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6. 07:00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디모데전서
목차
디모데전서 3:8-16
찬송가 208장 내 주의 나라와
이와 같이 집사들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역자에 대해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3장 전반부에서는 어떤 사람을 감독(장로)으로 세워야 하는지에 대해서 썼습니다. 이제 후반부에서는 집사는 어때야 하는가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8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바울은 집사들도 감독들(장로들)처럼 자격이 있는 사람이 세워져야 한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ὡσαύτως)"가 그런 뜻입니다. 집사(διάκονος)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섬기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헬라어 원어의 어원으로 그 뜻을 유추하면 먼지 날리게 일하는 사람(thoroughly raise up dust by moving in a hurry, and so to minister)이라는 뜻입니다. 디아코노스에서 코노스가 헬라어 코니스에서 왔다고 보았을 때 그런 뜻이 됩니다. 코니스(konis)는 먼지라는 뜻입니다.
정중하고
집사라는 말의 뜻을 잘 생각해 볼 때 "정중하고"가 이해됩니다. 정중한(σεμνός)이라는 말은 3장 4절에서 "공손함"이라고 번역된 말과 같은 말입니다. 3장 4절에서 이 말은 아버지에게 복종하는 자녀를 가리키면서 쓰였습니다. 이 셈노스(σεμνός)라는 말은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깊이 존중한다라는 의미입니다. 집사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실무자입니다. 실무를 감당할 때 중요한 것은 실무를 맡긴 사람을 깊이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그러므로 집사의 덕목으로 "정중하고"가 가장 먼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집사에게 실무를 맡기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교회의 머리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러므로 집사가 깊이 존중하는 대상은 삼위 하나님입니다.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교회의 머리로서 우리 주님께서 집사에게 맡기시는 일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입니다. 특별히 집사는 재정처리를 맡았습니다(행 6:2-3). 여기에서 집사의 자격 요건 두 번째로 나오는 일구이언을 하지 않는 것(μὴ διλόγους)이 중요합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디모데전서 주석, 547쪽).
"일구 이언"하는 자는 거짓될 뿐 아니라 경솔하여 묵중(默重)한 맛이 없다. 집사는 남들을 돕는 신분인데(고전 12:28), 묵중하지 못하면 많이 약속하고 조금 실행하는 과오를 범하게 된다. 남을 돕는 자는 말한 것보다 실행이 많아야 된다. 그는 조금 허락하고 많이 주는 소허다여주의(少許多與主義)를 지켜야 한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소허다여주의란 적게 준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많이 주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일구이언하는 사람은 많이 준다고 하고 적게 주거나 주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이 상하게 됩니다. 이것은 가난한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실무를 감당하는 집사는 이런 일에 극히 주의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교역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또한 집사는 술에 인박이지 말아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디모데전서 주석, 547쪽).
"술에 인박"인다는 것은 '많은 술에 빠짐'을 의미한다. 술에 인박인 자는 자기 자신도 거느리지 못하는 자니, 어떻게 남들을 도와줄 수 있으랴? 그뿐 아니라 그는 심령이 어두워져서 남의 가련한 정지(情地, 딱한 사정, 가여운 처지)를 느끼지 못한다. 그는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함보다 더 하는 우준한 자이다.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은 도움 받는 사람의 처지를 깊이 헤아리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술에 인박인 사람은 그런 마음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술에 인박였다는 것은 제유법입니다. 이것은 쾌락을 사랑하는 모든 상태를 의미합니다. 쾌락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처지를 깊이 공감할 수 없습니다. 긍휼의 마음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쾌락을 사랑한다는 것을 좀더 확장해서 생각해 본다면 그런 사람은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집사는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어서는 안 됩니다. 일을 맡기신 분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즉 삼위 하나님의 마음과 그 뜻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은 교역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집사는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않아야(μὴ αἰσχροκερδεῖς) 합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디모데전서 주석, 548쪽).
"더러운 이를 탐"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이를 탐'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공금을 도용(盜用)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탐심이 있는 자는 이러한 죄에 빠진다. 이런 자는 공금을 맡아 남들을 돕는 일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함"이 집사의 자격이다.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
9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집사는 비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ἔχοντας τὸ μυστήριον). 여기서 비밀(μυστήριον)은 계시에 의해서만 알려질 수 있는 어떤 것을 뜻합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복음을 비밀이라고 말씀합니다(엡 6:19). 이 비밀은 전에는 감춰졌던 것인데 때가 차므로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것입니다. 이 비밀, 즉 복음은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비밀은 "믿음의 비밀"입니다.
깨끗한 양심 안에
이 믿음의 비밀은 깨끗한 양심 안에(ἐν καθαρᾷ συνειδήσει) 있습니다. 깨끗한 양심이 믿음의 비밀을 가지고 있는 장소, 믿음의 비밀이 보관되어 있는 곳입니다. 이 양심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디모데전서 주석, 548쪽).
