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8. 07:00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디모데전서
목차
디모데전서 5:1-16
찬송가 218장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교회를 가정처럼
사도 바울은 교회를 위하여 디모데에게 여러 가지를 권하고 있습니다(3:15). 4장에서는 디모데에게 형제들을 깨우칠 것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4:6). 그러면서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쳤습니다(4:6-16). 이제 5장에서는 목회자로서 교회 성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가르칩니다. 여기에서 원리는 교회를 가정처럼 다스리라는 것입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디모데전서 주석, 571쪽).
이것은 교역자가 각층 교인들에 대하여 취할 방침을 가르친다. 그 내용은 교역자가 교회를 가정으로 알고 행하라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원리이다(막 3:33-35). 그러므로 여기 이른 바 "같이(ὡς)"란 말은 '유사한 모양'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실상을 포함한 동일성을 의미하기도 한다(Thayer's Lexicon, 1962, p. 681). 곧, 영적(靈的)으로 실상을 갖춘 부모 형제 자매란 뜻이다. 교역자는 교우들과 이런 가까운 영적 교통을 가져야 그들을 잘 돕게 된다. 교역자가 정신적으로 그들과 멀면 그들의 문제를 취급하기도 어렵다. 이 점에 있어서 젊은 여자들에 대한 경고는 좀 특수하다. 그들에 대한 가까운 교통은 "온전히 깨끗함(ἐν πάσῃ ἁγνείᾳ)"으로(2절) 성립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에 대한 교역자의 영적 책임감에서 발생한다. 교역자는 그들의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한다(히 13:17).
늙은이 젊은이
1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바울은 늙은이를 꾸짖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잘못을 범한 사람이 노인이라면 그 잘못을 묵과하고 넘어가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고 나이가 많기 때문에 그들을 존경하라는 것입니다(박윤선, 디모데전서 주석, 571쪽). 존경할 때에는 마치 아버지를 존경하듯이 하라고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가족을 이룹니다.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해야 합니다. 마치 형제와 같이 친밀한 관계를 가지라는 뜻입니다. 그런 관계 안에 있을 때에는 영적 권면이 사랑 안에서 잘 이루어집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청년들은 엄한 지도자보다 애정과 체휼이 깊은 융통성 있는 교역자를 기뻐한다"라고 주석합니다(박윤선, 디모데전서 주석, 572쪽).
나이가 많아도 자녀들과 친구 같은 관계를 잘 맺는 어른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를 어른으로 잘 대접해 주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사랑과 존중이 함께 있습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어린 사람을 이렇게 대하는 것을 잘 생각해 보고 교역자는 젊은이에 대해서 더욱 이러한 친밀한 관계, 형제 같은 관계로 대할 줄 알아야 합니다.
늙은 여자 젊은 여자
2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같은 원리가 2절에도 적용됩니다. 교역자는 늙은 여자를 대할 때 어머니에게 하듯 해야 합니다. 실제로 신앙과 연륜이 깊은 나이 많으신 권사님들은 젊은 교역자를 아들처럼 아끼고 보살펴 줍니다. 교역자는 그것에 감사하면서 마치 어머니를 대하듯이 친밀하고도 공손하게 대해야 합니다.
젊은 여자를 대할 때에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대해야 합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디모데전서 주석, 572쪽).
청년 교역자는 젊은 여자들을 대함에 있어서 극력 조심하여 불결한 혐의(嫌疑)를 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된다. 그가 비록 불결한 행위는 없었다 하더라도 그런 혐의를 받도록 행한 바 있으면, 전도자의 신분에 손해를 받기 쉽다. 그러므로 그는 젊은 여자를 진정한 영적 자매로 인식하는 정결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도록 힘써야 된다.
