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 3. 19:10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예레미야
예레미야 14:1-12
찬송가 279장 인애하신 구세주여
가뭄의 원인
14장에서는 가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1절에 나오는 가뭄은 원어로 복수 명사입니다. 즉 여기 나오는 가뭄은 한 번 있는 가뭄이 아니라 여러 번 있는 가뭄입니다.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가나안 땅에 가뭄이 임하는 이유는 그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11장에 보면 가나안 땅을 가리켜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라고 합니다(신 11:11). 그렇기 때문에 애굽 땅과 다르게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주셔야만 살 수 있는 땅입니다(신 11:10, 12).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들에게 "내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신 11:13-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들이 다른 신들을 섬기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셔서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신 11:16-17). 그러므로 신명기 말씀에 비추어 볼 때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숭배를 했기 때문에 가뭄이 여러 번 임한 것입니다.
심한 가뭄
그렇게 임한 가뭄은 아주 심한 가뭄이었습니다(2-6절). 유다가 슬퍼하고 성문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애통하고 예루살렘이 부르짖을 정도로 가뭄이 심했습니다(2절). 아무리 귀인이라도 물을 얻지 못할 정도의 가뭄이었습니다(3절). 땅이 갈라져서 밭을 갈지 못할 정도의 가뭄이었습니다(4절). 들짐승들도 괴로워할 정도로 심한 가뭄인데 특별히 암사슴이 풀이 없어서 새끼를 내버릴 정도였고 들 나귀들도 풀이 없어 눈이 흐려질 정도의 가뭄이었습니다(5-6절).
부르짖는 예레미야
이에 대해서 선지자는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여호와여 우리의 죄악이 우리에게 대하여 증언할지라도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 우리의 타락함이 많으니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7절)" 자기 백성이 타락하고 범죄하였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주님께서 일하시기를 간구하는데 특별히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해 달라는 간구를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백성이기 때문입니다(9절 하).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하시고 자비로우시고 인자하시고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그러한 하나님의 속성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당신님의 백성과 함께 묶으셨습니다. 그 백성이 고초를 당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이름이 욕을 당하는 것이 됩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욕을 다 당하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가장 큰 악을 당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이름을 당신님의 백성들과 묶으셨기 때문에 당하신 고통입니다. 하나님은 이토록 은혜로우십니다.
자기 백성을 멀리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고난 당한 때의 구원자시여 어찌하여 이 땅에서 거류하는 자 같이, 하룻밤을 유숙하는 나그네 같이 하시나이까(8절)"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돌보시는 땅입니다. 하나님의 땅입니다. 그런데 그 땅에서 하나님께서 마치 거류자, 나그네 같이 행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인이신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마음에서 하나님을 몰아내고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그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그에 대한 대가가 바로 하나님께서 주인의 역할을 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소망이시고 고난 당한 때의 구원자이시지만 믿지 않고 거역하는 자들에게는 마치 나그네처럼 돕지 않으십니다. "어찌하여 놀란 자 같으시며 구원하지 못하는 용사 같으시니이까 여호와여 주는 그래도 우리 가운데 계시고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이오니 우리를 버리지 마옵소서(9절)" 하나님께서 비록 나그네처럼 계신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들 안에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컫는 사람들입니다. 게다가 그 어떤 일도 하나님을 놀라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지 못하실 만큼의 큰 재앙은 없습니다. 예레미야는 이것을 반어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미처 알지 못할 만한 놀라운 일이 생겨서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구원하지 못할만한 심대한 재앙이 그들에게 임해서도 아닙니다. 그 이유는 오직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들의 발을 멈추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벌하셔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들의 발을 멈추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 하시고(10절)"
심판하기로 작정하심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벌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레미야에게 그들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11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그들이 금식하고 부르짖어도 번제와 소제를 드려도 듣지 않으시고 받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기필코 벌하시는데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들을 멸하시겠다고 하십니다(12절).
유다와 예루살렘이 지은 죄와 그들이 받은 형벌로 깨달아야 하는 것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께 이렇게 멸망 받을 죄가 유다 주민들과 예루살렘 주민들 만의 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죄는 바로 우리의 죄입니다. 이들은 그런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역사 가운데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땅에서 추방되어 유리 방황하는 처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어 죽음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누가 당하셨냐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반역하고 싫어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죄에 대한 형벌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는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서 영원한 죽음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영원한 죽음의 형벌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전부 겪으셨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영원히 고통 받아도 다 받지 못할 고통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으로서 다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무한 진노의 형벌을 몸으로 다 담아 받아내신 것입니다. 무한한 고통, 즉 영원한 고통을 무한한 능력으로 다 받아내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는 고통을 몸소 전부 다 받으셨습니다. 그렇게 하시고 다른 모든 것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고 하나님과 떨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도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니면 다 멸망 받아야 마땅했으나 예수께서 하나님의 무한 진노를 유화시키시고 우리를 포함한 온 우주를 멸망에서 건져내셨습니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와 은혜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은혜를 받아 지금도 숨을 쉬면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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