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8. 06:28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누가복음
목차
누가복음 15:11-32
찬송가 278장 여러 해 동안 주 떠나
자기 힘으로는 예수님을 따를 수 없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고 계시는 중입니다. 그 길을 함께 가는 수많은 무리가 있었습니다(14:25). 그들은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몰랐습니다. 그들 중 아무도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따랐던 베드로도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랬던 제자들은 나중에 성령 충만을 받고 순교의 자리에까지 나아갔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성령님의 은혜로 되는 일입니다. 자기 부인과 자기 죽음의 연속인 이 길은 성령님의 은혜가 아니면 갈 수 없습니다.
내가 따르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나를 찾아내신 것임
자기 힘으로 예수님을 따를 수 있다고 생각한 수많은 무리에게 예수님께서는 그 길은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이 길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갈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사실 내가 스스로 예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내가 죄인인 줄도 모르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은 그것을 말씀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따라나선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잃어버린 양, 잃어버린 동전이었던 우리를 찾아오신 것입니다(15:1-10). 잃어버려져서 길을 잃고 방황하고 두려움에 떨던 양과 같은 우리를 예수님께서 찾아내셔서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15:5-6). 이어지는 말씀은 그러한 우리가 잃어버렸던 아들이라고 하십니다(11-32절).
좋으신 아버지의 비유
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11절). 그 중 둘째는 아버지께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하고 집을 나갔습니다(12절). 아버지가 살아계시는데 유산을 달라는 것은 아버지를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둘째는 아버지를 업신여기고 자기 뜻대로 살고자 했습니다. 자기 뜻대로 살려면 그냥 나가면 되는데 아버지의 재산을 받아서 나갔습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처지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를 업신 여겼습니다. 죄를 지어 아버지께 반역을 범했습니다. 그랬으면 자기의 것으로만 살아야 하는데 사실 이 땅에 아버지의 것이 아닌 것은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 사는 줄 알지만 다 아버지께 받아서 사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업신여기면서도 아버지의 재산은 꼬박꼬박 탕진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다 날렸습니다(14절). 그 때 마침 그 땅에 크게 흉년이 들었고 그는 궁핍해졌습니다. 심히 궁핍해진 그는 돼지를 쳤습니다(15절). 유대인은 돼지고기를 안 먹습니다. 유대인에게 돼지는 가축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돼지를 쳤다는 것은 그가 그 땅에서 아버지와 완전히 상관 없는 사람처럼 되었다는 뜻입니다. 아버지에게서 떠나서 심히 비천해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유대인이 멸시하는 이방인의 종이 됨과 동시에 돼지의 종이 되었다는 것이니 저 바닥에 바닥까지 떨어진 것입니다.
더 비참한 것은 그가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를 먹고자 했으나 주는 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16절). 돼지는 잘 먹는데 정작 돼지를 치는 자기는 먹지 못했던 것입니다. 쥐엄 열매는 쥐엄나무(Carob tree, 히브리어: 하루브, 영어: carob)의 열매를 가리킵니다. 쥐엄나무는 이스라엘, 키프로스, 터키 등의 지중해 지역에서 흔히 자라는 상록수로, 콩과(Leguminosae)에 속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쥐엄 열매는 주로 가난한 사람들의 구황작물이나 동물 사료로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쥐엄나무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하루브는 칼을 뜻하는 헤레브와 발음이 비슷해서 쥐엄열매를 먹는 것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자기의 비참함을 깨달음
둘째 아들은 쥐엄 열매도 먹지 못하는 자기의 처지가 얼마나 비참한지를 비로소 깨닫습니다. 그렇게 비천하고 곤궁한 상태에 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아버지가 생각이 났습니다.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17절)" 히브리인에게 품꾼은 종보다 못한 사람입니다. 주인은 종을 먹일 의무가 있었습니다. 반면 품꾼은 종은 아니었지만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사람으로 일거리가 없으면 굶는 사람입니다. 그런 품꾼마저 아버지과 관련되어 일을 하면 양식에 풍족했습니다. 그만큼 아버지는 풍족하고 너그러운 사람이었습니다. 아들은 그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돌아감
깨달은 둘째는 아버지에게 돌아갑니다. 아버지는 날마다 아들을 기다린 것 같습니다. 아들이 아직 저 멀리 있는데 아들인 줄 알아보고 달려와서 그를 안고 입을 맞추었기 때문입니다(20절). 아들은 자기를 품꾼의 하나로 보아 달라고 하는데(21절, 다른 사본) 아버지는 그 아들을 아들로 대우했습니다(22-24절). 아무리 비천해졌어도 아들은 아들이었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이토록 좋으신 분이십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첫째 아들
여기에서 첫째 아들이 등장합니다. 첫째 아들은 아버지께서 자기 동생을 받아주신 것을 보고 분노합니다(28절). 그는 아버지를 원망합니다(29-30절). 그에게는 동생에 대한 사랑이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애타는 마음에 대한 공감도 없었습니다. 그저 자기가 한 일과 자기의 공로만 생각했습니다.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을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29절)"
아버지는 그 아들에게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것이로되(31절)"라고 말합니다. 첫째는 아버지와 함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는 둘째가 깨달은 것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둘째는 아버지와 함께 있다는 것과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첫째는 그것을 항상 누리고 있으면서도 자기 생각만 했습니다. 기쁨과 감사가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부재를 겪고나서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로 하나님께서 잃어버렸던 우리를 찾으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셨습니다. 잃어버린 양이 목자의 부재를 겪으며 심히 두려워했던 것처럼 잃어버린 아들은 아버지의 부재를 겪으면서 비참을 맛보았습니다. 비참함의 심연을 맛보고나서 비로소 아버지께서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가를 알았습니다. 그것을 깨달은 아들은 거기에서 아버지께 돌이켰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돌이킨 그 아들을 열렬히 환영하시면서 받아주셨습니다. 반면 아버지의 부재를 맛보지 않은 첫째 아들은 아버지 옆에 있으면서도 아버지 없이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으면서 온통 자기 생각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는 아버지께 온전히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의 위험성
많은 주석가들이 해석하는 대로 첫째 아들은 유대인을, 둘째 아들은 이방인을 뜻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교회 안에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첫째 아들은 모든 것을 다 지키면서 아버지의 은총을 받고 있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자기밖에는 없는 사람입니다. 반면 둘째 아들은 죄를 짓고 넘어지지만 그 모든 과정에서 아버지의 좋으심을 확실이 알고 날마다 아버지께로 돌이키는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은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15:2)"라고 수군대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그리면서 시작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가 진정 잃어버려졌다가 찾은 사람인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세리와 죄인들이 바로 그들입니다(15:1). 유대인이지만 공공연히 죄인으로 불리는 이들이 바로 누구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좋으신 분이심을 알고 사랑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종교적으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것, 다른 말로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처럼 위험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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