교회의 구성원들은 함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로서 영적인 가족입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마 12:49상-50). 또한 바울은 디모데를 "참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으로 아들일 뿐만 아니라 특수한 영적인 관계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전도로 개종(改宗)했습니다(행 16:1-2; 딤전 1:2). 또한 디모데는 바울에게 영적으로 양육을 받았습니다(행 16:3). 디모데는 선교여행과 복음 사역에 있어서 바울을 따라다니면서 아버지처럼 수종들었습니다(빌 2:22). 이러한 부자(父子)관계는 일반적인 관계보다는 좀더 특수한 관계입니다(박윤선, 디모데전서 주석, 573쪽).
참 과부인 과부
3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
바울은 "참 과부인 과부"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 과부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하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5절). 또한 나이는 육십이 넘고 한 남편의 아내였다가 혼자가 된 사람으로서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는 사람입니다(9-10절). 교역자는 이러한 과부를 존대해야 합니다. 여기서 존대하라는 것은 박윤선 목사님에 의하면 교회가 그를 물질로도 도우라는 뜻입니다(박윤선, 디모데전서 주석, 573쪽).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은 첨언을 합니다.
그런 사람을 공경하며 부양함은 단순한 육적 구제만 아니라, 도리어 교회의 영적 부흥을 증진시킨다. 교회의 사업 목표는 언제나 영적 유익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맞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사회사업 단체나 복지 단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이고 더 나아가서 그것이 교회의 영적 부흥을 증진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돌봄을 받는 과부는 10절에 나온 대로 나그네를 대접하고 성도들의 발을 씻고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합니다. 그 결과 교회는 영적으로 더욱 부흥하게 됩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영광이 됩니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4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과부가 집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4절이 그것을 말씀합니다.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가 있다면 그들로 하여금 먼저 자기의 집에서 경건하기를 배우개 하라고 합니다. 우리 말로는 "효를 행하여"라고 하는데 원어로는 "경건하기(εὐσεβεῖν)"라고 나옵니다. 경건을 실천하는데 어디에서 실천하냐면 먼저 자기의 집에서 실천해야 한다고 합니다. 교역자는 자녀들에게 그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유교의 원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효를 행해라, 부모님에게 은혜를 받았으니 그 은혜를 갚으라, 이런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가정에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지 않겠느냐, 이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보답해야 하는 이유는 내가 먼저 은혜를 받았다는 일반적인 원리 때문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에 부모에게 보답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 사람으로서 유교 사상이 우리 사상체계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꾸 성경의 가르침을 유교와 혼동합니다. 성경은 유교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부모 공경은 사람 수준의 것이 아니고 신적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5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라고 하는데 여기서 외롭다라는 것은 감정적으로 외롭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μονόω)은 "혼자 산다"라는 뜻입니다. 혼자 산다는 것은 많은 시간을 홀로 보낸다는 것입니다. 많은 시간을 홀로 보낼 때 참 과부는 하나님을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소망하여 간구와 기도를 계속합니다(προσμένει). 우리 말로는 항상이라고 번역된 말의 원어는 프로스메노(προσμένω)입니다. 이 말은 향한다(πρός)와 거한다(μένω)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므로 참 과부는 주야로 간구와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거히고 있는 것입니다.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6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반면 참 과부가 아닌 사람을 가리켜서 바울은 "향락을 좋아하는 자"라고 칭합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디모데전서 주석, 574쪽).
여기서 저자는 "향락을 좋아하는" 과부에 대하여 과부란 말도 쓰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 여자는 호화로운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죽었다"라는 말은 유익 없는 존재라는 뜻이라고 하나, 5절의 "하나님께 소망을 둔 자"와 대조로 나온 말인 만큼 영적으로 죽었다는 뜻이다(Ridderbos). 그러므로 여기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상관 없는 자'란 뜻이다. 그는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을 사랑함보다 더하는 자이다. 죽지 아니함이 하나님께만 있다고 하였는데(6:16), 그 여자는 하나님을 떠났으니 죽은 자이다. 눅 20:38에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라고 한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서만 영적으로 산다는 뜻이다.
