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마태복음 26장 1-16절 | 마리아를 괴롭게 한 제자들, 가룟 유다의 말이 더 일리 있어 보이는 이유

2023. 3. 31. 08:01성서유니온 매일성경/마태복음

목차


    마태복음 26:1-16

    찬송가 94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고 하십니다. 그러시면서 이틀이 지나면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번째 수난 예고를 하신 것입니다. 이 예고를 마가와 누가는 기록하지 않고 마태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예고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언제 수난을 당하실 것인가 날짜를 특정한다는 것입니다. 내일이면 무교절의 첫날입니다(마 26:17). 그리고 모레는 유월절입니다. 그 금요일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입니다. 

    백성을 두려워하는 자들

    그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은 예수님을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민란을 두려워했습니다(5절).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한 것입니다. 이들이 두려워할 이는 하나님이어야 했습니다. 이들이 백성의 눈치를 보는 것은 이들의 지지기반이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의 마음이 예수님께 향하여 있다는 것이 이들의 시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이것이 사람을 의지하는 자들의 특징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백성들을 배경으로 삼지 않으셨습니다. 백성들이 자기를 왕으로 삼으려고 하는 것을 아셨지만 그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돌보시면서도 백성들을 이용하거나 그들로부터 이익을 취하거나 그들을 배경 삼으시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시면서 임무를 수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 기름 부은 사건은 언제 일어난 일인가?

    이어지는 기사는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 일은 유월절 엿새 전(요 12:1) 그러니까 일요일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미 지난 일입니다. 그 다음 날이 월요일이고 그날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요 12:12). 마태와 마가는 일요일에 일어난 일을 여기에 가져와서 쓴 것입니다. 거기에 마태는 이틀 후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을 기록합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마리아가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 부은 사건이 고난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직감함

    예수님께서도 "이 여자가 내 몸에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 이 여자가 누구인지 나옵니다. 이 여자는 마리아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앞에서 열심히 말씀을 들은 사람입니다. 말씀을 열심히 들은 사람으로 깨달음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완전히 깨달은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장차 어떤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 그 의미를 어렴풋이 직감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나중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나서야 그 의미를 밝히 알았을 것이고 그때는 뭔가가 있구나 정도였을 것입니다. 

    가장 값진 것으로 죽으심을 예비함

    뭔가가 있다는 정도의 깨달음이지만 마리아는 자기가 가진 가장 값진 것으로 예수님의 죽으심을 예비했습니다. 이 기름은 삼백 데나리온 이상의 가치가 있었습니다(막 14:5). 보통 사람의 10개월치 월급에 해당하는 가치입니다. 한 가족이 열 달 동안 먹고 살 수 있는 가치의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드린 것입니다.

    영원한 속죄 제사를 드리실 대제사장

    예수님께서는 메시아로서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셨습니다. 메시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어떤 제사장이냐면 자기 몸을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장입니다. 거룩하고 영원하신 대 제사장이신데 제사장이시면서 제물의 역할을 감당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영원한 속죄제사를 드리시려고 십자가의 길로 가시는 것입니다. 그 길에 마리아가 예수님께 값진 기름을 부은 것입니다. 

    마리아의 마음을 아심

    예수님은 이런 마리아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향해서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10절). 그 마음을 행동으로 보였습니다. 가장 값진 것을 예수님께 부어드린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결이 되어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기억하게 되었습니다(13절). 

     

    마리아를 괴롭게 한 제자들, 가룟 유다의 말이 더 일리 있어 보이는 이유

    예수님을 중히 여기지 않음

    반면 가룟 유다를 비롯한 제자들은 마리아가 값진 향유를 허비한다고 분개했습니다(8절). 이들은 마리아에게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고 말했습니다. 이들의 눈에는 예수님께 값진 향유를 부어 드린 것이 허비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수많은 가난한 자들을 돕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중히 여기는 태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의 사회사업

    예수님의 죽으심을 깊이 생각했더라면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시대에도 복음과 사회사업은 같이 병행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사업을 잘하는 교회를 바르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안 하는 것보다야 낫지만 교회의 본질은 사회사업에 있지 않습니다. 교회의 본질은 복음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가난한 자를 돕는다고 해서 사명을 성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자는 누구라도 도울 수 있습니다. 심지어 믿지 않는 자도 도울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죽으심의 의미를 바르게 알고 행동하고 전하는 것입니다. 

    가룟유다의 배신

    예수님의 죽으심을 예비한 이 사건과 가룟유다의 배신이 맞물려 있습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반역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팔아 넘겼습니다. 그런데 이 가룟유다가 바로 가난한 자를 운운한 사람입니다(요 12:5). 그에게는 가난한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요 12:6). 예수님께 반역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겉으로는 선한 말을 하지만 속으로는 예수님을 향한 반역이 그 안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마음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향하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죽음을 맞이하게 되실까를 생각한 마리아는 값비싼 항유를 예수님께 부어드려 예수님의 죽으심을 예비했습니다. 초점이 예수님께 향해 있었습니다. 반면 초점이 예수님으로부터 벗어난 가룟 유다는 가난한 자를 말하지만 실상은 예수님을 반역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팔아넘길 모의를 하였습니다.

    가룟 유다의 말이 더 설득력이 있는 이유

    교회 안에서는 끊임없이 여러 가지 의사 결정이 이뤄집니다. 의사결정을 할 때 마리아의 편에 서느냐 가룟유다의 편에 서느냐는 그 사람이 하는 겉으로 보기에는 모릅니다. 어떻게 보면 가룟유다의 말이 사람들에게 더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의 신비는 사람의 이성으로는 깨달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감동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믿는 자는 이것을 항상 주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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