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마태복음 26장 36-56절 |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2023. 4. 2. 10:39성서유니온 매일성경/마태복음

목차


    마태복음 26:36-56

    찬송가 457장, 겟세마네 동산의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심

    유월절 식사를 성찬으로 제정하신 예수님께서는 식사 규례에 따라서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갔습니다(마 26:30). 이 찬미는 시편 115편과 118편을 노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시편 115편은 우상과 구별되는 하나님의 유일하심을 노래하고 118편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노래하면서 하나님께서 구원하셨음을 찬양합니다. 이 두 시편으로 찬양하는 것이 유월절 식사 규례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식사를 마치신 후 감람산에 오르셔서 겟세마네에 이르셨습니다(36절). 거기서 기도를 시작하셨습니다. 기도를 시작하실 때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라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 즉 야고보와 요한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앞두시고 굉장한 두려움을 느끼셨습니다. 

    십자가 죽음을 두려워하심

    역사상 수많은 사람들이 대의를 위해서 죽음을 담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심지어 자기가 잘못을 저질러서 사형을 받는 사형수도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인 예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죽음을 두려워하시고 계십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의 기도 내용으로 알 수 있습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마 26:39)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나님의 진노의 잔

    기도하실 때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잔이라는 표현으로 예수님께서는 당신님께서 당하신 죽음이 어떤 것인지를 나타내셨습니다. 여기 나오는 잔은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의 잔입니다. 성경 많은 곳에서 하나님의 진노의 잔(사 51:17, 22; 렘 25:15-26, 27-29)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손에서 그의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 네가 이미 비틀걸음 치게 하는 큰 잔을 마셔 다 비웠도다(사 51:17)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서 진노하십니다. 죄를 그냥 두지 않으시고 반드시 벌하십니다. 성경에서 죄를 벌한다고 하는 개념을 나타낼 때 죄가 얼마나 심각한 해를 끼치는가를 알게 하려고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9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이 말씀에는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가 무엇인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게 합니다. 밤낮 쉼을 얻지 못하고 영원히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이것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이 진노의 잔을 마시는 것은 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벌을 다 받는 것입니다. 

    무한한 고통을 당하시는 형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죄가 되셔서 이 진노의 잔을 다 받으셨습니다. 영원히 고통 당하는 형벌을 받으셔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앞두신 죽음은 보통 사람이 당하는 죽음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 어떤 사람도 예수님께서 맛보신 이런 죽음과 그에 상응하는 고통을 겪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고난으로 무한한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당하는 고통이요 모든 피조물로부터 대적을 받는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 덕분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당하는 고통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아무 선한 것도 맛볼 수 없는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고통스러운 죽음을 앞두시고 예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구하시면서 사력을 다하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기도 덕분에 우리가 지금 살고 숨 쉴 수 있는 것입니다. 

    담대하게 십자가의 길로

    그렇게 세 번 기도하시고(44절) 예수님께서는 담대하게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이제는 자고 쉬라" 하시면서 기도로 그 마음이 담대해 지셨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향한 믿음으로 두려움을 극복하셨습니다. 심히 고민하시고 죽게 되셨다고 하셨던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신 후에 굳은 결심과 의지로 담대한 마음으로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셨습니다.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들의 위력

    예수님께는 자유가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열두 군단(λεγεών) 더 되는 천사를 보내셔서 모든 것을 멸하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감히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려는 자들을 즉결 심판 하실 수도 있으셨습니다(53절). 당시 로마제국의 한 군단은 6,100명의 보병과 726의 기마병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굉장히 많은 병력입니다. 그런 군단이 열둘 입니다. 천사 하나가 18만 오천 명의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왕하 19:35). 그런 천사 81,912명을 동원하실 수 있으셨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로 성경을 이루시기로 굳게 결심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 성경에 기록된 것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받으시고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택하신 자들을 영생으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뜻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이루시려고 이 땅에 오셔서 결정적인 순간을 맞이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그 결정적 순간을 기도로 준비하시고 담대하게 맞이하셨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 우리가 살고 영생을 누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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