"깨끗한 양심"이란 것은 중생(重生)한 자의 양심이니, 진리를 깨달은 대로 행하려 하고, 행하지 못한 것은 회개하는 그 양심을 가리킨다. 이런 양심으로만 복음을 바로 믿게 된다. 1:19 참조. 진리를 알고도 그것을 덮어 두고 옳지 않게 행하려는 사곡(邪曲)한 마음은 불결한 양심이다.
먼저 시험하여 보고
10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
10절은 박윤선 목사님의 주석이 잘 설명합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박윤선, 디모데전서 주석, 548쪽).
여기 "이에(καὶ)"란 것은 "또한"이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먼저 시험하여 보고" 이것은 당장 인격을 시험해봄이 아니고 오랜 세월 동안 지내봄이다. 여기 "시험하여 본다"는 말(δοκιμαζέσθωσαν)이 복수인 만큼 집사는 될 수 있는 대로 한 사람 이상이 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다는 것은, 그 후보자의 자격(은사)이 교회 대중의 인정을 받은 사실을 가리킨다. 교회 직분의 자리는 서투른 일꾼의 연습 장소가 아니고, 첫날부터 참으로 교회에 유익을 주어야 할 자리이다. 교회 직분에 부임할 자는 그 일을 감당할 은사가 문제이니, 그것으로 인정받은 자만이 그 직분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헬만 바빙크(Bavinck)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교회의 직제(職制)는 민주정치에 속한 것도 아니고, 독재정치에 속한 것도 아니고, 과두정치(寡頭政治)에 속한 것도 아니고, 오직 귀족정치에 속한다. 교직자들은 금전이나 물질로써 귀족이 되는 것 아니고 은사에 있어서 귀족이다."(Gereformeerde Dogmaick, IV, 1911, p. 424).
참으로 맞는 말씀입니다. 교회에 직분자로 세워지는 사람은 세워진 후에 배워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 이미 검증되어 바로 일할 사람입니다. 무엇이 검증되어야 하냐면 그 사람의 은사가 검증되어야 합니다. 그 검증은 교회의 회중이 합니다. 이것은 교역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볼 때 작금의 한국 교회의 청빙절차는 문제가 많습니다. 이 절차 자체가 문제가 많기 때문에 많은 교회들이 목사를 청빙한 후에 어려움을 겪는 것입니다.
여자들도
11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집사 직분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여자들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여자들도 이와같이"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박윤선 목사님은 리델보스(Ridderbos, Lock)의 해석을 따라 여기 나오는 여자들은 여집사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석합니다. 그 이유는 "이와 같이(ὡσαύτως)"가 남자 집사들에 관한 자격과 마찬가지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박윤선, 디모데전서 주석, 549쪽).
여집사의 네 가지 요건
여집사들도 정숙해야(σεμνάς) 합니다. 이 말은 위에서 이미 설명한 말입니다. 집사는 남자나 여자나 일을 맡기신 삼위 하나님을 깊이 존중해야 합니다.
여집사들은 "모함하지 아니(μὴ διαβόλους)"해야 합니다. 디아볼루스란 말은 '사탄', 또는 '마귀'라는 뜻입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디모데전서 주석, 550쪽).
마귀는 성도를 하나님께 참소하는 자이다(계 12:10). 그와 같이 여집사는 집집에 다니며 신자들을 걸어 다른 이에게 참소하여 이간 붙이면 안 된다. 그런 행동은 마귀적이다. 8절의 "일구이언"이란 말의 해석을 참조하라.
남자들이 조심해야 할 것이 "일구이언"이라면 여자들이 조심해야 할 것은 애꿎은 사람을 모함하는 것입니다. 박윤선 목사님 말씀대로 이것은 사탄의 짓입니다.
여집사들은 절제해야(νηφαλίους) 합니다. 이 말은 이미 앞에서 감독의 요건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것은 어떤 것에 취하지 않고 정신이 온전하다라는 뜻입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 세상 것에 취하지 않고 영적(靈的)으로 깨어 있음을 가리킨다"라고 주석합니다(박윤선, 디모데전서 주석, 550쪽). 이 덕목이 두 번 나온다는 것은 직분자가 이 세상에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알려줍니다.
여집사들은 충성되어야(πιστὰς) 합니다. 이 말은 믿을만 하다라는 뜻입니다. 일을 맡겼을 때 신뢰할만 하다, 믿을 수 있다라는 뜻입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것은 거짓이 없이 지구성(持久性)이 있고, 희생적으로 봉사함을 가리킨다(고전 4:2)"라고 주석합니다(박윤선, 디모데전서 주석, 550쪽).
