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마가복음 10장 32-45절 |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예수님, 인자의 죽으심과 부활

2024. 3. 11. 09:42성서유니온 매일성경/마가복음

목차


    마가복음 10:32-45

    찬송가 447장 이 세상 끝날까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그 어떤 사람도 자기 힘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부자만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까요? 하나님께서 들여보내 주셔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10:27). 자기의 것을 다 버렸기 때문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들여보내주셨기 때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사람은 현세에 교회 공동체에 속해서 박해를 겸한 복을 받습니다. 내세에는 영생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다고 하셨습니다(10:31). 이 말씀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은혜로 된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32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
    33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34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은 십자가를 향하여 나아가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길을 앞에 서서 가셨습니다(32절). 자기 목숨을 내 주시기 위해서 앞서 나가신 것입니다(45절). 예수님께서 앞에 서서 가시는 것은 먼저 가서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가장 깊은 곳으로 내려가시기 위한 것입니다. 

    갑자기 놀라고 두려워함

    32절에 보면 예수님을 뒤따라 가는 사람들이 갑자기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에게 놀람과 두려움이 임했습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직감한 것입니다. 당시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목하고 기대하던 때였습니다. 그들의 메시아로 기대하고 그들을 정치, 사회적으로 구원해 주기를 바라던 때였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서 세상이 뒤집어지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러려면 놀랍고 두려운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들이 왜 놀라고 두려워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기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이 놀라고 두려워할 때 열두 제자에게 한 번 더 죽음과 부활을 가르쳐주셨습니다(32절). 이것으로 볼 때 사람들이 놀라고 두려워한 것은 어떤 혁명적인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단지 그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났지만 사람들은 어떤 심상치 않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인자의 수난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수난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33절). 인자는 하나님의 아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모든 주권을 이양 받고 모든 사람들에게 섬김을 받을 것을 예언했습니다(단 7:13-14).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예언과 정반대의 일이 일어날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즉 당시 권력자들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질 것이고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방인들에게 넘김바 되어서 이방인들이 그를 능욕하고 죽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다니엘서에서는 모든 권세가 인자에게 넘어가고 모든 이방인들이 인자를 섬길 것이라고 했는데 정반대의 일이 일어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정반대의 일이 일어나지만 거기에서 끝이 아닙니다.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34절)" 죽임을 당하고 끝이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다니엘의 예언은 틀린 것이 됩니다. 그러나 인자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삼 일 만에 다시 살아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은 궁극적으로 모든 정권을 잡으시고 높아지는 길입니다. 다니엘서의 예언을 성취하러 가시는 길입니다. 그런데 그 길은 죽음을 통과해서 가야만 하는 길입니다. 다니엘서의 예언은 십자가로 성취되었습니다. 

    죽음을 통과해야 부활에 이를 수 있음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부활에 동참하려면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을 따라서 가야합니다. 그 길은 사람으로 하여금 놀라게 하는 길입니다. 두렵게 하는 길입니다. 죽음의 길입니다. 그러나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부활이 있습니다. 부활부터 시작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요청 

    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7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39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제자들은 어떤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들은 그 과정까지 다 알지는 못했지만 그 일이 일어나면 예수님께서 높아지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제자들의 생각이 어떠했는지 야고보와 요한의 요청에서 드러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주의 영광중에서 자기들을 좌우에 앉게 해 주시기를 요청했씁니다(37절).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38절). 만약 그들이 하늘 영광을 생각하면서 예수님께 구했다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 땅의 영광을 구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내가 마싲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38절)"라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시는 잔은 하나님의 진노의 잔입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시는 세례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과하는 세례입니다. 예수님께서 겪으시는 죽음은 세상 모든 죄에 대한 하나님의 무한한 진노를 당하는 죽음입니다. 사람으로서는 이러한 잔과 세례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잔과 예수님의 세례를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의 의미

    그러나 그들은 할 수 있다고 대답합니다(39절).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라고 말씀하십니다(39절). 이 말씀은 그들이 하나님의 무한 진노의 잔을 마시고 십자가의 죽음을 통과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일은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이 예수님과 연합하여 예수님 안에서 그 일에 동참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 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거기에서 함께 죽었습니다. 그들의 모든 죄도 거기에서 죽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러한 연합으로 예수님께서 마시는 잔과 예수님께서 받으시는 세례를 함께 받는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받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연합하여 받는 것입니다. 

    무지하고 완악한 제자들을 불쌍히 여기심

    41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42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냈습니다(41절). 이들은 야고보와 요한이 자기들을 제쳐두고 먼저 나아가서 서열을 파괴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요한은 제자들 중에서도 나이가 어렸습니다. 그것도 제자들이 화를 낸 이유 중에 하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불러서 하나님 나라를 다시 가르쳐주십니다.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계속 들었지만 생각과 마음이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완악함을 참으시고 다시 가르쳐주십니다. 사람의 완악함과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시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매일성경 | 마가복음 10장 32-45절 |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예수님, 인자의 죽으심과 부활

    하나님 나라의 권세

    이방인의 집권자들과 그 고관들은 사람들 위에서 권세를 부립니다(42절). 제자들이 생각하는 권세도 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권세는 다릅니다.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43절).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44절). 가장 낮은 곳에 처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자이십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정권을 잡으시면 모든 사람보다 위에 계시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께 충성을 보인 제자들도 함께 올라가서 모든 사람보다 위에 있게 됩니다. 제자들은 그것을 바랐습니다. 그러나 인자이신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성취하러 오셨습니다. 즉 모든 사람의 종으로 오셨습니다. 종이 주인의 발을 씻기듯이 가장 낮은 곳으로 가셔서 모든 사람의 죄를 씻어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죄를 씻어 주시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λύτρον)로 주셨습니다(45절). 

    하나님 나라에서 참된 기쁨을 얻으려면

    죄는 빚입니다. 사람은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께 무한한 빚을 졌습니다. 지옥불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아도 다 갚지 못할 빚을 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무한히 가치 있는 목숨을 드려서 그 빚을 갚아주셨습니다. 누구든지 빚을 지면 그 채주에게 종이됩니다.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한히 가치 있는 당신님의 목숨을 노예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자유하게 하기 위해서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에서 높아지려고 한다면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종으로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고 법칙입니다. 참된 기쁨은 낮아지고 희생하는 것으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과 많은 사람

    예수님의 생명 가치는 모든 사람의 죄를 다 씻어도 남습니다. 모든 사람을 죄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무한히 값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믿음으로 예수님과 연합된 사람만 그 혜택을 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πάντων)의 종으로 그들의 죄를 다 씻어주셨지만 대속의 은혜를 누리는 사람은 모든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πολύς)입니다. 모든 사람의 죄를 씻어주셨다는 것은 모든 사람을 구원해 주셨다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셔서(골 1:20) 모든 사람이 죄를 지음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 살 수 있도록 하셨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대속의 은혜가 적용되어서 구원을 얻는 사람은 그 중에서 영원 전부터 선택받은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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