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11. 07:14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마태복음
목차
마태복음 10:16-23
찬송가 323장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에게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 제자들을 보내셨습니다(10:6).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9:36). 예수님은 생명이 위태한 지경에 있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제자들은 생명을 살리는 추수를 하기 위해서 보냄을 받았습니다.
배척하는 자들이 있을 것임
제자들이 목자 없이 죽어가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에게 간다고 해서 제자들을 만나는 모든 양들이 다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보내신 제자, 즉 사도들을 영접하지 않고 그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10:14). 사도들은 그들 모두에게 평안을 빕니다. 사도들이 빈 평안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그 평안을 받을 것이고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게는 평안이 임하지 않을 것입니다(10:13).
거절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주님께서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사람들에게 머물면서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복음을 받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을 선언하셨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 자체가 심판받을 자들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10:15).
사도들은 권위를 가지고 복음을 전하였지 구걸하는 식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가면 되었습니다. 복음 전도자들은 거절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거절당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생명이 위태한 양이면서 동시에 약탈하는 이리임
복음 전도자들이 당하는 것은 거절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보라(Ἰδοὺ)!" 하시면서 제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십니다. 주의를 환기시키시고 복음을 전할 때에는 거절만이 아니라 핍박도 당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앞의 내용에 나오는 것처럼 복음전도는 예수님께 보냄을 받아서 예수님의 권위로 생명이 위태한 불쌍한 양들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말씀하시기를 사도들을 보냄이 이리 가운데 양을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생명이 위태한 양이면서 동시에 약탈하는 이리라는 뜻입니다. 가죽이 벗겨지고 버려진 처지에 있는 가련한 양의 처지에 있으면서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복음을 전하러 오는 사도들을 그런 처지로 몰아넣는 이리들입니다. 이리처럼 자기에게 오는 복음 전도자들을 약탈하여 그들의 생명을 위태하게 하는 자들입니다.
뱀같이 지혜로우라는 말씀의 뜻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16절)고 말씀하십니다. 뱀 같이 지혜롭다(φρόνιμος)는 말은 상대방의 속에 무엇이 있는지 파악하라는 말씀입니다. 뱀은 피부로 감각하는 동물입니다. 피부로 땅의 진동을 느끼고 공기를 느낍니다. 밖에 드러난 현상을 빨리 감각해서 그 현상이 어떤 현상인지 파악합니다. 그것처럼 다른 이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그 사람의 말에 담긴 의도가 무엇인지 민감하게 파악하는 것이 뱀과 같은 지혜입니다.
무딘 마음은 사람을 의지하게 함
성경에 뱀이 사탄으로 비유된다고 해서 무조건 악하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여기서는 뱀의 선함이나 악함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고 감각 능력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 뱀과 같은 지혜가 필요하냐면 무딘 마음(μωρός)으로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바로 이어 나오는 말씀이 "사람들을 삼가라(16절)"입니다. 전도자들은 사람의 속에 무엇이 있는지 민감하고 지혜롭게 알면서 사람에게 의지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러셨습니다.
사람에게 몸을 의탁하지 않으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계실 때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예수님의 이름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람 속에 무엇이 있는 줄을 아셨기 때문에 그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않으셨습니다(요 2:23-25). 사람을 의지하지 않으셨지만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셨습니다. 이처럼 뱀과 같이 지혜롭다는 말은 사람 속에 무엇이 있는 줄 알고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사람들을 삼가야 하는데 그들이 이리가 되어 전도자들을 공회에 넘겨주고(행 5:27)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행 5:40)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사도행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알고도 당하는 지혜
사도들은 뱀같이 지혜롭지 못해서 그런 일을 당한 것이 아니라 사람 속에 그런 것이 있는 줄 알고 당한 것입니다. 사도들은 오히려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했습니다(행 5:41). 모르고 당한 것이 아니라 알고도 당한 것이기 때문에 목숨을 구걸하거나 하지 않음으로 사도의 권위나 복음 진리를 손상시키지 않았습니다. 뱀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순결이 만나는 지점이 여기입니다.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는 말씀의 뜻
복음 전도자들은 비둘기같이 순결해야 합니다(ἀκέραιος). 이 순결하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섞이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복음 전도자들의 의도와 목적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알려줍니다. 복음 전도자들은 복음이 전해지는 한 가지 의도로 살아야 합니다. 복음과 다른 것이 섞이면 안 됩니다.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
사도바울은 자기가 감옥에 갇힌 일이 오히려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되었다고 하면서 기뻐한다고 말합니다(빌 1:12-18). 바울은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합니다(빌 1:21). 바울의 마음은 오직 그리스도께 향하여 있었습니다. 복음에 향하여 있었습니다. 거기에 다른 의도나 동기가 섞이지 않았습니다.
지혜와 순결로 박해를 당함
사도들은 이런 순결함 때문에 박해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뱀같은 지혜로 당국자들이 어떻게 나올지 뻔히 알면서도 당당하게 박해를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적 손길로 건지실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매 맞고 옥에 갇히는 것을 피하지 않고 다 당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복음 전파에 귀하게 사용되었습니다.
박해는 복음전도의 기회가 됨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서 거기서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심문당하는 자리에서 오히려 복음을 당당하게 증언했습니다(행 26:29). 그들이 할 말을 그들 속에서 성령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20절). 그렇게 해서 복음이 이방인에게 능력 있게 전파되었습니다.
끝까지 견딤
복음 전도 때문에 가족들까지 사도들을 미워하고 돌아서는 일이 생기는데 전도자는 그것을 끝까지 견뎌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 전도자에게 요구되는 인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말씀하심으로 전도자들을 격려하십니다.
인자가 오리라는 말씀에 담긴 위로
"인자가 오리라"는 말씀은 다니엘서의 박해 상황에서 다니엘에게 보인 환상(단 7:13-14)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 환상에 인자 같은 이가 등장합니다. 그분은 예수님입니다. 환상에서는 모든 권세와 영광과 나라가 인자에게 있다고 합니다.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인자이신 예수님을 섬기게 됩니다. 인자가 오리라는 말씀은 이 일이 곧 일어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인자가 곧 오실 것이기 때문에 복음 전도자들이 당하는 고통은 기약이 없는 없는 고통이 아니요 잠시 인내하면 끝나는 고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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