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마태복음 25장 1-13절 |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 혼인잔치에 들어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가르는 한 가지

2023. 3. 28. 06:49성서유니온 매일성경/마태복음

목차


    마태복음 25:1-13

    찬송가 176장, 주 어느 때 다시 오실는지


    깨어 있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마 24:36). 그렇기 때문에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준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준비하고 있는 모습을 마태복음 24장에서는 두 가지 비유로 알려줍니다. 첫째는 집주인이 도둑이 올 수 있음을 알고 방비하는 모습이고 둘째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으로서 주인의 소유를 잘 관리하는 모습입니다. 이제 25장에서 비유 계속 이어집니다. 열 처녀의 비유가 나오고 이어서 달란트의 비유가 나옵니다. 오늘 본문은 열 처녀의 비유입니다. 

    천국과 기다림

    예수님께서는 천국은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고 하십니다.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가 천국과 같다고 하십니다. 즉 천국은 기다림의 요소를 가진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미 임한 천국을 살고 있습니다만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면서 삽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면 천국의 극치가 이뤄질 것입니다. 천국의 이러한 면이 이 비유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슬기 있다는 말의 의미

    이 비유에 등장하는 열 처녀 중에 다섯은 슬기 있고 다섯은 미련합니다. 앞에서도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등장합니다. 이렇게 볼 때 깨어 있는 것과 지혜는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앞에 나온 종을 묘사하는 지혜롭다는 말과 여기 나오는 처녀를 묘사하는 슬기롭다는 말은 같은 단어입니다. 헬라어로 프로니모스(φρόνιμος)입니다. 이 말은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때 의도와 생각을 갖고 한다는 뜻입니다.

    생각과 의도를 가지고 행동함

    예를 들어서 그림을 잘 그리는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형체를 그리는데 그게 무엇인지 처음에는 알 수 없습니다. 그림이 점점 완성되어 갈수록 처음에 그린 것이 전체 그림에서 무엇인지가 드러납니다. 다른 사람은 처음에 그리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그 사람은 그게 무엇인지 압니다. 왜냐하면 전체 그림을 미리 생각하고 그 부분을 그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프로니모스는 이렇게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때 가지는 생각과 의도를 뜻하는 말입니다. 특별히 그 생각과 의도가 지혜로운 것을 뜻합니다. 

    신랑이 늦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슬기로운(프로니모스) 다섯 처녀는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습니다. 그 행동 안에 이들의 지혜로움이 담겨 있습니다. 이들은 신랑이 금방 올 수도 있지만 늦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기름도 준비해서 가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생각이 기름을 준비하는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반면 미련한(μωρός)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미련한 자들은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저 타성에 젖어서 신랑을 맞이하는 역할만 생각하고 등불만 달랑 가져간 것입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 혼인잔치에 들어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가르는 한 가지

    생각이 준비로 이어짐

    슬기로운 처녀들은 만의 하나 혹시 일어날 수도 있는 급박한 상황을 미리 생각했습니다. 미리 생각하고 대비하는 자세로 기름을 준비했습니다. 반면 미련한 처녀들은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기름을 준비할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입니다. 신랑이 정말 더디 오게 되어서 다들 졸면서 잤다고 합니다(5절). 이것을 볼 때, 앞에 나온 깨어 있는 것이 물리적을 깨어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깨어 있는 것은 지혜 있는 자로서 항상 생각하고 준비하는 자세로 사는 것을 뜻합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임무를 수행하지 못함

    미련한 처녀들은 신랑이 올 때 맞이하는 임무를 감당하지 못합니다. 기름을 사러 갔기 때문입니다. 꺼진 등불로 신랑을 맞이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정작 나가서 밖에서 똑같이 고생했지만 맡은 임무를 수행하지는 못한 것입니다. 그 원인은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깨어 있다는 것의 의미를 알려주는 비유들

    결론은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리라(13절)"입니다. 이 구절은 24장 36절과 수미쌍관을 이룹니다. 그러므로 이 양쪽 구절 안에 담긴 이야기가 다 깨어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줍니다. 오늘 본문 열 처녀의 비유에서 깨어 있는 것은 지혜와 연결됩니다. 지혜는 예수님이 언제 오실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언제 오실지 모르니 항상 모든 면에서 준비하고 있자, 이런 지혜입니다. 언제 오실지 모르지만 날이 새기 전에는 반드시 오신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 맞는 분량의 기름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깨어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깨닫지 못함, 생각하지 않음, 미련함

    앞에서 노아의 홍수 이전 사람들은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했습니다(마 24:39). 악한 종은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면서 주인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동료를 때리고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면서 지냈습니다(마 24:48-50). 그런데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주인이 왔습니다(마 24:50). 미련한 다섯 처녀도 생각하지 못한 시각에 신랑이 이르렀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이들이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즉, 아무 생각 없이 예수님과 상관없이 살았습니다. 

    믿는 자들은 항상 생각하는 사람들임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살전 5:4)

     

    예수님과 아무 상관 없이 사는 것은 어둠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반면 믿는 자들은 빛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있으면서 믿음과 사랑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입니다.

     

    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9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예배로 모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모으셔서 우리가 왜 사는지를 말씀으로 깨닫게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살 수 없습니다. 매주일마다 그것을 생각하도록 주님께서 우리를 깨우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 날과 그 때를 모르게 하심은 불안하게 하려 하심이 아닙니다. 하루하루를 믿음으로 충실하게 살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해서 구원을 받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불안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항상 모든 면에서 예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을 향하고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과 그로 인한 지혜가 곧 깨어 있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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