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8. 22:03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디모데전서
목차
디모데전서 5:17-6:2
찬송가 329장 주 날 불러 이르소서
교회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바울은 디모데가 교역자로서 교회에서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가르쳤습니다. 늙은이와 젊은이(5:1),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5:2)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과부와 그 자녀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도 가르쳐 주었습니다(5:4). 그렇게 하고 길게 교회가 과부를 어떻게 대접하고 지도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었습니다(5:5-16). 교회에 대한 사도 바울의 권면이 계속 이어집니다.
장로들
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17절에는 다스리는 장로들과 가르치는 장로들이 나옵니다. 다스리는 장로들을 교회는 치리장로(治理長老)라고 부릅니다. 현대 교회는 치리장로를 "장로"라고 부릅니다. 가르치는 장로를 가리켜서 교훈장로(敎訓長老)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 장로를 지금은 목사라고 부릅니다. 바울은 이러한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라고 합니다. 이것은 크게 존경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존경은 교회의 물질적 원조가 포함됩니다.
치리 장로
장로는 교회에서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특별히 교역자는 장로와 목사를 존경해야 합니다. 그들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교회를 사랑하여 충성하고 봉사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다스리는 장로는 잘 다스림으로 충성 봉사합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설교합니다(박윤선, 디모데전서 주석, 578쪽).
다스리는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먼저 알 것은 우리는 모두 남을 다스릴 처지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주님의 백성은 주님이 다스리신다. 우리는 다만 이 일에 수종드는 것뿐이다. 이 일을 바로 하려면 몇 가지 덕(德)이 필요하다.
1) 모본이 됨. "다스린다"는 말(προεστῶτες)은 '앞장 선다'는 뜻이니, 이는 모본을 가리킨다. 우리가 모본이 된다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육적(肉的)인 자아를 죽이는 일이요 쳐서 복종시키는 일이다. 이 일을 위하여는 우리의 피나는 노력이 요구된다(히 12:4). 그러나 이 노력에는 그만큼 큰 하늘의 위로도 동반한다.
2) 하나님을 두려워 함. 다스린다는 것(정치)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성립된다. 교회를 다스리는 일은 인간의 지혜로 되는 것이 아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잠 1:7). 인본주의로 다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보시기에 실패한 자이다.
교훈 장로
박윤선 목사님은 교훈 장로, 즉 목사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박윤선, 디모데전서 주석, 578-579쪽).
기독교 교훈이란 것은 성경을 가르침이다. 여기에는 성경 연구와 설교가 있다. 성경을 진실되이 연구하는 설교자에게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이 사실을 알고 해야 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조건이 구비됨을 요구한다.
1) 설교는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께 받아서만 할 수 있는 것이다. 고후 2:17에 말하기를,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설교를 은혜롭게 하려면 성경을 깊이 알아야 한다.
2) 기도를 깊이 하고 나서, 마음이 평안해져야 할 수 있고, 마음이 깨끗해야 할 수 있고, 마음에 사랑이 있어야 할 수 있다.
소와 일꾼
18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사도 바울은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아야 한다는 것(17절)의 근거로 성경을 인용합니다. 성경에는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신명기 25장 4절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9절에서도 똑같이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는 말씀은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입니다(고전 9:10). 박윤선 목사님은 이 말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디모데전서 주석, 579쪽).
이 말씀의 요지는 남의 노동의 가치를 공정하게 평가하여 보수해야 되는 원칙을 가르친다. 일하는 소에도 먹이를 주거든 만물의 영장(靈長)인 인생, 특히 교회를 봉사하는 교역자에게 말할 것이 무엇이랴? 고전 9:9-10 참조.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라는 말씀은 마 10:10에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교역자는 이 말씀을 대하면서 교회를 비판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을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하는 대로 충분히 보상하시는 분이십니다. 더욱 넘치도록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땅에서가 아니라면 오는 세상에서 더욱 넘치도록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교역자는 교인들을 잘 가르칠 의무는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장로에 대한 고발
19 장로에 대한 고발은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
바울은 장로에 대한 고발은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라고 합니다(19절).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디모데전서 주석, 579쪽).
"두세 증인이 없"이 정죄 못하는 것은 구약에 제정된 재판법이다(신 17:6; 마 18:16). 장로는 교회의 중직(重職)이기 때문에 그 직분을 가진 자의 실수는 복음전도에 큰 손해를 끼친다. 그러므로 어떤 장로가 어떤 과실을 범하였다는 풍설이 돌 때에, 교회는 그것을 그대로 믿지 말고 신중히 심사하여 두세 증인의 증거를 기다려야 한다.
