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1장 중반부, 이방인의 사도로서 이방인에게 하는 권면

2023. 6. 19. 06:44성서유니온 매일성경/로마서


로마서 11:13-24

찬송가 273장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이방인의 사도로서 이방인에게 하는 권면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시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지금은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도록 사용하고 계십니다.(11:12). 여기까지 쓴 다음에 사도 바울은 이방인에게 교만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20절). 사도 바울은 자기가 이방인의 사도라는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긴다고 하면서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라고 쓰고 있습니다. 바울이 바라는 것은 맡은 바 자기 직분을 성실하게 수행함으로 이스라엘을 시기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는 것입니다(14절). 이스라엘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러한 때입니다. 이제 앞으로 한 가지 일이 남았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이 예수님께로 돌아오는 일입니다. 그렇게 되어 그들을 받아들이는 일이 남아있습니다. 이 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성취된다고 합니다(15절). 이 구절은 25절말씀과 연결됩니다. 즉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라는 신비가 바로 15절에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사용하신 일의 비유

하나님께서는 역사 가운데 한 번도 이스라엘을 버리시지 않으셨습니다. 처음에 그들을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떡덩이 전체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뿌리로 사용하시는데, 뿌리를 거룩하게 하셔서 뿌리에 연결된 가지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즉 이방인의 구원을 위해서 먼저 이스라엘을 사용하셨습니다(16절). 

이방인들을 접붙이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다루셔서 거룩한 참 감람나무로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자라게 하시고 그 가지 중 얼마를 꺾으셨습니다. 좋지 않은 가지를 솎아내신 것입니다. 그 자리에다가 돌감람나무 가지를 접붙이셨습니다. 여기서 돌감람나무는 이방인을 가리킵니다. 이방인을 거룩한 참감람나무에 접붙이셔서 그 뿌리의 진액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역사 가운데 사용하시고 이끄신 일들이 이방인들에게 영적 양식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지금 이방인인 우리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루신 일들이 담긴 성경을 읽으면서 유익을 누리도록 하셨습니다(17절).

하나님을 향하여 자랑하거나 높은 마음을 품으면 안 됨

이것으로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꺾이운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접붙임이 되었다고 교만하지 말아야 하는데 왜냐하면 가지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가지를 보전하기 때문입니다. 역사 가운데에서 이스라엘을 다루신 하나님의 경륜이 유구히 흘러서 지금 이방인들에게 은혜가 베풀어지고 있습니다. 이 은혜의 근원을 살펴서 들어가 보면 거기에는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그들을 거룩하게 하셔서 그들에게 은혜 베푸신 일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스라엘이 꺾였다고 자랑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두려워해야 합니다. 높은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20절).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않으시고 꺾으신 것을 지금 눈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우리 이방인들도 하나님을 향하여 높은 마음을 품고 꺾이운 가지들처럼 교만하면 우리도 꺾이울 것입니다(21절).

 

로마서 11장 중반부, 이방인의 사도로서 이방인에게 하는 권면

믿지 않는 자는 꺾이움

하나님을 향하여 높은 마음을 품고 교만한 것은 바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보인 반응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있다고 하여 자기 행위를 의지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지 않는 자는 꺾이는 것입니다(20절). 믿는 자는 높은 마음을 품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복음으로 돌아온다면

이런 원리가 똑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적용됩니다. 만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의 교만을 회개하고 돌아와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께서는 꺾으신 그 가지들을 다시 접붙이실 것입니다(23절). 그들은 참 감람나무 가지들로서 참 감람나무에 얼마나 더 잘 붙겠습니까(24절). 구약 성경이 자기들의 언어로 쓰였고 하나님의 약속들도 다 자기들의 것이고 구약의 선지자들도 다 자기들의 역사 가운데서 활동한 사람들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절기와 풍습을 아직도 지키고 있으니 복음이 들어가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의미가 밝혀진다면 자기들이 행하던 절기의 의미를 얼마나 더 깊이 몸소 깨닫겠습니까? 물론 현재 메시아닉 유대인이라고 하여 성경의 영적인 의미를 육적인 의미와 혼합하여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을 해석할 때 하나님의 나라와 지금 이스라엘 정부를 혼동하여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단 사상과 결부되기도 하기 때문에 믿는 자는 주의해야 합니다. 다만 여기서 사도 바울이 이야기하는 것은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 얼마나 잘 받아들이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들 역사에 그 뿌리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

이방인들이 이것을 읽으면서 깨달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입니다. 넘어지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준엄하십니다. 여기 넘어진다는 것은 11절에서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라고 맗할 때 넘어진다라고 나온 단어(πίπτω)와 같은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타락하여 떨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반면 11절에서 나온 실족한다는 단어(πταίω)는 죄를 지어 떨어졌지만 회개하여 바르게 될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이스라엘은 넘어진 것이 아니요 실족한 것입니다. 그들은 언제든지 다시 자기 나무에 접붙임을 받아서 바로 될 수 있습니다. 11절, 12절에서 "그들의 넘어짐"이라고 나오는데 이 말로 이스라엘이 아주 버려진 것인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이 넘어짐(παράπτωμα)은 앞의 넘어짐과 다른 단어를 썼습니다. 이 말은 엇나간다, 죄를 범한다는 뜻입니다. 타락하여 떨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12절을 잘 해석하면 "그들의 엇나감이 세상의 충만이 되었는데 그들의 충만함은 이방에 얼마나 더 충만함이 되겠는가"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이 돌아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무는 방법

22절에서 이방인들이 교훈으로 받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준엄하심과 인자하심을 잘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넘어지는 자들을 보고 하나님의 준엄하심을 생각하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는 방법은 하나님을 계속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십자가를 의지하고 부활을 받아들여 소망하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자기를 부인하여 자기 의를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