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호세아 14장 1-9절 | 항상 회개하는 사람이 누리는 놀라운 유익들

2024. 12. 3. 16:00성서유니온 매일성경/호세아

목차


    호세아 14:1-9

    찬송가 200장 달고 오묘한 그 말씀


    13장 문맥

    13장에서는 에브라임의 교만이 나옵니다. 에브라임은 교만해서 우상을 만들고 범죄했습니다(13:1-2). 그들은 교만하여 하나님을 잊었습니다(13:6). 또한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왕을 달라고 했습니다(13:9-10). 그들의 죄는 가득찼습니다(13:12). 그 결과 그들은 고통 중에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지 못하고 아이와 여인 둘 다 죽는 것과 같이 죽을 것입니다(13:13).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 죽음에서 건지신다고 하십니다. 속량하시고 구속하신다고 하십니다(13:14). 

     

    교만과 범죄의 결과는 심판입니다. 죽음인 것입니다. 그 모든 수고가 헛된 것이 됩니다(13:3, 15). 처참하게 심판을 당하게 됩니다(13:16). 그리고 그러한 죽음에서 건지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14장에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1절).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1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
    2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
    3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만든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돌아오라(שׁ֚וּבָה)"라고 하십니다. 이 말은 명령형인데 뒤에 여성 대명사가 붙었습니다. 이 여성 대명사가 지칭하는 대상은 13장 16절의 사마리아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이 돌아오라는 명령은 13장 16절에 나오는 하나님을 배반한 사마리아에게 하시는 명령입니다.

     

    "돌아오라" 뒤에는 "이스라엘"이 따라 나옵니다. 그러므로 사마리아는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킵니다. 사마리아가 이스라엘이라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을 배반한 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배반한 너희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돌아오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형벌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지고 어린 아이는 부서뜨려지고 아이 벤 여인은 배가 갈라지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그러시면서 하나님께서는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엎드러진 것은 형벌을 당한 것인데(13:16) 그들이 형벌을 당한 이유가 바로 그들의 불의함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먼저,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그 불의함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 불의함을 제거하는 길은 오직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모든 불의를 제거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2절). 

    말씀을 가지고

    여기서 가지고 올 것은 "말씀(דְּבָרִ֔ים)"입니다. 이 말씀이라는 말은 복수형으로 쓰였습니다. 그러므로 "말들"을 가지고 나아오라는 뜻입니다. 무슨 말을 가지고 나아오느냐 하면 자복하고 기도하는 말을 가지고 나아오라는 것입니다. 뭔가 제물을 드리려고 하지 말고 돌이키는 마음과 그 마음이 담긴 말을 가지고 나아와서 하나님께 아뢰라는 것입니다.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라는 말씀은 그런 뜻입니다. 믿는 자는 하나님께 나아갈 때 상한 마음으로 나아갑니다. 어떤 제물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제사가 드려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믿고 자복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면 받아주시리라는 소망으로 입술의 고백을 가지고 나아오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9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린다는 것은 마음을 포함하는 열매를 드린다는 뜻입니다. 진실한 마음이 담긴 "잘못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하나님께 모든 불의를 제거해 달라고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선한 바를 받으소서"라는 말(וְקַח־ט֔וֹב)은 내가 선한 것을 받아달라는 뜻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선하게 받아달라는 뜻입니다. 즉 "자비롭게 받아주옵소서"라는 뜻입니다. 

    자복하는 태도

    자복하는 태도가 3절에 나옵니다.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다시는 우상 숭배를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여기서는 특별히 우상 숭배를 "우리의 손으로 만든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라고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상 숭배는 그만큼 무지한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을 향해서 신이라고 하는 매우 무지한 일이 바로 우상 숭배인 것입니다. 그렇게 자복하면서 "고아"를 언급합니다. 여기서 고아를 언급하는 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자는 홀로 남겨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더 이상 그와 함께 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반역하는 자, 즉 범죄하는 자는 고아와 같은 신세가 되는 것입니다. 죄인이 자기가 고아와 같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긍휼이 풍성하신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고아가 주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신약시대에 일어나는 우상 숭배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호세아서 주석, 94쪽). 