두세 증인의 원칙은 예수님의 지상 사역을 기록한 것에도 적용됩니다. 예수님의 지상 사역을 기록할 때에 한 사람이 아니라 세 사람이 기록하여 증언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지상 사역과 십자가와 부활은 사실입니다. 이처럼 어떤 사건의 진위를 판단할 때에는 적어도 두세 사람의 증언을 듣고 참고해야 합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크로스 체크라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주관적으로 사건을 보기 때문에 어떤 객관적인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증언으로는 부족합니다.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
20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 나머지 사람들로 두려워하게 하라
20절은 해석이 여러 가지로 갈립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세 가지 해석을 소개합니다(박윤선, 디모데전서 주석, 579-580쪽).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란 말에 대하여 해석가들의 의견이 서로 다르다. 1) 장로들 중의 범죄자들을 꾸짖으라는 의미라고 함(Dr. C. Bouma). 2) 범죄한 장로들에 국한한 말이 아니고 일반 범죄자들을 가리킨 것이라고 함(Ellicott). 3) 장로를 경솔히 훼방하는 자들을 공석(公席)에서 꾸짖어 훼방되었던 장로의 누명을 벗겨주어야 할 것을 가리킨다고 한다(Calvin).
공적인 꾸짖음은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범하기를 두려워하게 합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할 때에 교회는 권징을 잘 회복해야 합니다.
편견이 없이 불공평하지 않게
21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불공평하게 하지 말며
사도 바울은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을 동원합니다. 이들을 동원하는 것은 미래에 있을 최후의 심판을 생각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디모데전서 주석, 580쪽).
교회는 미래의 최후 심판 장면을 기억하고 치리(治理)를 신중히 해야 되고, 편견 없이 해야 된다. 남의 잘못을 정죄하는 자는 최후의 정죄자 곧, 심판자 앞에서 심문당할 무서운 일이 있다.
교역자는 특별히 교회를 담임하는 위치에 있는 교역자는 이 명령을 깊이 생각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내가 어떤 이를 판단하고 그를 치리할 때에 편견을 가지고 불공평하게 한다면 당장은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을지라도 최후의 심판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그것에 대해서 엄중하게 물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역자는 편견(πρόκριμα)이 없어야 합니다. 편견은 일을 들어보지도 않고 어떤 사안과 사람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즉, 이미 어떤 판단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의 호불호에 따라서 다른 사람을 향하여 이런 판단을 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이 편견입니다. 그런데 이런 편견을 따라서 치리를 베풀게 되면 반드시 억울한 사람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또한 교역자는 불공평(πρόσκλησις)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공평은 천칭거울이 한쪽으로 기울어 있는 상태입니다. 어떤 사안을 판단할 때에 자기의 호불호에 따라서 이미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 판단은 불공평할 수밖에 없습니다. 원칙을 가지고 판단해야지 어떤 선호에 의해서 판단하면 안 됩니다.
모든 판단을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천사들이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택하신 이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교역자가 억울하게 한 그 사람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도 모든 이의 주님이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교역자가 억울하게 한 그 사람을 위해서도 무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또한 천사들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마 18:10)" 그러므로 교역자는 교회를 다스리면서 어느 누구 한 사람에게라도 편견을 갖거나 불공평하게 대하지 않도록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22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며 네 자신을 지켜 정결하게 하라
22절은 박윤선 목사님께서 잘 해석해 놓았습니다(박윤선, 디모데전서 주석, 580-581쪽).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라는 것은, 장로 임직을 위한 안수를 가볍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장로를 경솔히 정죄하여도 안 되지만(19절), 장로 자격이 확실치 못한 자를 임직시키지 않음이 중요하다. ...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고 네 자신을 지켜 정결케 하라. 여기 "간섭한다"는 말(κοινωνέω)은 동참한다는 뜻이다. 남에게 범죄할 기회를 준 자는 그 죄에 동참하는 자이다. 마침내 그 자신도 죄책을 면치 못하게 된다. 이 위험의 일례(一例)는 무자격한 인물을 장로로 안수함이다. 무작격한 인물을 장로로 세우면, 그 인물이 범죄하는 때에 그를 장로로 세운 자도 그 죄책을 면치 못한다.
