리킨다고 합니다(박윤선, 호세아서 주석, 34쪽).
막대기점(占)이라는 것은 그 때에 점쟁이가 막대기 두 개를 쳐들었다가 떨어뜨릴 때에 그 떨어지는 방위(方位)를 보고서 신(神)의 뜻을 알았다고 한다(Kei and Delitzsch).
여기서 "음란"이라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서 거짓된 신을 따름에 대한 비유이다. 이런 미신을 따르는 이교(異敎), 특히 아세라 숭배(Asherah worship)에는 남녀(男女)의 음란한 짓이 많았다는 것도 사실이다.
음란은 사람의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했습니다(3:2 해석 참조). 음란과 마찬가지로 우상숭배도 사람의 가치를 떨어뜨립니다. 사람이 막대기에게 묻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아무리 못해도 막대기보다 훨씬 지혜롭습니다. 그런 사람이 막대기에게 인도를 구한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사람의 지적 능력과 가치가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런 우상숭배는 음행을 부르고 이런 음행이 사람의 눈과 귀를 가려 버립니다. 그렇게 해서 사람이 앞길을 분간 못하게 됩니다. 사람이 자기 앞길을 잘 분간하고 분별함으로 지혜를 가지고 나아가려면 하나님을 굳게 붙들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합니다.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망하리라
13 그들이 산 꼭대기에서 제사를 드리며 작은 산 위에서 분향하되 참나무와 버드나무와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하니 이는 그 나무 그늘이 좋음이라 이러므로 너희 딸들은 음행하며 너희 며느리들은 간음을 행하는도다
14 너희 딸들이 음행하며 너희 며느리들이 간음하여도 내가 벌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남자들도 창기와 함께 나가며 음부와 함께 희생을 드림이니라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망하리라
산당은 원래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우상 숭배가 들어온 다음부터는 혼합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종교가 개혁될 때에는 하나님을 섬겼다가 우상숭배가 득세할 때에는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다 왕 중에서 산당을 제거한 왕이 칭찬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에서 각자 섬기는 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나무 그늘 아래에서 음행을 범했습니다. "간음을 행하는도다"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우상 제의 안에 음란한 행위가 포함되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나온 아세라 숭배가 특히 그랬습니다. 14절을 보면 여자들만 그런 것이 아니고 남자들도 그렇게 음란한 제의에 참석했다고 합니다. 온 나라가 음란으로 뒤덮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망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맞습니다. 깨닫지 못하면 망합니다. 그런데 음란에 빠지면 스스로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음란에 마음이 미혹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12절).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가 있어야 합니다.
유다는 죄를 범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15 이스라엘아 너는 음행하여도 유다는 죄를 범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너희는 길갈로 가지 말며 벧아웬으로 올라가지 말며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지 말지어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에게는 특별한 보호를 베푸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유다에는 하나님께서 다윗과 같은 왕을 주셔서 산당 제사를 없애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죄를 범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유다에 베푸신 특별한 은혜였습니다. 이 은혜 덕분에 유다는 이스라엘이 멸망하고도 약 136년 간이나 더 존속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너희는 길갈로 가지 말며 벧아윈으로 올라가지 말며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호세아서 주석, 35쪽).
이 말씀은 이스라엘에게 부탁하는 말씀이다. "길갈"은 북국(北國)의 우상숭배 장소이다(9:15, 21:11; 암 4:4, 5:5). "벧아웬"은 "벧엘"의 별명이니 역시 북국에 있는 우상의 장소이다(왕상 12:29).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지 말지어다" 그 때에 우상숭배자들이 언필칭(言必稱) 여호와를 섬긴다고 하면서 그 종교의 제도는 우상을 섬기던 제도를 그대로 사용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도 하였다. 그것은 외식(外飾)이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그것을 금한다.
버려 두라
16 이스라엘은 완강한 암소처럼 완강하니 이제 여호와께서 어린 양을 넓은 들에서 먹임 같이 그들을 먹이시겠느냐
17 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 두라
18 그들이 마시기를 다 하고는 이어서 음행하였으며 그들은 부끄러운 일을 좋아하느니라
19 바람이 그 날개로 그를 쌌나니 그들이 그 제물로 말미암아 부끄러운 일을 당하리라
16절은 이스라엘이 완강한 암소 같다고 합니다. 여기 완강한 암소라는 말(פָּרָה)은 아직 새끼를 낳은 적이 없는 어린 암소(heifer)를 가리킵니다. 송아지는 아직 길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주인이 이끄는 대로 가지 않습니다. 반면 어린 양은 주인이 이끄는 대로 순하게 따라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 양은 넓은 들에서 먹일 수 있지만 완강한 암소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우상과 연합하였기 때문입니다(17절). 여기 연합했다는 말은 부부관계와 같은 연합을 가리킵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이것은, 에브라임(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이교의 바알신과 혼동하는 사상에 너무 물들어 고칠 여망이 없는 것을 가리킨다"라고 주석합니다(박윤선, 호세아서 주석, 36쪽). 그러므로 그를 "버려 두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버려 두시는 것이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난 것이기 때문입니다(롬 1:18, 24, 26, 28).
우상 제의 가운데 술을 마시고 이어서 음행을 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 제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좋아했습니다. 그것이 부끄러운 일인 줄 생각하지 못하고 좋아했습니다(18절). 하나님께서는 바람이 날개로 그들을 쌌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바람은 영을 뜻하기도 하는 루아흐(ר֛וּחַ)라는 단어입니다. 이 루아흐는 진노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을 감쌌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음행을 하면서 자기들 마음대로 쾌락을 누린다고 좋아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을 꼼짝 못하게 감싸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우상에게 드린 제물 때문에 부끄러운 일을 당할 것입니다. 즉 그들이 행한 음란한 제사로 인해서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
죄를 짓는데 당장 심판이 임하지 않는다고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계속 죄를 짓다가 필경 망하게 됩니다. 이것이 가장 무서운 일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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