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마가복음 10장 46-52절 | 맹인 바디매오를 보게 하신 예수님

2024. 3. 12. 18:58성서유니온 매일성경/마가복음

목차


    마가복음 10:46-52

    찬송가 459장 누가 주를 따라


    모든 사람의 종이 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에서 높아지는 법을 알려주셨습니다. 그 방법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10:44).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셔서 그들의 모든 죄를 다 씻어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마치 종이 주인의 발을 씻기듯이 죄를 씻어주러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죄를 씻어주시는 방법은 목숨을 대속물로 주시는 것이었습니다(10:45). 대속물은 빚이 많아서 팔린 노예를 해방하기 위해서 그 노예 대신해서 갚아 주는 돈이나 물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의 종이었던 우리를 위해서 스스로 종이 되셨습니다. 종이 되시는데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빌 2:8).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셨습니다(빌 2:9).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에서 높아지는 방법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방법 그대로입니다. 즉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진리를 바디매오를 고쳐주심으로 보여주셨습니다(46-52절). 

    여리고에 이르심

    46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51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예수님께서 여리고에 이르셨습니다. 여리고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관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가장 먼저 점령한 성이 여리고 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경로를 따라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점령하신 것은 죄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46절)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께 소리를 지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47절)" 그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모든 적을 평정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평화를 안겨준 인물입니다. 이들은 다윗과 같은 왕을 대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디매오는 다윗의 자손을 정치적인 인물 이상으로 생각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은 자기의 눈을 고칠 수 있으신 분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맹인의 눈을 고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다윗의 자손, 장차 그들을 구원할 구원자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그 이름은 예수입니다. 구원자인 것입니다. 

    디매오라는 이름

    바디매오의 이름은 디매오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디매오의 뜻은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헬라어 티마오(τιμάω)로 보는 것입니다. 티마오는 높이다, 가치를 인정하다라는 뜻입니다. 즉, 아주 고결하고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정반대의 뜻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히브리어 타매(טָמֵא)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타매는 정결하지 못하다, 부정하다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부정한 것에 접촉하면 안 되었습니다. 정결법에서 가장 부정한 것은 시체입니다. 즉 죽음과 가까울수록 부정하다고 여겼습니다. 죽음은 죄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디매오는 부정한 사람, 죄로 인해서 부정한 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나의 이름에 정반대의 두 가지 뜻이 담겨있을 수 있을까요? 

    맹인 바디매오

    바디매오는 디매오의 아들입니다. 이 이름은 고결하고 가치있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과 죄를 지어 부정한 사람의 아들이라는 두 가지 뜻이 같이 있는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맹인입니다. 그러므로 맹인이라는 장애와 그 비참한 처지를 생각할 때 사람들은 그의 이름으로 죄를 지어 부정한 자의 아들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꾸짖어서 잠잠하라고 하자 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48절). 사람들은 그를 죄를 지어 부정한 자의 아들로 생각했기 때문에 서슴없이 꾸짖었을 것입니다. 

    그를 부르라

    바디매오의 목소리를 예수님께서 들으셨습니다. 가시다가 머물러 서십니다(49절 상). "그를 부르라"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달콤한지요. 예수님께서 바디매오를 부르시자 사람들의 태도가 돌변합니다.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라고 부드럽게 바디매오를 부릅니다. 예수님께서 바디매오에게 물으십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바디매오가 대답합니다.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러자 바디매오의 눈이 떠져서 곧 보게 되었습니다. 바디매오가 믿은 대로 예수님께서는 바디매오의 눈을 고쳐주셨습니다. 

     

    매일성경 | 마가복음 10장 46-52절 | 맹인 바디매오를 보게 하신 예수님

    바디매오는 우리 모두를 가리킴

    바디매오는 죄를 지어 부정한 자의 아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죄를 지어 부정한 자의 아들입니다. 우리 모두 부정한 자입니다. 누구든지 우리에게 가까이 오면 썩은 내가 진동하는 죄인입니다. 더러운 죄인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맹인입니다. 앞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비참한지 볼 수 없고 깨달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 소리는 복음입니다. 복음이 우리 귀에 들려오는 것입니다. 복음이 들리자 우리 마음에 빛이 비추기 시작합니다. 눈을 뜰 수 있다는 소망이 생깁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믿었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디로 어떻게 지나가시는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냥 지나가버리시면 안 되기 때문에 더 필사적으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소리는 에수님께 당도했고 예수님께서 멈추셔서 바디매오를 부르셨습니다. 그 믿음을 칭찬하시고 그를 고쳐주셨습니다. 그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그 순간 바디매오는 부정한 자의 아들에서 고결한 자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누구든지 부정한 자의 아들입니다. 그 부정한 자의 아들은 예수님 안에서 고결한 자의 아들이 됩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집니다. 이 일은 바로 모든 부정한 자의 아들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바로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우리와 같은 저 끝에 있는 사람, 바디매오와 같은 사람을 위해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당신님의 목숨을 우리를 위해서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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