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7. 08:23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누가복음
목차
누가복음 15:1-10
찬송가 297장 양 아흔아홉 마리는
제자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갔습니다(14:25). 함께 갔지만 자기들이 어디로 가는지 몰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가는 길이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14:27).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은 모든 것을 버리고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신 길입니다(14:26). 십자가를 지러 가시는 길입니다(14:27). 모든 소유를 버리신 길입니다(14:33).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 이렇게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따라갈 때 자기 힘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성령 충만하여 그렇게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고 따릅니다. 그 때는 열두 제자도 알지 못했지만 나중에 성령께서 강림하시고 나서 그들은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비로소 그들은 알고 따랐습니다. 우리는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구시고 무엇을 행하셨는지 압니다. 당시 수많은 무리는 모르고 따랐지만 우리는 알고 따릅니다.
잃은 양의 비유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예수님께서는 세리외 죄인들이 가까이 오도록 하셨습니다(1절). 그렇게 하신 것은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는 것이 하늘에서 큰 기쁨이 되기 때문입니다(7절). 세리와 죄인을 영접하시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예수님을 보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수군거렸습니다(2절). 그들의 종교는 정죄하는 종교였습니다. 하지만 참된 종교는 정죄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오히려 죄인을 부르고 영접하는 종교입니다.
누구나 죄인일 때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받아주시고 회개시키십니다. 회개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예수님께 나아갔다고 하는 것도 알고 보면 거꾸로입니다. 내가 예수님께 나아간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나를 찾아내신 것입니다(4절). 무리에서 이탈해서 길을 잃었던 양 같은 나를 예수님께서 친히 찾아내셔서 어깨에 메시고 집으로 돌아오신 것입니다(5-6절). 그렇게 해서 아버지께로 인도되어 온 것이지 내가 깨닫고 돌이켜서 예수님께 나아온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저 죄인이었을 뿐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우리를 찾아내어 어깨에 메시고 집으로 돌아오신 주님께서는 잔치를 베푸십니다(6절). 잔치를 베푸시는 이유는 잃은 양을 찾은 기쁨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불러 구원하시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세리와 죄인들은 예수님께 온전히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런 일은 지금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교회는 복음을 전할 때 이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는 회개한 사람이 오는 곳이 아니고 죄인이 와서 복음을 듣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드라크마 비유
8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9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잃은 양을 찾은 비유에 이어서 잃은 동전을 찾은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당시 한 드라크마는 노동자의 하루치 임금에 해당했습니다. 각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하면 5-10만 원 정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생각보다 큰 금액입니다. 한 여인이 있는데 그는 열 드라크마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열이라는 숫자는 하나의 단위를 이루는 숫자입니다. 앞에서도 양 백마리라고 했는데 백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이나 열은 충만한 수를 뜻합니다. 이 수에서 하나가 비는 것은 그것을 가진 사람의 입장에서 하나만 비는 느낌이 아닙니다. 완전한 것이 불완전해진 느낌입니다.
열 드라크마에서 하나를 잃어버린 여인은 집을 쓸면서 부지런히 찾았습니다. 이 동전은 움직일 수 없습니다. 마치 죄인이 스스로 깨닫고 회개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이 찾아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찾으셔셔 구원하시고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여인은 동전을 찾고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잔치를 베푼 값이 동전의 값어치보다 더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잔치를 베푼 것은 동전이 열이 모였다는 즐거움 때문입니다. 지출이 한 드라크마보다 많아도 괜찮은 것은 그 여인에게 열 개의 드라크마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 하나님께서는 하나라도 잃어버려지지 않도록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잃었다가 찾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로 인해서 하늘에 기쁨이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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