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로마서 2장 1-16절 | "그러므로"와 "나의 복음"

2023. 5. 29. 11:54성서유니온 매일성경/로마서

목차


    로마서 2:1-16

    찬송가 273장 나 주를 멀리 떠났다


    로마서 2장이 "그러므로"로 시작하는 이유

    로마서 2장은 "그러므로"로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인칭이 2인칭으로 바뀝니다. 상대방을 앞에 두고 말하는 문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이렇게 말하면서 "네가" 즉 "너"를 상정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너"는 유대인을 가리킵니다. 이 유대인은 누구냐면 1장 32절에서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에 해당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정하심, 즉 하나님의 법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알기 때문에 남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판단하는데 판단을 옳게 하지 않습니다. 1장 32절은 "(사형에 해당하는)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로 끝납니다. 이렇게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을 "너"로 놓고 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장은 "그러므로"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2-5절, 하나님의 진노를 자기 자신에게 쌓음

    2절에 보면 "우리가 아노라"라고 합니다. 바울도 유대인이기 때문에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이렇게 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아는 자의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법을 알지만 하나님의 법에 맞게 행하지 않고 심판 받을 일을 행합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할까요? 율법을 알고 있는 것을 의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는 율법을 알고 적용할 수 있으니까 율법대로 사는 줄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착각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을 멸시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4절). 하나님께서 나를 용납하고 계시구나 하면서 어서 회개해야지 이렇게 나아가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나는 잘못이 없다, 이렇게 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스스로에게 쌓는 것입니다(5절). 

    하나님은 각 사람이 행한 대로 보응하심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아느냐 모르느냐로 심판하시지 않으십니다. "각 사람이 행한 대로 보응"하십니다(6절). 영생으로 보응하시기도 하고 진노와 분노로 보응하시기도 합니다.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보응하십니다(7절). 그러나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분노와 진노로 보응하십니다(8절).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는 다른 말로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이라고 합니다. 이들에게는 환난과 곤고가 있습니다. 유대인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대인이 율법을 알기 때문에 먼저는 유대인이고 그 다음이 헬라인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9절).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는 선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습니다. 이것도 먼저는 유대인에게, 그 다음은 헬라인에게 그러합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같은 처분을 받습니다. 악한 행동을 한 사람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선을 구하고 선을 행한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라는 영생으로 보응하시는 것입니다. 

    안다는 것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함

    하나님은 이렇게 외모로 사람을 취하시지 않으십니다.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율법이 있든지 없든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12절이 그것을 말씀합니다.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율법 없이 망하고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습니다. 왜 그러하냐면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기 때문입니다(13절). 그러니까 율법을 안다고 앉아서 너는 옳다, 너는 그르다, 하고 있다고 의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에게도 똑같이 율법이 적용됩니다. 그가 율법에 맞게 행하고 율법대로 선하게 행했으면 의롭다 하심을 얻습니다. 안다는 것으로 의롭다함을 얻지 못하고 행하는 것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것입니다. 

    율법이 없는 이방인의 경우

    그러면 율법이 없는 이방인은 율법을 행할 기회조차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본성 안에 율법이 새겨져 있습니다.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됩니다(14절). 양심이 증거가 됩니다. 즉 양심 안에 율법이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양심이 율법대로 자기 행동을 성찰하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방인도 율법을 행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속 안에서 일어나는 일

    이것은 사람의 속 안에서 작용하는 것으로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다만 심판 날에는 사람들의 은밀한 것이 다 드러나게 됩니다. 그 때에 이방인들의 양심에 율법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 들어날 것입니다. 즉 이방인들은 율법을 가지지 못했었노라 하면서 변명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특이한 표현을 씁니다. 그것은 바로 16절에 나오는 "나의 복음"입니다. 사도 바울이 왜 "나의 복음"이라는 말을 썼을까요?

     

    로마서 2장 전반부, "그러므로"와 "나의 복음"

    "나의 복음"이라고 쓴 이유

    복음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

    "나의 복음"이라는 표현은 여기 로마서 2장 16절과 16장 25절, 디모데후서 2장 8절 이렇게 세 번 나옵니다. 각 본문을 보면 "나의 복음"에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의 복음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1장에서도 복음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명백하게 써 놓았습니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직분

    그러면 왜 복음 앞에 "나의"라는 말을 썼을까요? 그것은 은밀한 것을 드러내신 계시와 연관됩니다. 사도 바울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계시된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로 깨달았습니다(롬 16:25). 감추어졌다가 나타난 것 중에서 아주 중요한 것은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롬 16:26). 사도 바울은 이방에게 복음을 전하는 직분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나의 복음"이라는 말을 쓴 것입니다. 2장의 문맥을 보면 이방인을 이야기하면서 "나의 복음"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이제 이루시는데 이방의 사도로 부름을 받은 자기가 그 일의 도구라는 뜻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8절에 디모데에게 쓸 때에도 7절에서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고 하면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이방인에게 전한 복음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나의 복음"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이것은 자기를 높이는 말이 아닙니다. 복음에 자기가 뭔가 기여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경륜이 이방인에게 향한다는 것과 자기가 이방인의 사도로 어떤 기관처럼 쓰임 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음

    여기까지만 보면 율법을 안다는 것보다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므로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이어지는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어떻게 논지를 이끌어 가는지 보시면 아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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