    하나님은, 신약 시대에 그의 백성이 하나님 대신 다른 것을 의지할 때에 그것을 우상 숭배로 여기시고 미워하신다. 혹자들은 배를 신으로 삼고(빌 3:19), 혹자들은 탐심을 우상으로 삼는다(골 3:5). 

     

    어떤 형상을 섬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고 다른 것을 더 사랑하고 추구한다면 그것은 우상 숭배와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상 숭배에서 떠나서 하나님께 돌아온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회복을 주십니다. 

     

    호세아 14장 돌아오라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4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그에게서 떠났음이니라
    5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6   그의 가지는 퍼지며 그의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의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7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그들은 곡식 같이 풍성할 것이며 포도나무 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 같이 되리라
    8   에브라임의 말이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할지라 내가 그를 돌아보아 대답하기를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먼저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반역이라고 번역된 말(מְשׁוּבָה)은 하나님께 등을 보이고 돌아서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것은 고쳐져야 하는 악독한 질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고친다라는 말(רָפָא)을 사용하십니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하여 간절하지 않다면 그 때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잘 관찰하고 진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주 악독한 병에 걸렸구나 직감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이 악독한 질병, 즉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자꾸 멀어지는 질병을 고쳐주옵소서, 이렇게 구해야 합니다.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하나님께서는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기쁘게"라는 말(נְדָבָה)은 "내가 원해서"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원하심으로 하나님의 마음이 그것을 좋아하심으로 사랑하신다는 뜻입니다. 사랑은 이런 것입니다. 사랑은 강요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그저 좋아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은 이렇게 아무 조건이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기를 원하셔서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즉, 은혜입니다.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

    하나님께서 고치시고 사랑하시는 원인(כִּ֛י)은 하나님의 진노가 그에게서 돌이켜졌기(שׁוּב) 때문입니다. 우리말로는 "나의 진노가 그에게서 떠났음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치셔서 우리가 하나님께 등을 보이고 돌아서 있던 상태에서 고쳐져서 하나님을 향하게 되면 우리를 향하여 맹렬하던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서 돌아서게 됩니다. 죄인, 즉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서 있는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그를 향하여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를 사랑하셔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고치셨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돌아서 있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을 향하도록 하셨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가 그 사람에게서 돌아서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택함을 입고 사랑을 받아 구원을 받은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렇게 고치시기 위하여 그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주셨습니다(롬 8:32). 

    이슬과 같으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슬은 아침에 모든 식물에게 활기와 생명을 줍니다. 특히 근동지방의 이슬은 물이 부족한 환경에서 훨씬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슬과 같이 되셔서 이스라엘은 백합화 같이 피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힌다고 합니다(5절). 백합화 같다고 하는 것은 사람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으로 입히신다는 뜻입니다(눅 12:27). 또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렇게 기뻐하신다는 뜻입니다(사 35:1).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힌다는 것은 고침을 받은 자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진다는 뜻입니다(엡 3:17, 박윤선, 호세아서 주석, 96쪽). 이슬은 매일 새벽부터 아침까지 흡족하게 내립니다. 내리는데 소리 소문없이 내립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고 소생케 하시고 자라게 하시는 은혜는 알아차리지 못하게 임하지만 능력 있게 임하고 반드시 생명과 소생과 성장을 이루십니다. 

     

    하나님께서 고치시는 자는 나무와 같은데 그 가지가 퍼진다고 합니다. 그 아름다움이 감람나무와 같다고 합니다. 그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다고 합니다(6절).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호세아서 주석, 96쪽). 

    가지가 퍼진다 함은, 기독 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 증거를 널리 퍼지는 것을 비유하고, 감람나무의 아름다움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신자들의 경건미(敬虔美)니(행 7:20) 곧, 영혼의 거룩함을 가리킨다. "감람나무"는 상록수(常綠樹)로서 하나님 앞에서 절개를 변치 않는 의인을 비유한다. 그는 성결을 생명이나 행복보다 더 따른다. 백향목의 향기는, 그들의 기도가 충만함을 상징한다. 그들의 기도가 향기처럼 퍼져서 기도가 자신의 주위를 기도화(祈禱化)한다. 이런 기도자를 만나 보는 자는 그 거하는 방이 기도로 충만한 듯 보인다. 

