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마태복음 9장 1-13절 | 죄 사함, 오는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오지 않는 사람에게도

2023. 2. 7. 07:20성서유니온 매일성경/마태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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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마태복음 9:1-13

찬송가 292장 주 없이 살 수 없네


죄 사함, 죽음을 제어하시는 권세의 근원

8장 후반부에서 예수님은 바람과 바다와 귀신들을 제어하셨습니다. 죽음의 세력으로 상징되는 바다를 아주 잔잔하게 하셨습니다. 죽음이 예수님 앞에 바짝 엎드렸습니다. 무덤 사이에 있으면서 사람을 괴롭히던 귀신들을 돼지 떼에게 들어가게 하사 바다로 던지셨습니다. 귀신과 돼지라는 부정한 것들을 바다에 던지심으로 그 지역을 정결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무덤 사이에 난 길을 여셨습니다(8:28). 죽음이 믿는 자를 괴롭힐 수 없음을 보이셨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 그렇게 죽음을 제어하실 수 있으신 이유에 관해서 알려줍니다. 

병 고침에 죄 사함까지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옵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사람이 많아 들어갈 수가 없어서 지붕을 뜯었다고 기록합니다(막 2:4).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2절)", 이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보신 믿음은 중풍병자와 그를 데리고 온 사람들의 믿음이었습니다. 그 믿음의 내용은 예수님께로 가면 고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믿음에 더해서 죄 사함의 긍휼까지 베풀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풍성하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가지신 이 죄 사함의 권능이 죽음을 제어하실 수 있으신 권능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을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서기관들

예수님께서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하시자 서기관들은 속으로 그것을 신성모독이라고 정죄하였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신성모독이라고 한 생각을 예수님은 악한 생각이라고 하셨습니다. 왜 이것이 악한 생각일까요? 먼저 이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고서는 행하실 수 없는 수많은 권능을 행하시고 계시는데 그것을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마음은 예수님을 대적하는 마음입니다. 모르면서 알아보려고 하지 않으니 불신앙이요 대적인 것입니다. 

순서를 정해서 말씀하심

예수님은 당신님에게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이들에게 알게 하십니다. 어떤 방식으로 알게 하십니까? 순서를 정해서 말씀하시는 방식을 사용하셨습니다. 먼저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고 그 다음으로 일어나 걸어가라 이런 순서로 말씀하셨습니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 말씀은 그 결과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 사람이 정말 죄 사함을 받았는가 아닌가를 주변 사람들은 모릅니다. 주변 사람들이 이 사람이 죄 사함을 받았는지 알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이 사람의 중풍병을 낫게 하면 됩니다. 고칠 수 없는 병이 나았다면 그 병의 근본 원인인 죄문제가 해결되었구나 알 수 있습니다. 

죄 사함을 병 고침으로 확증하심

예수님은 먼저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하시고 그 다음에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셨습니다. 중간에는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6절)" 말씀하셨습니다. 죄를 사하는 권능을 중풍병자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기가 실려왔던 침상을 가지고 가는 것으로 확증하셨습니다. 

 

죄 사함의 권세를 사용하시는 예수님

둘 다 사람으로서는 어려운 말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는 말 두 말 모두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말입니다. 죄를 사하는 일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 사이에서 용서를 해 줄 수는 있으나 알 수 없는 죄로 중풍병에 든 사람의 죄가 사해졌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일어나 걸어가라는 말도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말입니다. 그 병을 확실하게 고칠 수 있는 사람만 이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병이 불치병입니다. 이 병을 말로 고친다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영역의 일이 아닙니다. 

인자이신 예수님

반면, "인자"는 이 일을 하실 수 있으십니다(6절). 예수님은 당신님 자신을 인자라고 하십니다. 이 "인자"라는 말은 다니엘 7장에 나오는 말입니다. 

13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다니엘의 인자는 신성을 지니신 분이십니다. 인자라고 하여 "사람의 아들"이라고 기록하였지만 하나님을 묘사하는 말로 인자를 묘사합니다. 하늘 구름을 탔다는 말이 그것입니다. 빽빽한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이 말이 인자에게 쓰였습니다. 이것은 인자가 신성을 가졌음을 암시합니다. 이 인자에게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십니다. 

죄 사함으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심

인자가 받은 권세 중에 죄 사함의 권세가 포함됩니다. 인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이 권세로 죄를 사하셔서 죽음을 해결하셨습니다. 당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무한히 값진 속죄제물로 삼으셔서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영원한 속죄제사를 드리는 방식으로 죽음을 해결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도 사하시고 죄로 발생하는 각종 질병과 그 끝에 있는 죽음까지 해결하신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자이신 예수님에게는 두 말 다 쉬운 말입니다. 병을 고치는 것도 쉬운 일이고 죄를 사하시는 것도 쉬운 일입니다. 권세가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 알게 하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

권세가 있는 사람에게는 둘 다 쉬운 일이요, 권세가 없는 사람에게는 둘 다 어려운 일입니다.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먼저 말씀하시고 죄 사함의 권세를 말씀하신 후에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신 목적은 예수님께서 다니엘서에서 예언한 인자이시고 인자이신 예수님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알게 하려 하심입니다. 그 결과로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여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8절).

세리를 부르심

이어지는 9절부터는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를 부르시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이 장면은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갖고 계신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알려줍니다. 죄를 사하실 수 있으신 예수님은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주저하지 않고 나아올 수 있도록 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람들이 몰라서 죄 사함을 못 받는 일이 없도록, 또는 가까이하기 어려워서 죄 사함을 못 받는 일이 없도록 친히 세리와 죄인들에게 찾아가셔서 그들의 친구가 되십니다.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으시다고 해서 죄인들 위에서 군림하시지 않으시고 친히 세리를 곁에 두시고 그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십니다. 

죄인에게 친히 찾아 가시는 예수님

바리새인들은 그것을 정죄했습니다. 그들은 구별된 자라 하여 죄인들과 구별됨을 자기들의 정체성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과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긍휼을 풍성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갈라서 은혜 받을 사람, 못 받을 사람 이렇게 구분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의 차원에서 사람의 능력으로 이 사람은 이렇게 열심히 사니 잘 되겠구나, 그러면 은혜도 받고 복도 받아라, 이렇게 하시는 분이 아니신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자들을 친히 찾아가셔서 그들과 친구가 되심으로 그들에게 긍휼이 풍성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활짝 열린 죄 사함의 길

예수님은 죄 사함의 권세를 가지고 죄인을 부르러 오신 분이십니다. 왜 예수님께 죄 사함의 권세가 주어진 목적은 죄인을 부르시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께 나아오는 모든 죄인이 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는 길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누구든지 믿을 수 있습니다. 특히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은 죄인이라 정죄하는 사람도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심으로 그것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

우리가 바로 이런 은혜를 받아서 죄 사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방인입니다. 하나님 나라 밖에 있던 사람입니다. 이런 우리가 천국 안으로 들어온 것은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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