여집사들에게는 네 가지 덕목이 있어야 합니다. 즉 여집사들은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고 절제하며 충성스러워야 합니다. 그런데 그 뒤에 "모든 일에(ἐν πᾶσιν)"라는 말이 붙었습니다. 즉 모든 일에 있어서 일을 감당할 때에는 정숙하고 모함하지 않고 절제하고 중성스럽게 일을 감당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장로와 집사 공히
12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12절은 3장 4절, 감독의 자격 요건에도 똑같이 나오는 말입니다. 교회의 직분을 감당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지위와
13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집사는 어떻게 보면 실무를 감당하므로 낮은 직급처럼 보입니다. 집사는 먼지 날리게 일하며 섬기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8절 해석 참조). 그런데 이런 직분을 잘한 사람은 "아름다운 지위"를 얻게 된다(βαθμὸν ἑαυτοῖς καλὸν)고 합니다. 지위라고 번역된 바스모스(βαθμός)는 "계단에서의 걸음, 단계[a step (of a stairway); hence: a stage in a career, a position.]"라는 뜻입니다. 루터는 이것을 보다 높은 교직에 올라간다고 해석합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이들이 영적인 지위가 올라간다는 뜻입니다. 눈에 보이는 모습은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일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높은 지위에 있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그리고 더 나아가서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습니다. 사실 집사의 직분은 예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낮은 곳에 처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모든 이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집사가 낮은 곳에서 먼지 날리도록 일하는 것은 마치 예수님처럼 일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 자라게 됩니다. 더욱 큰 담력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14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 편지를 쓰는 이유는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고 입니다(15절). 그리고 이 집은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15절 하). 그러므로 이 편지는 디모데에게 교회를 잘 양육하고 돌보고 다스리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잘 돌보고 양육하고 다스릴 때에 정말 중요한 일은 교회 안에서 직분자를 세우는 일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교회가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마치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성막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거하셨듯이 지금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 안에 거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 어떤 것보다 거룩해야 합니다. 교회의 거룩성은 교회 안에 세워지는 직분자들로 인해서 지켜집니다. 그러므로 직분자를 세우는 일이 극히 중요한 것입니다. 교회 생활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 교회는 진리를 떠 받치고 있는 기둥입니다. 교회가 서있기 때문에 진리가 굳건하게 서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바르게 서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리가 잘 세워지고 전파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디모데전서 주석, 551쪽).
"진리"란 말은 여기서 복음을 가리킨다. 교회가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된다는 것은, 교회의 진리 증거 사역을 염두에 둔 말이다. 이 진리가 교회로 말미암아 전파되며 보수(保守)된다. 교회는 등대(燈臺)처럼 서서 진리를 높이 들어 증거한다. 그 의미에서만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된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의 근원 또는 그 성립을 염두에 두고 말할 때에는 교회의 터가 진리라고 할 것이다.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전한 진리 위에 세움이 되었다(엡 2:20).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사도 바울은 교회가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한 다음에 "그리고 모든 사람이 똑같이 고백하지 않느냐(Καὶ ὁμολογουμένως)"라고 합니다. 이것을 우리말로는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라고 번역했습니다. 모든 이가 똑같이 고백하는 것은 경건의 비밀이 크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경건(εὐσεβείας)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비밀이라고 할 때 비밀(μυστήριον)은 복음을 뜻합니다. 이 말은 앞에 나오는 진리와 상응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로서 이렇게 큰 경건의 비밀을 떠받치고 세우는 기관입니다.
경건의 비밀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 경건의 비밀은 바로 육신으로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예수님은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셨습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디모데전서 주석, 553쪽).
곧, 예수님께서 성령님의 권능에 의하여 부활하심으로 그의 의로우심이 증명되신 것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유대인들은 의로우신 예수님을 정죄하여 죽였으나 하나님은 그를 다시 살리셔서 그의 무죄하심(의로우심)을 증명하셨다(행 3:14-15). 그의 다시 살으심이 그의 의(義)의 출현(出現)이고, 그것에 의하여 그를 믿는 자들을 의롭게 여겨 주신다. 롬 4:25 하반은 말하기를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라고 한다.
예수님은 천사들에게 보이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이 영적인 세계에서도 확인되었다는 뜻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만국에서 전파되셨습니다. 여기서 만국은 특별히 유대인 외의 이방 민족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 즉시 이방민족인 로마인들에게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할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만국에서 전파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세상에서 믿은 바 되셨습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디모데전서 주석, 554쪽).
여기 "믿은 바 되시고"라고 번역된 헬라 원어(ἐπιστεύθη)도 과거동사이니, "믿은 바 되셨고"라고 개역되어야 한다. 여기도 난제가 있으니,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이전(승천에 관한 말은 뒤에 나옴)에 세계 복음화가 실현되었다는 것일까? 이것은 세계 인류가 전부 신자화(信者化)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사도들의 신앙이 세계 인류 신자화의 씨앗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에서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이 신자가 되도록 구원의 길을 마련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영광 가운데 올려지셨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승천을 가리킵니다. 16절은 크신 경건의 비밀을 요약합니다. 경건의 비밀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신 것이 경건의 비밀입니다. 또한 영으로 의롭다 하신 것과 천사들에게 보이신 것과 만국에서 전파되신 것과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신 것과 영광 가운데 올려지신 것이 다 경건의 비밀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교회는 이런 복음 진리를 맡은 기관입니다. 이 복음 진리를 고수하고 세우고 전하는 기관인 것입니다. 교회가 이 복음 진리를 세우고 전하기 위하여 할 것은 바른 교훈을 전하는 것과 선한 싸움을 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과 직분자를 잘 세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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