이것은 모든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살지 않는 사람은 살았으나 죽은 사람입니다.
그들로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라
7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라
7절에서 말하는 이것은 이것들(ταῦτα)입니다. 이것들은 4절에 참 과부의 자녀나 손자들에게 명할 것들입니다. 즉 자기 집에서 먼저 경건을 행할 것과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이것들을 명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로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디모데전서 주석, 574쪽).
교역자는 목전에 발생한 죄악만 반대할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경고할 책임도 지고 있다. 염려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시키지 않으면 감당하기 어려운 후환이 오게 된다.
맞는 말씀입니다. 교역자가 이렇게 할 수 있으려면 1-2절 말씀을 잘 지켜야 합니다. 교회 지체들과 친밀해야 하고 그들의 사정을 항상 돌보고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가 일어나기 전에 먼저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교역자가 평소에 양무리를 사랑하고 돌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교역자는 양무리의 목자로서 다윗과 같이 기름부음 받은 왕과 같이 양들을 지켜야 합니다. 양들을 지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평소에 그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항상 돌아보는 것입니다.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교역자가 평소에 과부의 자녀나 손자들에게 명하지 않을 때에, 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큰 일은 그들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는 책망을 받는 것입니다. 교역자는 그들을 책망하기 이전에 먼저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이 교역자의 책임입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돌보아야 할 가족, 특별히 과부가 된 어머니나 할머니를 돌보지 않는 것은 불신자보다 악한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자기 가족은 잘 돌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기본적으로 주신 심성입니다. 양심으로 그 마음에 새겨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다고 하면서 그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은 믿음을 배반한 사람과 같습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도덕이나 윤리 수준에 있어서 일반인보다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것이 현대 교회의 큰 병폐입니다. 교회는 윤리적으로 더욱 고차원적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고 믿지 않는 사람도 어기지 않는 일반 법을 어기면서도 뻔뻔하게 자기는 잘못이 없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믿음을 배반한 사람이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는 책망을 받게 됩니다. 교회는 이런 것에 항상 주의해야 합니다.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
9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나이가 육십이 덜 되지 아니하고 한 남편의 아내였던 자로서
10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라야 할 것이요
당시 교회에는 과부 명부가 있었습니다. 이 명부는 교회에서 특별하게 돌보기 위한 명부입니다. 이 명부에 올라가는 사람은 참 과부인 과부(3절)입니다. 교회가 이렇게 과부를 명부에 올리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영적 부흥을 위해서입니다. 명부에 올라갈 과부는 먼저 나이가 육십이 넘어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디모데전서 주석, 575쪽).
고령(高齡)이 아닌 자로서 교회의 부양을 받음이 불합리한 이유는, 연천(年淺)한 자는 아직 자력(自力)으로 생활할 수 있는 까닭이다. "한 남편의 아내"란 말은 전 남편을 여의고 재가(再嫁)한 자를 제외하는 규정이 아니고, 정절(貞節)이 있어 본 남편의 생시(生時)에 다른 남자와 관계한 일이 없는 자를 가리킨다.
과부로 명부에 올릴 사람은 선한 행실에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 증거들의 예가 뒤에 따라 나옵니다. 그것은 먼저 자녀를 양육하였다는 것입니다. 박윤선 목사님에 의하면 이 자녀 양육은 자기 자녀만이 아니고 남의 자녀도 길러주는 것을 포함한다고 합니다(박윤선, 디모데전서 주석, 575쪽). 그 다음으로는 나그네를 대접하였다는 것입니다(ξενοδοχέω). 이 말은 나그네를 집에 잘 영접했다는 뜻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성도들의 발을 씼겼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낮은 자리에서 성도들을 섬겼다는 뜻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했다는 것입니다. 구제했다는 것은 환난 당한 자들을 돌보아서 그 환난을 경감시켜 주었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물질적인 원조뿐만 아니라 정서적, 영적인 원조를 제공했다는 뜻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모든 선한 일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어떤 부담스러운 일이 있는 곳에 이 사람도 항상 거기에 있어서 그 일을 선하게 감당했다는 뜻입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위의 모든 조건으로 보아서 "참 과부"의 숫자는 제한적이었다고 주석합니다(박윤선, 디모데전서 주석, 575쪽).
