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마가복음 11장 1-11절 | 예루살렘과 성전에 심판자로 임하시는 예수님

2024. 3. 13. 20:48성서유니온 매일성경/마가복음

목차


    마가복음 11:1-11

    찬송가 36장 주 예수 이름 높이어


    여리고를 지나심

    예수님께서는 여리고를 지나시면서 맹인 바디매오를 그 비참에서 건져주셨습니다. 바디매오는 부정한 자의 아들에서 고결한 자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정복한 것의 참 의미를 밝혀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리고에서 죄와 죄로 인한 부정함을 정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여리고 정복은 사람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정복이었습니다. 여리고를 지나신 예수님께서는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셨습니다(1절). 

    벳바게와 베다니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예수님께서는 무리와 함께 예루살렘 가까이 오셔서 감람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셨습니다. 벳바게는 파게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파게(פַג)는 이른 무화과를 뜻합니다. 무화과 나무는 꽃을 피우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무화과 나무입니다. 꽃이 없는 대신 파게라는 열매가 잎과 함께 나옵니다. 이 파게를 떼어내면 그 자리에 좋은 무화과가 5번 정도 나옵니다. 파게는 상품 가치가 없어서 팔 수 없습니다. 대신 길을 지나는 어린이나 나그네의 요깃거리가 됩니다. 벳바게는 파게라는 이른 무화과 열매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즉 먹을 수 없는 무화과 열매의 집입니다. 

     

    베다니는 히브리어로 궁핍한 자(עָנִי)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궁핍한 자라는 뜻의 아니(עָנִי)는 아무 것도 없는 자,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도움이 절실한 자라는 뜻입니다(시 40:17; 70:5; 86:1; 109:22). 아무 것도 없는 도움이 절실한 자의 집에 예수님께서 이르신 것입니다. 

    사람의 처지

    사람의 처지가 이와 같습니다. 사람이 맺는 열매는 상품 가치가 없는 파게입니다. 또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인 선을 전혀 이룰 수 없습니다. 완전히 무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동네에 이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려고 하시는 것이 이 동네 이름에서 들어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벳바게에 이르셔서 우리를 예수님과 접붙이시고 우리로 하여금 좋은 열매를 맺게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베다니에 오셔서 우리 도움이 되셨습니다. 우리의 가난을 부요함으로 바꾸셨습니다(고후 8:9). 나중에 예수님께서는 베다니 근처에서 승천하셨습니다(눅 24:50). 이것은 도움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들어올려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를 지셨는가

    예루살렘은 예수님을 대적하여 죽이는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거기에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정죄를 당하고 영문 밖에서 죽으셨습니다. 순교의 자리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시점에 벳바게와 베다니라는 이름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 두 지명은 예수님께서 왜 죽으셨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지명입니다. 

     

    매일성경 | 마가복음 11장 1-11절 | 예루살렘과 성전에 심판자로 임하시는 예수님

    나귀 새끼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4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5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6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예수님께서는 제자 두 명을 맞은 편 마을로 보내셨습니다(1-2절). 그들에게 나귀 새끼를 풀어서 끌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누가 물어보면 "주가 쓰시겠다"라고 말하라고 하셨습니다(3절). 제자들은 순종했고 나귀 새끼를 풀어서 무엇 하려느냐라고 묻는 사람에게(5절)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나귀 새끼를 가져가도록 허락했습니다(6절). 

    예수님의 주권

    "주가 쓰시겠다"라는 말은 나귀새끼의 주인이 그것을 쓰시고자 하신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주권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의 소유권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엄연히 주인이 있었던 나귀 새끼였지만 모든 것의 주인께서 쓰시도록 내어드렸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이와 같습니다. 모든 것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언제든지 쓰시고자 하시면 기쁘게 내어드려야 합니다. 많은 사람의 것이 있는데 나의 것을 쓰신다는 것에 무한히 감사하면서 드려야 합니다. 주님께서 쓰신다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나귀 새끼를 쓰신 이유

    주님께서 쓰시고자 하시는 것은 하찮아 보이는 나귀 새끼입니다. 하찮아 보이는 것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스가랴의 예언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슥 9:9)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임하실 때에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공의로우시고 구원을 베푸시고 겸손하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은 이스라엘의 전쟁 도구를 끊고 이방에게 화평을 전하는 구원입니다(슥 9:10). 예수님께서는 평화의 왕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예수님을 적대할 것입니다. 

    호산나

    7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8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실 때 많은 사람들이 겉옷을 깔고 나뭇가지를 길체 폈습니다(7-8절). 이 날을 교회는 종려주일로 지킵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께 경의를 표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경의를 표하여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고 소리질렀습니다(9-10절). 호산나는 지금 구원하소서(יָשַׁע)라는 뜻입니다. 

    지금 당장의 구원을 바랐지만

    사람들은 지금 당장의 구원을 바랐습니다. 지금 당장 다윗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바랐습니다. 로마가 무너지고 이스라엘이 높아지기를 바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기대를 결국 부응하실 것입니다. 하늘에서 새 예루살렘이 내려올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이 기대했던 지금 당장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그냥 두셨습니다. 그들의 외침이 이미 성경에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슥 9:9).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11절은 독특합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성전을 둘러 보셨다는 것은 마가복음에만 나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유심히 보셨습니다. 그렇게 보시고 날이 저물어 베다니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밤새 성전에 대해서 숙고하셨을 것입니다. 그 숙고하신 결과는 성전에 대한 심판 선고입니다. 성전 심판은 무화과가 마르는 사건으로부터 시작되고 마칩니다(11:14, 21). 

    하나님의 심판은 정확함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범죄를 유심히 살피셨습니다. 노아 때 홍수로 세상을 멸하실 때에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셨습니다(창 6:5). 홍수 이후에 사람들이 바벨탑을 지어 하나님의 뜻에 반대로 행할 때에도 내려오셔서 보셨습니다(창 11:5). 또한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부르짖음으로 하나님께 들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것을 보시러 임하셨습니다(창 18:20-21).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면밀한 검토 이후에 내려집니다. 예수님께서도 성전에 들어가셔서 모든 것을 둘러 보셨습니다(11절). 그 후에 성전을 심판하시기로 마음을 굳히셨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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