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5장 전반부,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2023. 6. 26. 08:57성서유니온 매일성경/로마서


로마서 15:1-13

찬송가 455장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믿음이 강한 자와 믿음이 연약한 자

믿음이 연약한 자를 받고 그들을 비판하거나 업신여기지 말라(14:1, 10)는 논지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로서 자기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할 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입니다(12:1-2). 어떤 이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어떤 음식을 먹지 않고 어떤 날을 중히 여깁니다. 또 다른 이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모든 음식을 선하게 받아 먹고 모든 날을 중히 여깁니다. 이렇게 행동이 다르게 나오는 것은 각자의 믿음의 분량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강한 자가 있고 연약한 자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 강한 자는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1절). 왜냐하면 우리 모든 믿는 사람들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14:7-8). 주님을 위하여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내가 어떤 음식을 먹는 것 때문에 망하게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14:15).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행할 때 가장 중요한 원칙은 사랑의 원칙입니다(13:8-10). 

이웃을 기쁘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누가 이웃을 더 사랑할까요? 믿음이 강한 자가 이웃을 더 사랑할까요? 아니면 믿음이 연약한 자가 이웃을 더 사랑할까요? 믿음이 강한 자가 이웃을 더 사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 강한 자는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1절) 이웃을 기쁘게 합니다(2절).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는 일에도 믿음이 강한 자가 더 열심이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의 본을 보이신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습니다(3절). 사도 바울은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 어떻게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으셨는가를 시편 69편 9절을 인용하여 설명합니다. 시편 말씀에 보면 "주의 집을 위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으신 것은 기꺼이 비방을 받으신 것으로 나타나는데 왜 비방을 받으셨냐면 하나님의 집을 위하는 열심 때문에 비방을 받으셨습니다. 자기를 기쁘게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열심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자기를 비방할 지라도

이것을 지금 문맥에 대입해서 생각해 보면 믿음이 강한 자는 믿음으로 모든 것을 선하게 받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믿음이 강한 것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를 증명하는 것이요 자기를 기쁘게 하는 것밖에는 안 됩니다. 더 좋은 것은 믿음이 강하면서도 믿은이 연약한 자의 약함을 감당하여 고기를 먹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믿음이 강한 자가 혹시 자기를 비방할 지라도 그렇게 행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위하는 마음으로 친히 비방을 받으시는 자리에 몸소 들어가셨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비방할 것을 알면서도 믿음이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는 것은 이렇게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위하는 일입니다.

 

로마서 15장 전반부,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예수님을 본받아

사도 바울은 이어서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라고 기록합니다(4절). 예수님께서 친히 비방 받으시는 자리에 들어가심을 보고 교훈을 받아 예수님처럼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 기록된 위로의 말씀이 나를 위한 말씀이 되고 그렇게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4절). 하나님께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믿음이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는 우리를 받으시고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게 하십니다(5절). 그렇게 해서 믿음이 연약한 자 따로 믿음이 강한 자 따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예수님만 본 받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게 하십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게 하십니다(6절). 이것을 바라보고 그리스도께서 믿음이 약한 자나 믿음이 강한 자나 우리 모든 사람을 받으신 것처럼 서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7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 모두를 위해 할례 받으신 예수님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할례 받으신 것이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을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8절 이하). 예수님께서는 할례를 받으셔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할례 받으라고 하신 그 참 의미를 몸소 드러내셨습니다. 그렇게 하시고 할례 받으라고 하시고 약속하신 것들을 몸소 다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명령하실 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 17: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으시고 하나님 앞에 행하여 완전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열국의 아버지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창 17:5). 그렇게 해서 아브라함은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이 되었습니다. 이 때에 이미 여러 민족이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올 것이 약속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할례를 받으신 것은 하나님의 이 약속을 당신님 안에서 온전히 성취하실 것을 보이시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이 강한 자나 연약한 자나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이런 맥락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할례를 이야기하면서 이방인의 구원을 말씀합니다(9절 이하).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고 하나님을 찬송하고(9절) 이스라엘과 함께 하나님을 즐거워합니다(10절). 또한 하나님께 소망을 둡니다(12절). 이렇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열방을 하나가 되게 하시고 함께 소망이 넘치게 하셨습니다. 모든 기쁨과 평강을 충만하게 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셨습니다(13절). 믿음이 강한 자나 연약한 자나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한 가지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도록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