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10. 11:14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마가복음
목차
마가복음 10:23-31
찬송가 493장 하늘 가는 밝은 길이
재물이 있는 자의 가치 측정
권력과 재물에 눈이 멀면 하나님 나라가 보이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권력에 눈이 멀어서 예수님께 오는 어린 아이들을 막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인데 그들을 막은 것입니다. 권력을 지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린 아이들이 하찮게 보였던 것입니다. 이어서 재물이 심히 많아서 예수님을 따르지 못한 부자가 나옵니다. 가치 비교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주어지는 영생을 어떻게 재물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영생은 억만금을 주어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당장 가지고 있는 재물에 눈이 멀어서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23절).
놀라는 제자들
23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24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25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6 제자들이 매우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27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재물에 대해서 가르쳐주셨습니다.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기독교인이라면 익숙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제자들은 놀랐습니다(24절). 왜 놀랐을까요? 부자의 부가 하나님께서 복으로 주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은 지금도 통용되는 생각입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결과가 부라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부자는 이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이 땅에서부터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반대를 말씀하셨습니다. 부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놀란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비유로 설명하십니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십니다(24-25절). 예전에 이것을 예루살렘 성에 바늘 귀라는 작은 문이 있었다고 설명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행객이 그 작은 문으로 통과하려면 자기 낙타에 실은 짐을 다 내려 놓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설명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요지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27절),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사람의 수준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말씀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낙타라는 큰 짐승이 바늘귀라는 좁은 구멍을 통과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앞에서 놀란 것보다 훨씬 더 놀랐습니다. 매우 놀랐다고 합니다(26절). 그러면서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라고 서로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부자는 아무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아니 부자가 아무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니 이것은 당시 고정관념에 의하면 심히 놀라운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부자의 기준이 어떻게 될까요? 이 기준이 애매합니다. 자산이 얼마 이상이 있으면 구원을 못 받는다 이런 법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과 비교하면 가난한 것이지만 나보다 덜 가진 사람과 비교하면 부자가 됩니다. 세상에는 항상 나보다 못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그 누구도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라고 하면서 놀란 것은 사람으로서는 아무도 구원을 못 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놀라움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임
예수님께서는 놀라는 제자들에게 중요한 진리를 말씀하십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27절)" 이 말씀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핵심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사람이 무엇인가를 이루어서 받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셔야 받을 수 있는 나라입니다. 사람은 그저 주시는 것에 감사하면서 그 나라를 영접할 뿐입니다. 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복 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사람이 뭔가를 해서 하나님께서 갚아주셨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복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주도권은 항상 하나님께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도 그 근원으로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어린 아이들은 하나님 나라를 기쁘게 영접합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채워주셔야만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기쁘게 영접하는 것입니다. 반면 부자들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 나아온 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0:17)"라는 질문 자체가 그것을 내포합니다. 제가 명하시는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영생을 얻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을 알려주십시오,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은 사람이 어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 그대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쁘신 뜻대로 사람을 택하여 하나님 나라 안에 거하게 하십니다.
나와 복음을 위하여
28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31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부자에게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에게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자기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해서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자기의 것을 버린 사람은 현세에 있어서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는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29-30절).
하나님 나라과 교회 공동체
여기서 복음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렸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렸다는 뜻입니다. 그런 사람은 현세에 있어서 그것을 배나 받는다고 하십니다. 이미 현세에서부터 보상을 받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배나 받을 수 있을까요? 답은 교회 공동체에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안으로 들어간 사람은 교회 공동체에 속하게 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형제나 자매나 아버지나 어머니나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확대 가족입니다. 친 가족처럼 서로의 것을 주장하지 않고 나누기 때문에 전토가 백 배나 늘어나는 것입니다(행 4:34-35).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박해를 겸하여 받는다고 하십니다. 박해를 받는 이유는 하나님 나라 생활방식이 세상의 방식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내세에 영생을 받음
현세에 교회 공동체에 속해서 버린 것을 백 배나 받은 사람은 내세는 영생을 받습니다. 내세는 오는 세대입니다. 오는 세대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개인적인 종말 이후의 세대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신 이후의 세대입니다. 우리는 죽으면 다른 세계로 들어갑니다. 그렇게 해서 내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를 보면 우주적 종말이 있습니다. 즉 이 시대가 끝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종말이든지 우주적인 종말이든지 다음 세대가 반드시 옵니다. 그렇게 올 때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은 영생을 받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해서 공동체로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그 어떤 것도 공로로 내세울 수 없음
여기에 덧붙이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다는 것입니다(31절). 이 말씀은 다른 복음서에 보면 포도원 품꾼의 비유로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어떤 포도원 주인이 일꾼을 뽑아서 포도원 안으로 들여보냈습니다. 저녁 때가 되어서 그들이 일한 댓가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매 시간마다 일꾼이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임금을 주는 순서는 거꾸로였습니다. 나중 들어온 사람부터 먼저주고 처음에 들어온 사람을 맨 나중에 준 것입니다. 나중에 들어온 사람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는데 한 데나리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첫 시간에 들어온 사람, 즉 하루 종일 일한 사람은 더 받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도 한 데나리온이 주어졌습니다. 당연히 먼저 온 사람들은 불평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내가 내 것을 가지고 마음대로 할 권한이 없느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된다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버렸다고 하는 것이 공로가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셈을 하셔서 누구는 더 많이 주시고 누구는 더 적게 주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은혜로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게 보면 베드로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것은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공로로 내세울 수는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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