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호세아 13장 1-16절 |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2024. 12. 2. 07:00성서유니온 매일성경/호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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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호세아 13:1-16

    찬송가 365장 마음속에 근심 있는 사람


    12장 문맥

    12장에서는 에브라임이 애굽과 앗수르를 의지하는 것과 유다가 이리저리 방황하는 것(11:12)에 대해서 야곱을 들어서 교훈하셨습니다. 야곱이 속이는 자였으나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는 과정을 말씀하시면서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12:6). 

     

    또한 에브라임이 속이기를 좋아하는 가나안 인(상인)과 같다고 하시고(12:7) 여로보암 2세 때 그들이 번영을 반영하는 그들의 고백, "나는 실로 부자라"라고 한 것에 대해서 그들은 가나안에서 동화되어서는 안 되는 택함을 받은 사람들인 것을 상기키셨습니다(12:9). 에브라임이 그것을 다시 깨닫기 위해서 징계는 불가피했습니다(13:14). 

    우상 숭배의 헛됨

    1   에브라임이 말을 하면 사람들이 떨었도다 그가 이스라엘 중에서 자기를 높이더니 바알로 말미암아 범죄하므로 망하였거늘
    2   이제도 그들은 더욱 범죄하여 그 은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부어 만들되 자기의 정교함을 따라 우상을 만들었으며 그것은 다 은장색이 만든 것이거늘 그들은 그것에 대하여 말하기를 제사를 드리는 자는 송아지와 입을 맞출 것이라 하도다
    3   이러므로 그들은 아침 구름 같으며 쉬 사라지는 이슬 같으며 타작 마당에서 광풍에 날리는 쭉정이 같으며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 같으리라
    4   그러나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에브라임이 말을 하면 사람들이 떨었습니다. 이 말은 에브라임이 열두 지파 중에서 힘이 셌다는 뜻입니다. "에브라임은 모든 지파 중 지도적 역할을 하였고(삿 8:1, 2, 12:1), 북국의 지도자 여로보암이 역시 에브라임 족속에 속하였다(왕상 11:26, 12:20). 이렇게 에브라임 족속은 사람들을 두렵게 할 만큼 탁월한 인격의 기세(氣勢)를 가졌던 것이다(박윤선 호세아서 주석, 84쪽)."

     

    그렇게 자기를 높이던 에브라임은 바알로 말미암아 범죄하여 망했습니다(1절). 그들이 바알을 숭배한 것은 아합 때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사실 그들이 망한 것은 그 때부터였습니다. 여로보암 2세 때 아무리 나라가 안정이 되고 부강하다고 하더라도 우상을 숭배한 순간부터 망하는 길로 들어선 것입니다. 

     

    에브라임은 자기들이 망한 줄 모르고 더욱 범죄했습니다. "그 은으로" 즉 그들이 번 돈으로(12:7-8) 우상을 계속 만들었습니다. 은장색이 우상을 만드는 것이 나라 안에서 돈이 몰리는 하나의 산업이 되었습니다. 나라 안에 유행이 생겼는데 "제사를 드리는 자는 송아지와 입을 맞출 것이라"라는 말이 유행이 되어 돌았습니다. 송아지와 입을 맞추라는 것은 당시 금송아지 숭배와 바알 숭배와 여호와 신앙이 혼합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예배드린다고 했지만 그 예배는 그저 사람 수준에서 드리는 것이었습니다(제사를 드리는 자, 곧 사람, זֹבְחֵ֣י אָדָ֔ם). 이것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가 아니었습니다. 

     

    역시 그들은 아침 구름 같이, 쉬 사라지는 이슬 같이 쭉정이 같이 연기 같이 헛되이 사라지게 됩니다(3절). 그들이 한 것 중에서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3절의 비유는 그들의 행위가 다 헛된 것으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에브라임에게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에서 구원하신 일을 다시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그들이 우상을 숭배할 것이 아니고 하나님만 구원자로 믿고 의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는 망하지 않습니다. 그 모든 행사가 헛되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배가 부르니 그들의 마음이 교만하여

    5   내가 광야 마른 땅에서 너를 알았거늘
    6   그들이 먹여 준 대로 배가 불렀고 배가 부르니 그들의 마음이 교만하여 이로 말미암아 나를 잊었느니라
    7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사자 같고 길 가에서 기다리는 표범 같으니라
    8   내가 새끼 잃은 곰 같이 그들을 만나 그의 염통 꺼풀을 찢고 거기서 암사자 같이 그들을 삼키리라 들짐승이 그들을 찢으리라

     

    애굽 땅에서 구원하신 하나님께서는 광야 마른 땅에서도 그들을 보호하셨습니다. 5절은 인칭대명사 "내가(אֲנִ֥י)"로 시작합니다. 그 다음 말이 "너를 알았다"입니다. 히브리어에서 인칭 대명사를 따로 쓰는 것은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누가 알았느냐, 이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광야 마른 땅에서 그들을 아시고 보살펴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다른 신이 아닙니다. "내가"는 이것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알았다"는 것은 함께 살면서 교제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매마른 광야, 즉 아무 먹을 것이 없는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배부르게 먹이셨습니다(6절). 그런데 그들은 그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지 않고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만나를 싫다고 하고 고기를 달라고 하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배가 부르다는 말(שָׂבֵעַ)은 만족하도록 채웠다(fill to satisfaction)는 뜻입니다. 원어에는 이 말을 두 번 연거푸 사용합니다. 만족하도록 채우고 또 만족하도록 채웠다, 그랬더니 그 마음이 높아졌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무시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은 망하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자 같고 길 가에서 기다리는 표범 같이 되셨습니다(7절). 또한 새끼 잃은 곰 같이 사납게 행하셨습니다. 그의 염통을 찢고 암사자 같이 그들을 삼키시고 들짐승이 그들을 찢도록 하셨습니다(8절).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그들이 깨어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깨어 있지 못하면 영원히 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납게 나타나시는 것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닙니다(애 3:33). 

