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1장 전반부, 이스라엘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지혜

2023. 6. 18. 10:49성서유니온 매일성경/로마서


로마서 11:1-12

찬송가 302장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을 향하여 종일 손을 벌리고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셨습니다(10:21). 그러나 이스라엘은 복음에 순종하지 않고 거역했습니다(10:16). 그들의 불순종을 보아하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신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1절)"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2절). 바울은 그것을 엘리야가 이스라엘을 고발한 사건으로 설명합니다. 엘리야가 이스라엘을 고발하여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3절)"라고 하니까 하나님께서는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4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즉, 모든 이스라엘이 다 그런 것이 아니라, 모두 다 바알에게 넘어간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고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칠천 명이 남아 있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사람이 보기에는 다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듯이 보이지만 그들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가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남은 자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복음에 다 불순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서 남은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5절). 그들 중 한 사람이 사도 바울입니다(1절). 그런데 남은 자는 어떻게 해서 남은 자가 되었느냐 하면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행위가 의로워서 남은 자가 된 것이 아니라 은혜로 택하셔서 남은 자가 되었습니다. 복음에 순종함은 그 결과입니다. 

택하심을 입은 자와 우둔하게 된 자

7절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은 의롭게 되는 것인데 의롭게 되는 것을 오직 택하심을 얻은 자만 얻었습니다. 택하심을 얻지 못한 자들, 즉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습니다. 7절의 남은 자는 앞에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 즉 택하셔서 남기신 자가 아니고 그들을 뺀 남은 자입니다. 오직 택하심을 얻은 자를 뺀 남은 자가 "그 남은 자"입니다. 그들은 우둔하여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둔하게 하심

우둔해져서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자, 우둔한 자가 되었습니다(8절).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입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29장 10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사야 29장은 앞에서 토기장이 비유를 할 때 인용했던 구절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이사야 말씀을 주해하면서 논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그가 선지자들과 너희의 지도자인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사 29:10)

 

이렇게 된 결과는 무엇이냐면 지음 받은 자가 자기를 지은 자에게 총명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너희의 패역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 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사 29:16)

 

이 같은 태도는 복음으로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그 방법이 지혜가 없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가 담긴 십자가를 향해서 총명이 없다고 하는 패역을 저지르는데 그들이 그렇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하는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다윗이 주님께 구한 것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9   또 다윗이 이르되 ㄹ)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10   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로마서 11장 전반부, 이스라엘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지혜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버리시지 않으셨습니다(1절). 버리시지 않으셨지만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하는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습니다(8절). 그러면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그들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11절).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감추셨다가 드러낸 것으로서 신비에 속한 것입니다(11:25). 하나님께서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경륜에 속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고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렇게 보면 그들의 충만함은 얼마나 더 세상에 유익이 되겠는가, 이것이 사도 바울의 논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을 이런 방식으로 다루시는가?

여기서 우리는 심오한 질문 한 가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을 왜 그렇게 다루시는가? 유대인도 선택하시고 충만하게 하시면서 동시에 이방인도 선택하시고 충만하게 하시면 안 되는 것인가? 왜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시는가? 이렇게 질문 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10장, 11장에 이미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들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주시라는 것으로 사도 바울이 앞에서 대답한 것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토기장이처럼 그릇을 쓰임에 맞게 지으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쓰임이냐면 하나님의 진노를 보이시는 쓰임과 하나님의 긍휼을 보이시는 쓰임입니다. 이 두 가지 쓰임에 맞게 하나님께서 그릇을 지으시고 그대로 사용하신다, 이렇게 이미 답을 해 놓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시기나게 하시고 이방인들은 겸손하게 하심

복음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보이는 그릇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복음을 듣고 순종하도록 하신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긍휼을 보이는 그릇으로 사용하시고 계십니다. 이렇게 하셔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보면서 시기하게 되고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십니다.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을 보면서 교만하지 않게 하시고 끝까지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하십니다. 모든 것이 다 좋으니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무한히 선하시고 무한히 지혜로우신 것을 믿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방식이 얼마나 선하고 지혜로운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러한 논지로 11장이 계속 이어집니다.

인격적 피조물을 다루시는 방식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인격적 피조물을 다루시는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인격적 피조물은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돌아와야 합니다. 물론 이것도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지만 그렇게 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자발성을 완벽하게 보장하십니다. 깨닫고 돌아오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고 돌아오게 하신 것이지만 깨닫고 돌아오는 과정에서 재료가 필요합니다. 이방인과 유대인이 서로가 서로에게 재료가 됩니다. 다르게 말하면 믿는 자에게는 믿지 않는 자가 생각할 재료가 되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믿는 자가 생각할 재료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서로를 보면서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십니다. 이것도 궁극적으로는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지만 그 과정에 있어서는 사람의 자유를 완벽하게 보장하시는 것입니다. 이것 또한 신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