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누가복음 16장 14-31절 | 옳지 않은 청지기와 부자와 나사로

2025. 5. 10. 09:28성서유니온 매일성경/누가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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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누가복음 16:14-31

    찬송가 503장 세상 모두 사랑 없어


    옳지 않은 청지기 비유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고 계십니다. 가시면서 여러 가지 말씀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16장에서는 옳지 않은 청지기가 주인에게 칭찬을 받는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이 비유는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이 청지기가 주인에게 칭찬을 받은 이유는 지혜롭기 때문이었습니다(16:8). 이 청지기의 지혜는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는 지혜였습니다(16:9). 재물은 없어지지만 친구관계는 없어지지 않습니다(16:9). 재물은 지극히 작은 것이지만 친구관계는 큰 것입니다. 재물은 남의 것이지만 친구관계는 우리의 것입니다(16:10-11).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친구 관계를 맺으시고 우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중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16:13).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이러한 가르침을 듣고 비웃었습니다. 그들이 비웃은 이유는 돈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14절). 

    예수님의 말씀을 비웃는 바리새인들

    14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1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17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가 없어짐이 쉬우리라
    18   무릇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무릇 버림당한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했습니다. 이들은 돈에 관해서는 자기들이 예수님보다 낫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면 돈이 따라온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비유에 나오는 주인이 어리석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여튼 이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그 뜻이 무엇일까 생각하지 않고 판단부터 했습니다. 이 말씀은 별로 들을만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판단은 섣부른 판단이었습니다. 

    돈이 많으면 

    비웃는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15절). 바리새인들이 사람 중에 높임을 받은 이유는 그들이 율법을 잘 지키고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 복을 받아서 부자로 사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부자는 사람들의 추앙을 받습니다. 다들 부자가 되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 미움을 받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뜻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하나님 나라와 복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 그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16절). 율법과 선지자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과 선지자로 자기들이 스스로 옳다고 하면서 하나님 나라 안에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미움을 받는 사람들로 하나님 나라 밖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히려 부자가 아닌 사람, 하나님께 미움을 받는 것 같은 사람, 가난한 사람, 다들 죄인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 나라에 침입해 들어갔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침입을 허용하는 나라입니다. 모든 나라는 침입하지 못하게 방어를 철저히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어 그 안으로 들어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나라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율법과 선지자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시대가 저물었다고 해서(16절 상) 그 효력이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17절). 오히려 율법은 지금도 온전히 효력을 발휘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는 율법의 의를 이루었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고 예수님 안에서 이루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모든 의를 이루시고 우리의 것으로 주셨습니다. 이것이 또한 복음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지 않으면

    하지만 예수님 안에 있지 않은 사람들은 다 율법의 모든 의를 이룰 의무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비웃는 바리새인들은 에수님 안에 있지 않기 때문에 율법 전부를 항상 완벽하게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가장 현저한 죄는 바로 간음이었습니다(18절). 그들은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들기도 하고 버림 당한 여자에게 장가들기도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부자는 이혼도 잘하고 재혼도 잘합니다. 돈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합법을 가장하지만 이혼은 엄연히 율법에 저촉이 되는 불법입니다. 문제는 예수님 안에 있지 않으면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죄도 문제되지 않습니다. 정죄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마구 이혼해도 되느냐 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죄를 미워하시는 것처럼 죄를 미워합니다. 하여튼 바리새인들은 전혀 옳지 못한데도 스스로 옳다고 하고 있었습니다(15, 18절). 

    부자와 나사로

    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20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26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27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29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31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해당하는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비유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입니다. 여기서 부자는 자색 옷을 입었다고 하는데(19절) 당시 자색 옷은 상당히 비싼 사치품이었습니다. 지금 명품이나 스포츠카 못지 않은 귀중품이었던 것입니다. 자색으로 옷을 물들이려면 두로에서 나오는 뿔고둥에서 염료를 추출해야 하는데 그 염료는 굉장히 소량만 추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염료 자체가 굉장히 비쌌습니다. 역시 이 부자는 고운 베옷을 입어서 몸을 편하게 했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겼습니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 부자를 추앙했을 것입니다. 

    버려진 채

    그런데 그 집 문앞에는 나사로라고 하는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버려져 있었습니다(20절). 나사로는 마치 하나님께도 버려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부자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사람으로 보였고 나사로는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신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도 그 거지 나사로를 버렸습니다. 그는 말 그대로 "버려진"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그 부자도 나사로를 버렸다는 것입니다. 부자는 얼마든지 나사로와 친구 관계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자기가 가진 불의의 재물로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 수 있었습니다(16:9).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재물이 없어질 때에

    역시나 재물이 없어질 때가 왔습니다. 부자가 죽은 것입니다(22절). 나사로가 먼저 죽고 나중에 부자가 죽었습니다. 그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부자는 장수의 복을 받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나사로는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 품에 들어갔지만 부자는 음부에 들어가서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22-23절). 이 땅에서 나사로는 버려진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버리시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에게 버림 당한 나사로는 하나님으로부터는 한 순간도 버림 당한 적이 없었습니다. 반면 사람들의 추앙을 받았던 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한 상태였습니다. 그는 생전에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걸 알았다면 그는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내버려두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이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앞에 나온 비유에서 불의한 청지기는 정말 큰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에게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16:2)"라는 경고가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반면 이 부자는 진노를 당한 사람입니다. 철저히 버려짐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부자로 살면서 자기가 죽을 줄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유기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이 재물이 없어질 날이 온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재물이 없어질 날이 온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 사람은 어떻게 하면 영주할 처소로 들어갈 수 있을까를 고민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비웃은 바리새인도 재물이 없어질 때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게다가 이들은 모세와 선지자의 말도 듣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29-31절). 부자가 아브라함을 안다는 것은 그도 모세와 선지자를 안다는 것입니다. 알았지만 그는 그 말씀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긍휼을 입을 수 없는 곳으로,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서 그 어떤 기도도 닿지 않는 곳으로 들어갔습니다(26절). 

    믿는 사람의 반응

    이 말씀은 앞에 불의한 청지기 비유와 바리새인들이 비웃은 것과 연결됩니다. 믿는 사람은 이 말씀을 경고로 받아들이고 두려워합니다. 재물이 없어질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어떻게 하면 복음을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침노해 들어갈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집 앞에 있는 나사로를 버리지 않고 그와 친구가 되어 그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은총이 자기에게도 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앞에 불의한 청지기에 나오는 주인은 빚을 탕감 받은 사람들에게 도로 빚을 부과하지 않을 사람입니다. 그 청지기는 그 은총에 자기도 들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빚을 탕감해 준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이 말씀ㅇ로 경고를 받아 이와 같은 행동을 할 것입니다. 절대 바리새인들처럼 이 말씀을 비웃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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