    교회 공동체와 회개

    7절에서는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는 자"를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5-6절이 가리키는 대상은 일반 한 사람이 아니고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입니다. 앞에서 기도로 충만하다고 할 때 기도가 충만한 것은 어떤 개인이라기 보다는 교회 공동체를 뜻합니다. 그런 교회 공동체 아래에 있는 사람은 "돌아올지라" 즉 하나님께로 항상 돌이킵니다. 하나님께로 항상 돌이키는 신자들은 곡식 같이 풍성합니다. 즉 그들의 삶의 열매가 풍성합니다. 포도나무에 꽃이 피면 포도 열매가 맺히듯이 그렇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레바논의 포도주와 같은 향기를 발합니다. 레바논의 포도주는 가장 극상품 포도주를 뜻하는데 사람의 기운을 북돋아주고 기분을 심히 즐겁게 합니다. 그처럼 그런 사람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기쁨이 됩니다. 여기서 "향기"라고 번역된 말(זֵכֶר)은 "기억하는 어떤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돌이키는 신자는 그의 행사가 헛된 것으로 돌아가지 않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기억할 만한 것이 됩니다. 이 모든 것의 핵심은 하나님을 향하여 항상 돌이키는 것에 있습니다. 

    열매 맺음

    그렇게 살 때 "에브라임"은 정말 에브라임, 즉 열매를 맺는 공동체가 됩니다. 열매를 맺는 공동체가 될 때 그들은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우상 숭배를 완전히 배척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회개한 에브라임에게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대로 만들어 주신다고 하십니다. 열매를 맺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열매를 맺을 때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는다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신자의 열매는 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얻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붙어있어야 맺히는 것입니다.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하나님께서는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푸른 잣나무라고 번역된 말(בְּרוֹשׁ)이 가리키는 나무는 상록수의 일종으로 아주 곧게 자라는 나무입니다. 향기가 좋고 곧게 자라기 때문에 그 나무로 궁전이나 신성한 건축물을 지었습니다. 특별히 이 나무는 십자가를 만들 때에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라는 말씀은 우리가 모든 일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를 의지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가리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신약시대를 미리 바라보고 예언한 말씀입니다.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9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은 그 길로 다니거니와 그러나 죄인은 그 길에 걸려 넘어지리라

     

    9절에 대한 해석은 박윤선 목사님의 주석으로 대신합니다(박윤선, 호세아서 주석, 97-98쪽). 너무도 해석이 잘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본절은 호세아서의 총 결론이다. 호세아가 가르친 것은, 대부분 비유로서 하나님과 교회(혹은 개인 신자)와의 관계를 깊이 가르친 신령한 진리이다. 이런 진리는 성령의 지혜를 받은 자라야 깨닫는다.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의인들이라야 의로운 도를 바로 깨닫고 사랑하게 되고 그것을 순종한다. 그러나 악인들은 의로운 도를 깨닫지도 못하고 사랑하지도 않으므로 그 도 때문에 넘어진다. 악인들은 그의 본래 가진 잘못된 사상 때문에 실패하지만 의로운 도를 반대하다가도 실패한다. 

    그 악인들이, 1) 여호와의 도를 깨닫지 못하고 오해하여 잘못되이 주장하기도 한다. 그 주장은 실상 여호와의 도와 반대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주장을 하는 그들은 망한다. 2) 그들은 여호와의 도를 바로 깨달은 경우에도 그것을 행하지 않고 도리어 피한다. 그들은 빛보다 어두움을 사랑한다. 그들이 저렇게 깨닫고도 양심을 억압(抑壓)하는 습관을 기르니 그들의 양심은 마비되고 만다. 따라서 그들은 망한다. 

     

    이 해석은 참으로 옳고 적절합니다. 호세아서는 택한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난해한 책이었습니다. 그 안에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들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호세아서를 사도 바울은 로마서 곳곳에서 깊이 주해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특별히 이방인들을 향한 사랑과 긍휼을 설명하면서 호세아서를 사용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경륜을 깊이 깨달음으로 호세아서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오직 성령의 지혜를 받은 사람만이 호세아서의 그 깊은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책을 보기 때문에 그 뜻을 깨닫습니다. 만약 그렇게 보지 않는다면 이 책은 걸려 넘어지는 것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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