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마태복음 7장 13-20절 | 좁은 길이 고생길이 아닌 이유

2023. 2. 2. 08:52성서유니온 매일성경/마태복음

목차


    마태복음 7:13-20

    찬송가 521장 구원으로 인도하는


    율법과 선지자의 완성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17절에서 율법과 선지자를 완전하게 하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율법과 선지자를 완전하게 하는 것, 성취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천국을 사는 사람이 마땅히 지켜서 이루어야 하는 의임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 마지막 말씀이 7장 17절입니다.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율법과 선지자를 성취하신 분은 예수님입니다. 천국을 사는 사람은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좁은 길은 고생길인가?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은 좁은 길입니다.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은 길입니다(14절). 좁은 길을 통과해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 문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을 따라가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에 당도합니다. 그 길은 좁고 협착합니다. 이 길이 좁고 협착하다고 해서 고생길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좁은 길은 목사만 가는 것인가?

    좁은 길은 고행을 해야만 갈 수 있는 길이라고 많이들 생각합니다. 목회의 길이 고생길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누가 목회의 길을 간다고 하면 안쓰럽게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도 누가 신학을 공부한다고 하면 이 고생스러운 것을 왜 하나, 이런 마음이 듭니다. 우리가 생각을 잘해야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목회자만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목회자의 삶을 보면서 은혜를 받는 것

    목회자의 길을 고생길이라고 생각하고 일반 성도의 길은 그렇게 고생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목회자가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감동하고 은혜 받는 모양으로 이어집니다. 고생을 많이 한 목회자를 보면 마음에 감동이 일어나고 은혜를 받고 '저분은 진짜 목사야' 이러면서 다른 목사들도 저렇게 살아야 하는데, 또는 우리 교회에도 저런 목사님이 오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좁은 길은 목사만 가는가?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이상합니다. 목사로 사는 인생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목사만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온 성도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모든 성도가 고생길을 갈 수는 없으니 목사라도 고생길을 가야한다? 말이 안 됩니다. 

    좁다 넓다의 기준

    문제는 좁은 문이 고생길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 좁다, 넓다 하는 것에서 예수님께서 묘사하신 특징은 거기로 얼마의 사람이 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가면 넓은 길이요, 적은 사람이 가면 좁은 길입니다.

    넓은 길, 당시 종교지도자의 가르침

    앞에서 율법과 선지자를 말씀하셨는데 율법과 선지자를 지키기 쉽게 해 놓고 나는 율법을 지켰다고 하는 것이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가르침과 행위였습니다. 율법과 선지자를 사람 수준으로 낮춰 놓고 조목을 정해서 더 중한 것과 경한 것을 나누고 중한 것을 지키면 경한 것은 무시해도 된다, 이런 식으로 가르쳤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것은 사람들에게도 인정받는 것이라고 하여 하나님을 향한 의를 사람 수준으로 낮추어 놓았습니다. 이것이 넓은 길입니다.

    고생길이라도 넓은 길이 될 수 있다

    사람의 상식에 딱 맞아서 사람으로서 할 수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거기로 가는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여기에 고행도 들어갑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월요일과 목요일 금식했습니다. 일주일에 꼬박 이틀을 밥을 안 먹은 것입니다. 이런 고생이 어디있습니까? 사람들은 이렇게 금식하는 바리새인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은 대단한 사람들이야, 이렇게 인정을 했습니다. 어떻게 요새 존경받는 목사님들의 패턴과 비슷해 보이지 않나요? 넓은 길이라고 쉬운 길이고 좁은 길이라고 고생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을 사람 수준으로 끌어 내려서 사람의 생각과 판단에 맞게 만드는 것이 넓은 길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좁은 길의 특징

    좁은 길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에 다다르게 하는데 이 길은 고생길이라서 좁은 길이 아니요 하나님 수준의 길이라서 좁은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에 관해서 말씀하실 때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시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먹지 말라 반드시 죽으리라" 이 말씀은 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생명을 누리면서 살라는 말씀입니다. 어렵지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아는 길이 생명의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길이 좁은 길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외우고 그것을 행동규범으로 만들어서 행했다고 하는 것이 생명의 길이 아니요, 율법과 선지자에 담긴 하나님의 오묘하신 뜻을 깨닫는 것이 생명의 길입니다. 인간으로서 하나님을 깨닫는 것이 생명의 길입니다. 이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보통 사람으로는 못 가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의 뜻대로

    이것은 뒤에 21절에서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 말씀에서 밝히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다는 것이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하는 이런 행위에 있지 않음도 이어지는 말씀에서 알려주셨습니다. 외면적인 행위에 있지 않은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깨달아 아는 것에 생명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고 믿는 것

    아버지의 뜻을 깨달아 아는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율법과 선지자를 인간으로서 하나님 수준에서 이루시고 행하신 예수님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취하신 율법의 의를 인정하고 즐거워하고 환영하며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기의 행위로 의를 논하지 않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온전히 그분만 의지하는 것, 이것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예수님을 통과하는 문입니다. 

    거짓 선지자들

    뒤에 나오는 거짓 선지자들은 사람들을 꾀어서 넓은 문으로 가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열매는 썩은 나무에서 맺히는 악한 열매입니다. 17절에 "못된 나무"는 썩은 나무입니다.

    신학자들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타락한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할 때 부패하였다는 말을 썼습니다. 썩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죄를 지어 부패한 심정을 가진 사람에게서는 선한 열매가 맺힐 수 없는 것입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아무리 율법을 지키노라 하면서 일주일에 두 번이나 금식을 하고 구제하고 기도했어도 그것은 사람의 부패한 심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 악한 열매입니다. 그런 열매를 선하다고 하는 것도 악한 것입니다. 

    노략질

    그런데 그런 열매를 선하다고 가르치고 자기를 본받으라고 하니 이것이 거짓 선지자의 행태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을 노략질 하는 것과 같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을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것입니다(마 23:13). 

    좁은 길은 달콤한 길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아야겠습니다. 사람 수준의 의를 가지고 선하다고 하고 그것을 행하면서 가르치는 사람을 고생한다고 칭찬하고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했던 행동들이 거짓 선지자의 행동일 수 있다는 것에 충격을 좀 받아야겠습니다. 저 자신을 돌아봅니다.

    여러분 모두는 성도입니다. 목사도 성도의 한 사람입니다. 성도는 천국을 사는 사람입니다. 천국을 어떻게 사는가를 계속 말씀드렸습니다. 천국은 믿음으로 삽니다. 이 길은 고생길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과 동행하는 달콤한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시는 길이요, 참된 기쁨이 있는 길입니다. 이 길에 들어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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