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누가복음 9장 51-62절 |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2025. 4. 21. 16:06성서유니온 매일성경/누가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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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누가복음 9:51-62

    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별세할 것을 말씀하심

    예수님께서는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더불어 별세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9:31). 산에서 내려 오신 다음에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9:41).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세대를 한탄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다 하나님께 패역하였음을 뜻합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얼마나 패역한지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을 죽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길로 가실 것을 아셨고 또 원하셨습니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굳게 결심하셨다고 기록합니다(51절). 예수님께서는 굳게 결심하시고 죽으러 가셨는데 그 길은 반역하는 사람을 구원하는 길이었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일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로 갈 길을 여시는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을 항햐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52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53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55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56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면서 사마리아를 통과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것을 알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도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패역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당장 눈앞에 있는 정치 논리에 따라서 행동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지 몰랐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자기들을 구원하실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렇게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죄인인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롬 5:8). 

     

    불로 심판하려고 하는 악한 마음

    야고보와 요한은 불로 저들을 심판하는 것에 대해서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54절). 그들은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된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영광스러우신 분이라는 것,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결과는 의기양양해져서 사람들을 죽이자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모습입니다. 자기가 조금만 더 우월하다 싶으면 다른 사람을 자기 아래로 두고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심지어 불로 다 태워죽이려고 했습니다. 자기들은 하나님의 아들과 가깝다는 것입니다. 명분은 어디 감히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 죄를 물어서 불이 내리게 해서 죽이자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은 모든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 다르지 않습니다. 

    꾸짖으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돌아보시며 꾸짖으셨습니다. 특별히 돌아보셨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그들의 말을 그냥 가벼이 넘기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불로 심판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고 구원하려고 오셨습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앞으로 재림 전까지는 구원의 시대입니다. 아무리 패역한 사람이라도 불로 심판하는 시대가 아니라 은혜로 구원하는 시대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식으로 심판하지 않으시는데 누가 다른 사람을 그렇게 심판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많은 경우 사람이 사람을 심판합니다. 이런 것들은 예수님께 꾸짖음을 받을 행동들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는 세 사람

    57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6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57-62절에는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첫째 사람은 예수님께 와서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라고 했습니다(57절).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는데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58절). 이 말씀은 패역한 세대 가운데 계실 곳이 없으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안식하지 못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땅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죄를 다 멸하셔야만 했습니다. 그 때에야 진정한 안식을 누리실 수 있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네가 당장은 나를 따르겠다고 하나 네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를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은 다 예수님을 따릅니다. 따르는데 하늘 성소에까지 따라 들어갑니다. 따르겠다고 한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곳에 당도하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둘째 사람은 예수님께서 그를 먼저 부르셨습니다. "나를 따르라(59절)" 그랬더니 그가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기는 할 것인데 먼저 급한 일을 정리하고 가겠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중한 질병에 걸리셨는지 아니면 돌아가셨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사람에게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거나 장례를 치르는 것이 더 중한 일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라고 하셨습니다(60절). 이 말씀은 좀 어렵습니다. 아버지께서 이미 죽은 상태라서 죽은 자라고 하셨는지 아니면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라서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라고 하셨는지 불분명합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장사지낸다는 것은 죽음과 관련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반면 예수님을 따르는 일은 하나님 나라와 관련된 일입니다. 이 일은 죽음이라는 위중한 일보다 훨씬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구약에서도 제사장은 시체를 만져서 더려워지면 안 되었습니다(레 21:1). 특별히 직무 중인 제사장은 그의 부모로 말미암아서도 더러워지면 안 되었습니다(레 21:11-12). 예수님께서 이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셨을 때에는 그 사람에게 제사장과도 같은 엄중한 직무가 부여된 것입니다. 이 직무는 죽은 자를 장사지내는 것으로 더러워지거나 지체되면 안 되는 직무였던 것입니다. 그만큼 중하디 중한 직무인 것입니다.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록하소서

    셋째 사람은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라고 했습니다(61절). 이 사람은 가족과 작별하는 일을 예수님을 따라가는 일보다 중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주의 일을 한다고 해도 인간적인 도리는 다 하고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62절). 쟁기질을 할 때에는 앞을 보면서 곧게 나아가야 합니다. 자꾸 뒤를 둘아보면 이랑과 고랑을 곧게 만들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는 것은 손에 이미 쟁기를 잡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쟁기를 잡고서 뒤를 돌아보면 쟁기질을 할 수가 없듯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고서 다른 일에 마음을 쓰고 있으면 하나님 나라를 전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나라를 인정하고 거기로 곧게 나아가면서 누리면서 전하는 사람이 바로 잘 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전한다고 하면서 이것 저것 신경쓰는 사람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고 있는 사람과 같습니다. 

    역사상 단 한 번인 사건 현장에서

    당시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서 거기로 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로 승천하시기 위해서 가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 길은 역사 가운데 오직 단 한 번 있었던 일입니다. 이 일이 역사 가운데 단 한 번 있었던 일이였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면 다 이해가 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머리 둘 곳을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것이 아닙니다(58절). 또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인류 역사상 단 한 번 있는 일로서 장례식으로 그것을 놓칠 수 없는 중한 일입니다(59절). 마지막으로 가족과 작별한다고 예수님으로 인해서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고 경험하고 증인이 될 기회를 놓친다면 그것처럼 한탄스러운 일은 없습니다. 당시 강력하게 역사하고 있던 하나님 나라에는 합당하지 않은 일입니다(62절).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음

    이 세 사람의 경우가 일반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습니다. 아버지의 장례는 치러야 합니다. 가족과 작별도 해야 합니다. 본문은 그런 것을 금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이 말씀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가 승천하시는 이 역사상 단 한 번인 놀라운 현장에 참여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예수님께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잘 보고 우리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 나라가 현저하게 역사하실 때 위에 나온 세 사람과 같이 모든 우선 순위를 예수님께 두어야 할 때가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 때는 특수한 때입니다. 그런데 이런 특수한 것을 가지고 성도들을 겁박해서는 안 됩니다. 성도들의 일반 생활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평상시에는 일반 생활에서 작은 것을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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