     

    7-8절의 일은 광야에서도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그들을 큰 재앙으로 치셨습니다. 메추라기 고기가 아직 그들의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그들을 치신 것입니다(민 11:33). 또한 원망하는 그들에게 불뱀을 보내셔서 그들을 물게 하셨습니다(민 21:6, 8).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하나님을 잊어버릴 때에는 다른 나라를 사용하셔서 그들을 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하나님을 잊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자꾸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는 너를 도와 주는 나를 대적함이니라

    9   이스라엘아 네가 패망하였나니 이는 너를 도와 주는 나를 대적함이니라
    10   전에 네가 이르기를 내게 왕과 지도자들을 주소서 하였느니라 네 모든 성읍에서 너를 구원할 자 곧 네 왕이 이제 어디 있으며 네 재판장들이 어디 있느냐
    11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
    12   에브라임의 불의가 봉함되었고 그 죄가 저장되었나니
    13   해산하는 여인의 어려움이 그에게 임하리라 그는 지혜 없는 자식이로다 해산할 때가 되어도 그가 나오지 못하느니라

     

    이스라엘은 곧 앗수르에게 패망할 것입니다. 그들이 패망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도와주시는 분이신데 그들은 그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만족하도록 채우시는 하나님을 미워하여 대적한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이 패망하는 원인이었습니다(9절).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왕을 구했었습니다. 사무엘의 시대에 사무엘에게 왕을 달라고 한 것입니다. 왕을 달라고 한 이유는 왕이 자기들을 구원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왕을 세웠는데 왕은 그들을 구원하기는커녕 그들을 압제했습니다. 그들을 우상숭배에 빠지게 했습니다. 또한 재판장들도 그들을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재판장들(וְשֹׁ֣פְטֶ֔יךָ)은 사사를 뜻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사사에 만족하지 못하고 왕을 구했으나 그 왕은 타락하여 구원자가 되지 못했고 하나님께서는 더이상 사사도 보내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왕을 주실 때에 분노하심으로(בְּאַפִּ֔י) 주셨습니다. 직역하자면 "분노 안에서" 왕을 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왕을 달라고 한 것은 하나님을 버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8장 7절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사사를 보내시면서 그들을 구원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하려고 왕을 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왕을 주실 때에 분노 안에서 주셨습니다. 그들의 반역에 분노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진노하심으로(עֶבְרָה) 왕을 거두셨습니다. 

     

    12절에서는 에브라임의 불의가 봉함되었다고 합니다. 봉함되었다는 말(צָרַר)은 "묶었다, 막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브라임의 불의(עָוֹן), 즉 사악함, 죄, 그리고 그 죄에 대한 형벌을 늦추셨다는 뜻입니다. 또한 그 죄는 저장되었습니다. 저장되었다는 말은 그 말 그대로입니다. 어디에 가지 않고 차곡차곡 쌓아놓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해산하는 고통과 같은 재앙이 임할 것입니다(13절). 그런데 그 해산하는 고통을 하는데 아이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고통은 아무 소득이 없는 고통이 됩니다. 아이가 나오지 않으면 산모와 아이가 둘 다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죄가 차곡차곡 쌓여서 이렇게 갑작스러운 재앙을 당할 것을 경고하시는 말씀입니다.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14   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눈 앞에서 숨으리라
    15   그가 비록 형제 중에서 결실하나 동풍이 오리니 곧 광야에서 일어나는 여호와의 바람이라 그의 근원이 마르며 그의 샘이 마르고 그 쌓아 둔 바 모든 보배의 그릇이 약탈되리로다
    16   사마리아가 그들의 하나님을 배반하였으므로 형벌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그 어린 아이는 부서뜨려지며 아이 밴 여인은 배가 갈라지리라

     

    산모와 아이 둘 다 죽는데(13절) 그 다음 말씀이 놀랍습니다. 하나님께서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시고 사망에서 구속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들이 죽을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죽음에서 건지신다는 뜻입니다. 건지시는 방법은 속량입니다. 구속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셔서 그들을 죽음에서 건지신다는 것입니다.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이 질문은 사망과 스올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망과 스올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놀라운 구원을 이루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동시대에 활동한 선지자인 이사야가 기록한 이사야서 25장 8절에 보면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심으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셨습니다. 부활을 증언하는 고린도전서 15장 55절에서 이 말씀이 인용됩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의 결론은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지금 하는 주의 일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죽음이 그것을 헛된 것으로 돌리지 못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뉘우침이 내 눈 앞에서 숨으리라"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뉘우침이라는 말(נֹחַם)은 "위로, 안위"라는 뜻입니다. 이 말을 직역하면 "안위가 내 눈으로부터 숨겨지리라"입니다. 이 말은 사망이 힘을 잃었기 때문에 위로와 안위가 이제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망은 힘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것들은 다 헛된 것으로 돌아갑니다. 에브라임이 그 이름처럼 결실하지만 그 결실은 사람의 결실이기 때문에 다 마를 것입니다. 약탈될 것입니다(15절). 즉, 헛된 것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사람의 행사는 이렇게 다 헛된 것으로 돌아갑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한 일만 남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여 하는 모든 일은 심판을 당합니다(16절). 형벌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질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부서뜨러지고 아이 밴 여인의 배가 갈라지는 비참한 일을 당할 것입니다. 이 예언은 앗수르의 침공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살 길은 오직 한 길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길밖에는 없습니다(14:1). 그런데 그 길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과해야 합니다. 오직 한 길은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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