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9장 후반부, 지음 받은 자가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와 그릇

2023. 6. 14. 08:07성서유니온 매일성경/로마서


로마서 9:19-29

찬송가 68장 오 하나님 우리의 창조주시니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사도 바울은 앞에서 하나님께서 뜻대로 사람을 택하시고 사용하심을 말씀했습니다(9:15-18). 그 말씀에서 마지막 예로 든 사람이 바로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고 하나님의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고 바로를 완악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9:17). 그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라고 물어보는 가상의 질문으로 이어갑니다. 여기서 허물하신다는 말씀(μέμφομαι)은 바로의 잘못을 지적하심으로 바로를 받지 않으시고 책망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질문 안에 담긴 뜻은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신 것이니 바로에게 책임을 물으실 수 없으신 것이 아니냐, 이런 뜻입니다. 바로가 악을 행한 잘못을 하나님께 돌릴 수 있는 것 아니냐, 이런 뜻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반문 안에는 사람의 교만이 담겨 있습니다. 사람이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악하게 사용하시고자 한다면 누가 선을 행할 수 있느냐, 이런 뜻이 담겨 있습니다.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이런 반문은 하나님께서 악의 조성자가 아니시냐,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선악 간에 판단하실 수 있으시냐, 이런 뜻입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악의 조성자가 아니심을 이사야 29장으로 설명합니다. 지음 받은 자는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토기장이처럼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실 권한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토기장이로 비유한 것은 이사야 29장 16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사야 29장 16절

너희의 패역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 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와같이 책망하신 이유는 그들이 자기 계획을 하나님께 숨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사 29:15). 하나님께 자기의 악한 의도를 숨기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의도를 모르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입으로는 하나님을 가까이하지만 마음으로는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사람들입니다(사 29:13). 그들은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사 29:15)"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사람의 모든 악한 의도를 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이를 판단하실 수 있으십니다.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는 대상

이사야 29장의 맥락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악한 자를 심판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긍휼을 베푸신다는 맥락입니다. 악한 자는 선한 자처럼 보이고 드러나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들을 존경하고 높입니다. 그들은 송사로 죄를 씌우고 의인을 억울하게 하는 자들입니다(사 29:21). 반면 겸손한 자는 못 듣는 자요 맹인으로 나옵니다(사 29:18). 듣지 못해 깨닫지 못하고 보지 못해 알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셔서 듣게 하시고 보게 하사 깨닫게 하십니다. 총명하게 하셔서 교훈을 받게 하십니다(사 29:23-24). 자기가 스스로 안다고 하는 자들은 심판하시고 모르고 무능한 자들에게는 긍휼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으로 볼 때 "어찌 하나님께서 허물하시느냐"라고 묻는 사람은 악하여 자기의 의도를 숨기는 사람입니다.

 

로마서 9장 후반부, 지음 받은 자가 지은 자에게

이사야 45장 9절

사도 바울의 토기장이 비유 안에는 이사야 45장 9절도 들어 있습니다.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이와 더불어 다툴진대 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무엇을 만드느냐 또는 네가 만든 것이 그는 손이 없다 말할 수 있겠느냐

 

이사야 45장은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일으키실 것에 대해서 말씀하는 장입니다. 45장 앞에서는 창조주 하나님을 말씀하고 뒤에서는 구원자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그 중간에 딱 나오는 것이 위의 내용입니다. "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무엇을 만드느냐" 진흙이 왜 이렇게 토기장이에게 반문하냐면 위에 45장 7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나오기 때문입니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이에 대해서 피조물이 하나님께 반문하는 것입니다.

구원으로 답하심

이에 대한 답은 구원입니다. 구원인데 이스라엘 만을 위한 구원이 아니라 땅의 모든 족속을 위한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들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사 45:17). 그런데 그렇게 구원을 받는 자들의 범위가 땅의 모든 끝으로 확장됩니다.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아와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사 45:22)" 이 말씀은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모든 무릎이 하나님께 꿇게 되고 모든 혀가 하나님을 인정하게 됩니다(사 45:23). 

창조로 시작해서 구원으로 답함

이런 맥락이 그대로 로마서 9장에 들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반문하는 것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창조로 시작해서 구원으로 답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로를 완악하게 하셔서 사용하셨다고 악의 조성자인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22절). 앞에서 모든 사람이 다 죄를 범하여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3:23). 그 말은 하나님께서 악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이 타락하여 악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악한 자들을 관용하시고 긍휼을 베푸시고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십니다(23절). 

호세아와 이사야를 인용함

이사야의 예언대로 사도 바울은 그러한 긍휼의 그릇은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들이 포함된다고 합니다(24절). 그러면서 선지자 호세아와 이사야를 인용합니다. 이 구약의 말씀은 당시까지 난해 구절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구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어진 구원 역사를 사도 바울이 보고 그 구약 성경을 잘 주해하고 있습니다. 호세아가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하신 것과 이사야가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라" 하신 것이 사도 바울 시대에 일어나는 읿니다. 즉 이방인은 복음으로 돌아오고 유대인은 복음을 대적하고 있는 상황이 그것입니다. 진노의 그릇인 줄 알았던 이방인은 관용하고 오래 참으신 긍휼의 그릇입니다. 반면 긍휼의 그릇인줄 알았던 유대인은 진노의 그릇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바로와 같이 완악하게 행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완악하게 행동하는 것은 같은데 하나님께서 씨를 남겨두신 것이 큰 은혜입니다(29절). 

하나님은 모든 것을 판단하실 수 있으신 창조자요 구원자이심

하나님은 악의 조성자가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기신 분이십니다. 모든 사람이 다 완악하게 되어 아무도 구원을 얻을 수 없는 지경에서 그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택하시고 부르시어 하나님의 영광을 알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이 담긴 희생으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든 것을 판단하시고 주관하시며 긍휼을 베푸실 수 있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