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마태복음 10장 24-33절 |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대할 때 나타나는 우리의 죄성

2023. 2. 12. 08:41성서유니온 매일성경/마태복음

목차


    마태복음 10:24-33

    찬송가 336장, 환난과 핍박 중에도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두려워합니다. 꼭 청개구리 같습니다. 말씀을 거꾸로 듣고 거꾸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같은 말씀을 들을 때면 아직 오지도 않은 박해를 두려워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러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무슨 말씀인지 자세하게 잘 읽어보세요. 

    박해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면서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 박해를 받을 때 사도들은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해야 합니다. 또한 인내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인자로서 곧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자와 종의 마음

    오늘 본문에는 사도들이 박해에 대해서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가 나옵니다. 사도들이 가져야 하는 마음은 나를 보내신 예수님께서 박해를 당하셨다, 그러니 나도 당한다는 마음입니다. 제자가 선생과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다는 말씀이 이 뜻입니다.

    제거 대상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실 때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쫓아낸다 하였습니다(9:34). 예수님 보고 바알세불이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귀신의 왕과 연결 지어 악하다고 한 사람들이 사도들 앞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눈에 예수님은 제거 대상이었습니다. 하물며 그 종들은 얼마나 더 제거하려고 할까요(25절). 

    박해를 예상하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함

    사도들은 복음을 전할 때 이것을 알고 전해야 합니다. 박해가 있을 것을 예상해야 합니다. 예상하면서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 진리는 드러날 것이고 알려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모든 것이 전파될 것입니다(26-28절). 그것을 전할 사명이 사도들에게 있습니다. 실로 사도들은 목숨을 걸고 그것을 전했고 순교했습니다. 

    두려움의 대상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대상과 두려워할 대상이 누군지 가르쳐주십니다.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대상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세상에서 권력을 가지고 심판자의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벌을 내릴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두렵습니다. 이들이 두렵지 않으려면 시야를 영원으로 확장해야 합니다. 

    몸이 죽는 것

    시야를 영원으로 확장해서 보면 몸이 죽는 것은 작은 일입니다. 몸이 죽는 것이 작은 일이라니, 목숨이 전부가 아닌가 생각이 드실 겁니다. 그래서 그토록 건강을 중요하다고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돈과 권력이 아무리 많아도 건강을 잃으면 소용없다고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몸이 죽는 것이 작은 일이라니.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우리가 몸으로 사는 것만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몸으로 사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아무도 죽음 이후를 살아보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죽음 이후가 있다고 알려주십니다. 

    영혼의 안위가 더 중요함

    몸뿐만 아니라 영혼이 있다고 하십니다. 몸이 죽는 것이 작은 일인 이유는 영혼은 계속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박해자들의 권세는 이 땅에서만 효력이 있지만 하나님의 권세는 영원히 유효합니다. 하나님은 몸뿐만 아니라 영혼도 지옥에서 멸하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정말 두려우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분

    영원까지 확장된 시야로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참으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분이십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닙니다. 그도 하나님 앞에 심판받을 자입니다. 그러하기에 비록 지금은 그가 내 목숨을 빼앗으려고 하는 자이지만 그도 또한 전도의 대상입니다(10:18).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이제 중요한 것은 진짜 두려워할 분이신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지옥에 멸하실 분이시냐 아니냐 이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것이 29절 이하로 이어집니다. 29절에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말씀합니다. 앗사리온은 데나리온의 1/16의 가치입니다.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치 품삯입니다. 당시 노동자가 하루에 10-12시간 일 한다고 할 때 한 앗사리온은 지금의 시급보다 적은 돈입니다. 한 번 계산해 보세요. 지금 2023년 시급으로 따지면 한 5천 원 정도입니다. 참새 두 마리에 5천 원이니까 한 마리는 2,500원입니다. 

     

    참새 두 마리

    참새도 귀하게 여기심

    지금 2,500원 정도 되는 참새를 왜 말씀하실까요? 하나님께서 그 참새도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살 수 있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께서는 귀하게 여기셔서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참새가 죽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머리털의 갯수

    그러시면서 너희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다고 하십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누가 내 머리털을 다 세어 줍니까? 아무리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나의 부모님이라도 너 정말 사랑스럽다, 여기 와 봐라,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너의 머리털이 몇 개인지 좀 알아야겠다, 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사랑해도 머리털까지 다 세어서 알고자 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시냐면 우리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실 정도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눅 21:18, 삼상 14:45 참조).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과 내 머리털 하나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비교하시면서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다고 하십니다. 에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 이토록 생생하게 알려주십니다. 

    나의 목숨을 나보다 더 귀하게 여기심

    예수님은 하나님이 우리를 이토록 귀하게 여기시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만약 너희가 목숨을 잃는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니 괜찮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네 목숨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가 알지 않느냐 그 귀한 목숨이 하찮게 잃어버려지는 것을 뜻하시겠느냐, 이런 뜻입니다. 만약 네가 목숨을 잃는다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얼마나 귀하게 사용하시겠느냐, 이런 말씀입니다. 

    내 목숨을 누가 귀하게 여기는가

    그러시면서 덧붙여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32-33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잘 생각해 보시면 자기가 자기 목숨을 귀하게 여기는 자와 하나님께서 자기 목숨을 귀하게 여기시는 것을 아는 자,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다르게 행동하겠구나를 깨닫게 됩니다. 자기가 자기 목숨을 귀하게 여기는 자는 결정적인 순간에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할 것입니다. 자기 목숨을 스스로 건지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보다 더 나를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스스로 자기 목숨을 건지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순교는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님

    실로 사도들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목숨 잃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연약하여 잠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일이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회복시켜 주신 후(요 21:15-19)에는 당당하게 순교의 자리로 들어갔습니다. 이것을 볼 때 순교의 자리로 들어가는 것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죽는 데까지 주님을 따라가겠다고 다짐하고 선언한(마 26:33)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마 26:69-75). 순교는 하나님께서 내 목숨을 소중히 여기시는 만큼 나의 영혼의 안위도 소중히 여기셔서 목숨을 잃어도 된다는 믿음 주시고 소망을 새롭게 해 주셔야 가능한 일입니다. 스스로 아무리 다짐해도 안 되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증언하는 자들의 참됨

    우리가 기억할 것은 역사상 수많은 순교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증언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증언하여 반역자라는 고소를 당했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다, 지금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고 증언하여 돌로 침을 받아 죽임 당하기도 했습니다(행 7:55-56).

     

    무겁고 두려운 말씀이 아님

    그들의 증언이 우리 귀에까지 들려왔습니다. 할렐루야! 그 결과 우리는 지금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 압니다. 이 말씀은 무거운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귀하게 여기시는 만큼 나에게 믿음을 주시고 예수님을 더 잘 따르게 하실 것입니다. 박해의 상황이 와도 배반하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믿음이 약한 자를 결코 그런 자리에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고전 10:13). 우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과 영혼은 하나님의 은혜로 영원히 보존됩니다. 보존될 뿐만 아니라 영원한 영광을 누릴 것입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두려워하는 우리

    두려워하지 마세요. 우리 죄성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들으면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두려워합니다. 거꾸로 듣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자리에 가면 내가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 고민하지 마세요. 예수님께서 고민하지 말라고 하시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에게 할 말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마 10:18-19). 이것도 또한 믿으시고 나를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즐겁게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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