마지막 말씀이 중요합니다. 무자격한 자를 장로로 세우는 것은 그가 지을 죄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교역자는 이것을 깊이 생각해서 3장에 나오는 감독(장로)의 자격에 합당한 자만 장로로 세워야 합니다.
정결함과 포도주
23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바울은 장로에 대해서 말하다가 갑자기 디모데의 위장병을 걱정합니다. 위장병을 위해서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권하는데 이 말씀은 갑자기 튀어나온 것처럼 보입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디모데전서 주석, 581쪽).
이 문구는 문맥상 연락이 없이 돌연하게 나온 것이라는 해석(Calvin)이 있다. 그러나 앞절의 "정결하게 하라(ἁγνὸν τήρει)"는 말에 뒤이어 이 말이 나올 만하다. 디모데는 "정결"을 힘써 지키기 위하여 술을 입에 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가 자기의 질병을 고치기 위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는 것이 그의 정결을 지키는 데 방해될 것은 없다는 것이다(Lenski). ...
이 귀절에 있어서 우리가 주의할 것은 "조금씩"이란 말이다. 이 말이 술에 대한 절제 원리를 암시한다. 술은 약용(藥用)으로 조금씩 사용할 수 있는 것이고, 유흥용(遊興用)으로 다량 사용할 바 아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술을 마시느냐 안 마시느냐가 사람의 정결 여부를 판가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지켜 정결하게 하는 것은 주초 문제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역을 감당하는 것에 있습니다. 즉 무자격한 장로를 세우지 않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교역자는 이러한 큰 원칙에 유의해야 합니다.
언젠가는 다 드러남
24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따르나니
25 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
24-25절 말씀은 무자격한 장로를 세우는 것에 대한 말씀과 이어집니다. 요지는 죄도 밝히 드러나고 선행도 밝히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무자격한 장로를 세우지 않는 것에 대해서 처음에는 여러 가지 압박과 오해가 있을 수 있지만 결국에는 그것이 잘한 일이라는 것이 드러날 것이라는 뜻입니다. 특히 바울은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따르나니"라고 합니다. 이 말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어떤 사람의 죄는 당분간 숨겨지지만 그것이 마침내 그 사람의 뒤를 따라잡아 그가 성직에 서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라고 주석합니다(박윤선, 디모데전서 주석, 582쪽). 참 정확한 지적입니다. 처음에는 숨길 수 있어도 계속 숨길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는 그 사람의 실체가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장로도 그렇고 교역자도 그렇습니다.
믿음의 종들에 대한 권면
1 무릇 멍에 아래에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장로에 대해서 가르친 바울은 이어서 종의 마음 가짐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디모데에게 너는 종들을 이렇게 지도하라는 것입니다. 우선 종들은 멍에 아래에 있습니다. 그 멍에는 상전이 지운 멍에입니다. 그런데 믿는 종들, 즉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는 종들은 그 멍에를 상전이 지운 멍에라고 생각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지우신 멍에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종으로서 지고 있는 멍에는 하나님께서 지우신 멍에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심정으로 상전들을 모든 일에 마땅히 공경하는 것입니다. 상전의 인격이 고귀해서 공경하는 것도 아니고 상전이 나에게 잘해주어서 공경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내 위에 두셨기 때문에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공경은 믿음의 공경입니다.
믿는 종이 상전을 모든 일에 마땅히 공경할 사람으로 알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비방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믿는 종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종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상전을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예와 하나님께서 베푸신 교훈과 묶여 있습니다. 믿음의 종이 잘못하면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치더냐, 이런 비방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은 상전을 공경할 때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공경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그 보상은 하나님께 받습니다. 즉 믿음의 종은 비록 사람 상전을 섬기는 모양을 취하고 있지만 결국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입니다(골 3:24).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2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라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
교회 안에 노예도 있고 그 노예의 주인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초기 교회에서는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온 집안 식구가 같이 세례를 받는 일이 많았는데 그 식구 안에는 노예도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그 종들은 상전이 갑자기 형제가 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경우 종들은 상전을 형제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더 잘 섬기게 하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믿는 종이 잘 섬겨서 유익을 얻는 사람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그 상전이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함께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될 때 종의 섬김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섬김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종은 믿음의 상전을 더욱 잘 섬겨야 합니다. 이것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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