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9장 마지막과 10장 처음, 로마서 9장 마지막과 10장 처음,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르지 않은 유대인들

2023. 6. 15. 11:21성서유니온 매일성경/로마서


로마서 9:30-10:4

찬송가 463장 신자 되기 원합니다


로마서 9장의 맥락

로마서 9장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것은 어떻게 되었느냐라는 주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스라엘에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9:6)"라고 말하면서 논지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선택하셨는지를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심은 긍휼히 여기셔서입니다(9:16).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은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완고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마치 출애굽 시대의 바로와 같습니다(9:17). 이것을 이야기하면서 구약에 있는 토기장이의 비유를 가져옵니다. 특별히 이사야 45장의 논리 구조로 답을 합니다. 이사야 45장은 하나님께서 이방인 고레스를 택하셔서 들어 쓰시는 것을 말씀하는 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들어 쓰실 수 있으신 주권이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그 주권은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만드셨다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반대하는 자에 대해서 하나님은 구원으로 답하십니다. 창조하실 뿐만 아니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니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선하게 다스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방인의 구원을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논리를 그대로 따라서 로마서 9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이루려고 하였으나 이루지 못한 유대인들

이제 마지막 부분에서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30절)"라고 말씀합니다. 이방인들에게는 율법이 없었으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하나님을 믿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지금 복음에 믿음으로 반응하고 있습니다. 복음에 믿음으로 반응한다는 것은 사도 바울이 계속 말하고 있듯이 그들이 의를 알고 따른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믿게 하신 것입니다. 반면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31절)"라고 합니다. 이들은 율법에 이르려고 하였으나 이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했기 때문입니다(32절). 사도 바울은 그것을 부딪칠 돌에 부딪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사야 28장을 인용합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사 28:16)

사망과 언약하였고 스올과 맹약하였다

이 말씀은 사망과 언약하였고 스올과 맹약하였다고 하면서 재앙이 자기에게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오만한 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사 28:14-15).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앗수르의 위협을 피해서 애굽과 동맹을 맺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그들이 사망과 언약을 해 놓고 재앙을 피하려고 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출애굽기에 잘 나와 있는 것처럼 애굽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망세력을 상징합니다. 그 애굽, 즉 사망세력과 동맹을 맺어서 사망을 면하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입니까? 이것이 율법을 가진 이스라엘 민족의 행태였습니다. 

 

로마서 9장 마지막과 10장 처음,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르지 않은 유대인들

시온에 둔 기촛돌을 의지하라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시온에 둔 기촛돌을 의지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성전 기초석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하나님께서 보내실 메시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라는 말씀을 시옷의 기촛돌을 의지하라는 말씀으로 하신 것입니다. 즉 장차 오실 메시아를 가리켜서 사망을 의지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이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지 않고 거기에 걸리고 넘어지고 거쳐서 깨졌습니다. 이사야 28장에서 잘못을 지적하는 지도자들의 행태가 그대로 유대인들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님

사도 바울은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10:1).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10:3). 그들의 열심은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닙니다(10:2). 마치 이사야서에 나오는 지도자들처럼 사망과 언약을 맺어 놓고 재앙을 피하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선한 율법이 약하고 악한 사람 안에 있는 죄성과 결부되어 죄감을 불러일으키고 결국 사망으로 이끄는 것을 앞에서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율법을 의지하는 것은 사망을 의지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해 놓고 재앙이 자기에게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이 지금 그러고 있다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의를 이루려면 율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해야 함

의는 어떻게 이루는 것이냐면 율법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루는 것입니다(10:4). 그리스도께서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십니다. 그렇게 해서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율법의 끝 지점, 즉 율법이 그리는 완전하게 의로운 인간상의 모든 것이 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율법은 끝을 맞이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완전하게 의로운 삶을 지시하는 율법은 완전하게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모든 율법의 의를 이루심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지나 끝났습니다. 이제 의는 율법이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십니다. 모든 율법의 의를 이루시고 그 의를 모든 믿는 자에게 이루십니다. 이것이 믿음이고 하나님께서 긍휼을 이루시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