그것이 이렇게 제한되도록 하신 하나님의 뜻은, 1) 교회로 하여금 참과부로 인하여 영적 유익을 받도록 하려는 것이며, 2) 교회의 영적 이미지가 흐려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만일 교회가 육적 구제 기관으로 지나치게 알려지면 사람들이 교회를 향하여 물질적 기대를 앞세우고 영적 기대를 가지지 못하게 된다.
박윤선 목사님의 이 말씀도 현대 교회가 깊이 주의해서 따라야 하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육적 구제 기관으로 알려지는 것에 극히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참 과부 명부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외부에는 알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젊은 과부
11 젊은 과부는 올리지 말지니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 가고자 함이니
12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정죄를 받느니라
바울은 젊은 과부는 참 과부 명부에 올리지 말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 가고자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를 배반한다는 말은 젊은 과부들 중에서 그리스도를 배반하면서까지 시집을 가는 일이 있다는 뜻입니다(박윤선, 디모데전서 주석, 576쪽). 그리스도보다 정욕이 우선한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처음 믿음을" 저버리는 일과 같습니다. 이 말은 처음에 과부가 될 때에 가지고 있었던 그 믿음을 저버렸다는 뜻입니다. 그 믿음은 곧 이제 홀로 되었으니 그리스도만 믿고 의지하겠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겠다(5절)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저버린 사람은 정죄를 받습니다.
게으름과 쓸데없는 말
13 또 그들은 게으름을 익혀 집집으로 돌아 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쓸데없는 말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믿음을 저버리고 정죄를 받는 사람은 정죄를 받음과 동시에 게으름을 배웁니다. 여기 배운다(μανθάνουσιν)는 말은 현재 시제로 쓰였습니다. 그러므로 게으름을 계속해서 배우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게으름은 일을 하지 않음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생각이 없고 무익하고 판단력이 흐리다는 뜻(idle, lazy, thoughtless, unprofitable, injurious)입니다.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만 의미한다면 게으른 사람은 그냥 방에 처박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부지런히 집집마다 돌아다닙니다. 그런데 그렇게 돌아다니는 행동은 생각이 없는 행동이요 판단력이 부족한 행동이요 무익한 행동입니다. 그들은 일을 하지 않고 일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젊은이는 시집 가서
14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 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
15 이미 사탄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도다
그에 대한 처방으로 바울은 젊은이는 시집 가서 아이를 닿고 집을 다스리라고 합니다. 홀로 있어서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의지하지 않고 배반하면 오히려 집집마다 돌아다니고 일만 만들게 되니(13절) 차라리 시집을 가서 아이를 낳고 양육의 부담을 지고 집을 다스리는 부담을 지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부지런히 아이를 양육하고 집을 다스리는 것이 게으르게 있으면서 말을 전하여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주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당시에 그렇게 다니면서 대적, 즉 사탄의 도구로 전락한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15절).
과부 친척이 있거든
16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 주고 교회가 짐지지 않게 하라 이는 참 과부를 도와 주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다면 그 사람이 그를 도와주라고 합니다. 이것은 중요한 원리입니다. 이 말은 남편이 있는 여자가 남편이 없는 여자를 도우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교회가 참 과부를 돕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교회를 생각할 때 교회에게 책임을 지우지 말고 그 짐을 자기가 지라는 뜻입니다.
교회를 향해서 어떤 말을 할 때 이 원리가 아주 중요합니다. 교회가 어떤 이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부담을 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려면 교회를 향해서 함부로 그런 비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는 정말 필요한 일, 즉, 하나님의 영광과 영적인 유익을 위한 일에 힘쓰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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