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로마서 1장 18-32절 |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났다는 말씀을 먼저 전하는 이유

2023. 5. 28. 11:10성서유니온 매일성경/로마서

목차


    로마서 1:18-32

    찬송가 263장 이 세상 험하고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하고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남을 이야기하는 이유

    로마서 1장 앞 부분에서는 복음이 무엇인지를 다룹니다.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신가에 담겨 있습니다(2-3절). 의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살 수 있습니다(17절). 이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의는 3장 21절로 이어집니다. 바울은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난 현상을 먼저 이야기합니다. 왜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기 전에 하나님의 진노를 먼저 제시할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의 진노를 먼저 이야기해야 믿음이라는 반응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기 의에 기대고 있는 한 그는 하나님의 의에 의탁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나님의 의에 기대어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장 18절부터 3장 20절까지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는 사람이 어떤 형편에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는데 불의로 진리를 막는 모든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나타난다고 합니다. 여기서 경건하지 않음은 하나님을 향하여 바르지 못한 마음과 태도이고 불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바르지 못한 태도입니다. 이어지는 본문은 이런 순서로 나옵니다. 먼저 하나님을 향하여 바르지 못한 마음과 태도는 19-23절에 나옵니다. 요약하자면 모든 만물을 보면 하나님을 알 수 있는데도 하나님을 알지 않기로 하여 우상숭배를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향하여 바르지 못한 마음과 태도입니다. 이것이 바로 경건하지 않음입니다. 이 경건하지 않음은 불의로 나타납니다. 불의는 24절 이하에 나옵니다. 

    사람이 불의를 행하는 이유

    24절 이하에 나오는 불의의 원인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25절). 그 결과 모든 것을 순리가 아니라 역리로 사용합니다. 자기 정욕대로 성윤리도 어그러뜨리고 남자가 남자를 향하여 음욕을 품습니다(27절). 사도 바울이 이것을 이야기하는 문맥을 보시면 이런 현상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에 대한 대적하는 마음 거꾸로 바꾸려는 마음이 작용하여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대적하는 것, 즉 경건하지 않은 것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지점이 성윤리의 어그러짐이라는 것입니다. 대대로 우상숭배는 음행과 함께 나타났는데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을 바꾸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25절). 

    불의의 목록들

    29절 이하에서는 불의 안에 들어있는 모든 문제를 나열합니다.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함,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함, 수군수군함, 비방함, 하나님께서 미워하심, 능욕함, 교만함, 자랑함, 악을 도모함, 부모를 거역함, 우매함, 배약함, 무정함, 무자비함입니다. 이런 특징을 가진 사람들은 이미 하나님의 진노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셨기 때문입니다(28절).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났다는 말씀을 먼저 전하는 이유

    하나님의 진노의 특징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두심

    이 본문에서 하나님의 진노의 특징은 내버려두심입니다. 내버려두셨다는 말이 세 번 등장합니다. 첫 번째는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24절)" 이렇게 나옵니다. 사람이 마음의 정욕대로 마음대로 행할 수 있다고 할 때, 보통 사람들은 마음대로 살 수 있으니 좋겠다는 반응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좋지 않은 것입니다. 정욕대로 행하는 것은 그가 능력이 있거나 복을 받아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그에게 임했기 때문에 그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그가 정욕대로 행하는 것은 더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러운 것을 더러운 줄도 모르고 행하므로 그는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심

    두 번째는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26절)" 이렇게 나옵니다. 성경은 사람이 수치를 모르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나의 취향과 선택의 문제라고 하면서 내가 동성을 좋아하니 존중하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성경은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은 결과라고 하는 것입니다.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심

    세 번째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28절)"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이 합당하지 못한 일, 예를 들어서 분쟁이나 사기나 수군수군하는 것이나 비방하는 것을 행하는 이유는 그들이 상실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마음이 하나님으로 충만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하니까 자꾸 분쟁을 일으키고 수군수군하면서 남을 비방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 사람을 만들고 나름대로 마음을 채우려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탐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으로 채워져야 할 마음에 하나님께서 안 계시니 무엇이든지 욕심을 부리는 것입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하늘로부터 나타남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는 현상은 이렇게 보편적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18절에서는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나타난다고 합니다. 칼빈은 이에 대해서 인간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편만성을 이야기합니다. 곧 온 인류 중에서 한 사람도 이 진노 아래 있지 않은 자가 없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이 말씀은 어떤 하나의 죄를 꼬집는 말씀이 아닙니다. 기독교계에서 동성애를 반대할 때 자주 인용하는 본문이 로마서 1장의 오늘 본문입니다. 하지만 문맥을 살펴보면 이 본문은 동성애만 문제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본문이 아닙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 사람이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는 것, 그 경건하지 않음이 문제이고 그 문제로 모든 불의가 나타난다, 그 모든 불의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해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바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기 나오는 불의의 목록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자기의 의를 의지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를 그렇게 인도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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