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마태복음 8장 14-22절 | 온 인류의 해방일지, 인류 역사 가운데 딱 3년

2023. 2. 5. 08:17성서유니온 매일성경/마태복음

목차


    마태복음 8:14-22

    찬송가 300장 내 맘이 낙심되며


    예수님의 치유사역

    본문에는 예수님의 치유사역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가 나옵니다. 예수님의 치유사역은 이사야를 통해서 하신 말씀을 이루고자 하심입니다. 마태가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한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17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예수님의 치유사역은 첫째,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연약함을 담당해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의 치유사역은 우리의 병을 짊어지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병을 짊어지시러 오셨습니다. 사람이 연약한 존재라고 할 때 그 연약함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람이 연약하게 된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죄가 사람을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게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창조 목적

    사람은 생명을 충만히 누리는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누리면서 하나님의 생명을 만물에 나타내고 전하라고 지음 받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을 충만하게 누리는 존재로 연약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연약해진 이유는 죄를 지어 하나님의 생명에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이 각종 질병입니다. 사람은 병에 걸리고 시달리는 자리로 떨어져 버렸습니다. 

    이사야 53장

    마태가 직접 죄가 문제라고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이 말씀에는 그것이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이사야 53장에 죄문제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셔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징계를 받으시고 채찍에 맞으신 것은 우리가 지은 죄 때문입니다. 실로 하나님께 맞으시며 고난을 받으셨는데 그 이유는 우리의 연약함과 질병을 담당하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연약함과 질병의 근원인 죄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열병이 떠나가고

    베드로의 장모는 열병에 걸렸었는데 예수님께서 그 열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열병을 고쳐주시는데 표현을 어떻게 하냐면 "열병이 떠나가고" 즉, 열병이 떠났다고 합니다. 열병이 주어이고 동사가 떠났다입니다. 열병이 마치 어떤 주체처럼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열병을 꾸짖으셨다고 나옵니다(눅 4:39). 

    열병이나 귀신들에게 시달림을 당하는

    뒤에 보면 16절에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자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셨다, 병든자를 다 고치셨다고 나옵니다. 열병이 나간 것처럼 사람들을 괴롭히던 귀신들이 쫓김을 당해서 나갔습니다. 사람들이 연약하다고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은 귀신에게 시달릴 존재가 아닌데 왜 이렇게 열병이나 귀신들에게 시달림을 당하게 되었는가, 바로 죄 때문이라,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그 근본 문제를 해결하시고자 오신 것이라, 이것을 마태는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뜻

    죄문제를 해결하시고자 오셔서 사람들의 연약함과 질병을 담당하시고 짊어지시는 모습을 보이시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뜻과 의지이면서 먼저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이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가 와서 사람의 연약함을 담당하실 것이라고 예언했고 예수님은 그 예언을 이루고자 오셨으니 사람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요, 오히려 사람을 죄에서 건져내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보이는 것입니다. 사람을 죄에서 건져내시는 방법은 그 아들을 보내셔서 친히 그 문제를 담당하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

    무리의 반응

    무리는 예수님께서 자기들의 질병을 짊어지시자 예수님을 에워싸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연약함을 담당하시면서 예수님의 거룩하신 뜻을 보이시는데 무리는 그 뜻을 깨달으려 하지 않고 그저 예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만을 바랐습니다. 예수님은 무리의 이런 요구에 응하지 않으시고 건너편으로 가십니다. 건너편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한 사람을 건져내시기 위함입니다(마 8:28-34).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건너편으로 가라고 명하셨을 때 한 서기관과 한 제자가 나아옵니다. 한 서기관은 예수님께서 어디로 가시든지 따르겠다고 합니다. 그에 대해서 예수님은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20절)"고 말씀하십니다. 머리 둘 곳이 없다는 말씀은 머리 둘 곳을 소유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들짐승인 여우도 자기 굴들을 가지고 있고 새도 자기 둥지들을 가지고 있지만 예수님은 그런 종류의 것을 가지고 계시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목적지

    서기관이 예수님을 따라갈 곳은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인데,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은 머리 둘 곳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집을 짓고 쉬면서 안식을 누리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님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목적지는 이 땅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계시는 하늘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는 길을 묵묵히 걸어가시는데 그 방법은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입니다.

    십자가

    십자가는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버림 당하는 곳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으로부터도 철저하게 버림을 당하셨습니다. 안식과는 전혀 거리가 먼 곳입니다. 무한 고통의 장소입니다. 십자가는 이 서기관이 절대 따라갈 수 없는 곳입니다. 이 서기관도 철저하게 예수님을 외면하고 버릴 것입니다.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는 말씀으로 세상 모든 사람으로부터 버림 당하신 장소인 십자가가 예수님께서 궁극적으로 통과하셔야 하는 곳임을 알려주십니다. 

    제자의 시급한 사명

    이어서 한 제자가 나와서 먼저 가신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해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머리 둘 곳을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죽음을 암시하는 것임을 마태는 다음 제자를 등장시킴으로 넌지시 알려줍니다. 죽은 자를 장사하는 것은 사람의 본분입니다. 특별히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아들로서 아버지를 장사 지내는 것은 마땅한 의무입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십니다. 

    3년과 33년

    예수님께서는 인륜을 무시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각종 이적을 행하심으로 당신님이 누구신지를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 현장에서 생명을 맛보고 산 자로 있는 것은 이 제자에게 시급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인류 역사상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그분을 곁에서 지켜보고 경험하는 특권을 누린 사람들을 부러워합니다(요 8:56). 예수님은 요나보다 솔로몬보다 크신 분이십니다(마 12:41-42). 이 제자는 지금 이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이 한순간을 놓치면 안 되는 일들이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의 놀라운 일들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으니 이미 죽은 자들이 죽은 자를 영접하도록 하라고 하십니다. 이 사람 인생에서는 3년이 채 안 되는 시간이고 전 인류 역사에서는 33년 밖에 안 되는 지극히 소중한 시간입니다. 

    열조에게로 돌아가니라

    구약 성경에 "열조에게로 돌아가니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 표현이 이 사상을 잘 나타내줍니다. 사람이 죽을 때 먼저 죽은 자들이 그 사람을 맞이한다는 사상입니다. 땅에서 장사 지내는 것은 죽은 자의 떠나보내면서 죽은 육체를 예비된 곳에 안치하는 절차이지만 죽은 그의 영혼은 이미 죽은 자들이 맞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에게는 이런 장례 절차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장 지금 내가 보고 경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인데, 그 일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입니다. 이런 특수한 경우에는 사람의 의무보다 예수님을 따르는 의무가 더 중하고 급한 것입니다. 

    증언으로 예수님을 경험하는 우리들

    이 제자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사람의 연약함을 담당하시고 그 병을 짊어지심으로 죄 문제를 해결하시는지 생생하게 보고 경험해야 했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일들이 얼마나 굉장한 일인가를 깨달아야 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제자들이 기록한 증언을 읽고 간접적으로 경험합니다. 이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을 아는 것이 영생입니다.

     

    글이 유익하셨다면 구독과 공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