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마태복음 9장 14-26절 | 교회, 옛 것과 새 것이 섞이면?

2023. 2. 8. 07:52성서유니온 매일성경/마태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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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마태복음 9:14-26

    찬송가 545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당신들은 왜 금식하지 않느냐

    예수님은 죄 사함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죄 사함의 권세를 가지시고 친히 세리와 죄인들에게 가셔서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런 예수님 앞에 요한의 제자들이 나아와서 금식에 대해서 여쭤봅니다. 다른 복음서를 참고하면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무리가 같이 가서 물어본 것으로 보입니다. 

    일주일에 두 번 금식

    그들은 매주 두 번씩 금식했습니다(눅 18:12). 그들의 규례에 따라서 둘째 날과 다섯째 날 금식했는데 바로 월요일과 목요일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율법에 명시된 가르침이 아닙니다. 율법은 대속죄일에만 금식하도록 명합니다(레 23:26-32). 이들의 금식은 사람이 스스로 정한 것입니다. 스스로의 경건을 위해서 마음에 결심하고 금식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는 그것이 율법처럼 되었습니다. 그 규례를 따르는 자들은 예수님에게 당신의 제자들은 왜 금식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혼인집에서는 금식하지 못함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율법의 뜻을 밝히 알려주십니다. 율법은 본래 그런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서 하나님을 즐거워하기 위해서 지켜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랑이시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혼인집 손님들입니다. 혼인집은 잔치집인데 거기는 금식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금식이 혼인집 잔치 분위기를 망치기 때문입니다. 혼인집 분위기에서는 잔치에 참석한 사람으로서 흥겨워해야 합니다. 먹고 마시고 즐거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삶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삶은 그런 삶입니다.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날마다 기쁨이 가득한 잔치 분위기가 납니다. 이 분위기는 신랑을 빼앗기는 날 변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날은 금식할 것입니다. 신랑이 빼앗기는 날은 레위기에 나오는 대속죄일과 같은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시는 날입니다. 율법에서도 이 날 하루는 금식하라 명하신 만큼 나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깊이 생각해야 하는 날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무한한 생명의 근원이신 분께서 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만 하는가를 생각하고 근신해야 하는 날입니다. 바로 나의 죄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음에 슬퍼해야 합니다. 이것이 대속죄일에 스스로 괴롭게 하라는 명령(레 23:27, 29)의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이 의미를 밝히 알려 주셨습니다.

    자기 열심과 예수님께서 성취하신 의

    그러시면서 옛 것과 새 것에 대해서 비유로 알려주시는데 생베 조각과 낡은 옷, 새 포도주와 낡은 부대로 그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여기서 옛 것은 자기 열심으로 지키는 옛 율법이요, 새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율법을 믿음으로 누리는 것입니다. 옛 율법은 율법의 참 뜻을 담고 있지 못합니다. 거기에는 사람의 열심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그 참 뜻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참 뜻은 율법이 가리키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만 알 수 있습니다. 그 율법의 참 뜻이 예수님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이제 그것은 생베 조각이요 새 포도주입니다. 새것은 옛 것과 섞일 수 없는데 그렇게 하면 둘 다 망가지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시대

    우리는 복음의 시대를 삽니다. 복음을 자꾸 율법과 섞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율법은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었고 우리는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자기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예수님을 의지하고 믿고 따라갑니다. 내 열심이 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해서 그 사람에게 너는 왜 이러이러한 것을 하지 않느냐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으로 임한 새 시대를 자꾸 옛 시대로 돌리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둘 다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참 괴롭습니다. 특히 선생 된 사람들이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긍휼을 받아 누리는 죄인들과 논쟁하는 의인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그 죄인들과 대조되는 사람들이 이 금식 논쟁에 등장합니다. 경건한 사람들입니다. 정한 것은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과 논쟁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세리와 죄인들은 예수님의 긍휼을 받아 누리며 먹고 마시고 잔치하지만 스스로 경건한 사람들은 예수님과 논쟁합니다. 내가 서 있는 자리는 어디입니까?

    죽은 자를 살리러 가심

    이어서 예수님께서 한 관리의 아이, 다른 복음서를 참고하면 야이로라는 회당장의 딸을 살리러 가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에서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임이 드러납니다. 죄 사함의 권세는 죽음을 이기는 권세입니다. 그것이 눈에 보이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이를 살리러 가시는데 열두 해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 가를 만져서 낫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혈루증을 앓던 여인

    이 여인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셨습니다. 나 자신도 설명할 수 없지만 마음에 기이한 감동이 오는 때가 있습니다. 아, 이 일은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이다, 이런 믿음이 샘솟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이 여자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여자는 즉시 그 감동대로 실행했습니다. 이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지만 여자는 단행했습니다. 옷 가에 손을 대는 순간 정말 병이 나았습니다. 

    믿음 대로 된 것임을 알려주심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그냥 넘어가지 않으셨습니다. 그 여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친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자가 나은 것은 어떤 신비한 마술 같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친히 가던 길을 멈추고 여자의 마음에 믿음이 있었고 그 믿음대로 된 것임을 알려주셨습니다. 말씀하시기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이 여자의 믿음은 예수님을 높이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생명 능력을 믿은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행동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결과 여자는 나았습니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생명 능력은 베풀어 주시기 위한 것임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생명 능력이 꽁꽁 싸매여 있어서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능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명 능력은 모든 믿는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능력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위에 금식 논쟁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처럼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 하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걸으면서 예수님으로부터 모든 풍성한 생명을 받아 누리는 자세가 바로 믿는 자의 자세입니다. 

    낮잠 자는 이를 깨우듯이

    예수님께서는 회당장의 집에 가셔서 그 딸을 고쳐주셨습니다. 고쳐주시기 전에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신 말씀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아는 사람들은 이 말씀이 진리인 줄 압니다. 예수님 앞에서 죽음은 철저하게 무력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 살리시기를 잠깐 낮잠 든 사람 깨우시는 것처럼 하시는 분이십니다. 나의 죽음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그렇게 깨우실 것입니다. 믿는 자는 그것을 소망으로 바라봅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모든 믿는 자는 무덤에서 나와 부활하여 영광스러운 몸으로 예수님께 경배할 것입니다. 마치 자다 깬 것처럼 그렇게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취하신 생명의 율법

    예수님께서 성취하신 율법은 사람을 살리는 율법입니다. 생명을 누리는 법입니다. 사람을 정죄하는 법이 아니라 사람을 살려주는 법입니다. 혈루증에서 고통당하는 여인을 그 고통해서 해방하는 법이요, 어린 소녀를 죽음에서 건지는 법입니다. 그 소녀의 가정에 생명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는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법을 왜 주셨는가를 잘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이유는 그 법으로 생명을 누리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 율법의 성취이신 예수님은 다니시면서 예수님께 생명을 구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풍성한 생명을 주심으로 답하셨습니다. 이것이 죄 사함의 권세를 갖고 계신 예수님, 율법을 성취하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생베 조각이요 새 포도주입니다. 이 법은 죽이는 법과 혼합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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