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마가복음 2장 13-28절 |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과 대척점에 섰던 당시 종교지도자들

2024. 2. 13. 10:37성서유니온 매일성경/마가복음

목차


    마가복음 2:13-28

    찬송가 528장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예수님과 대척점에 있는 당시 종교지도자들

    예수님으로 임한 하나님 나라는 귀신들이 떠나가고 각종 질병이 고쳐지는 나라입니다(1:34). 그런데 하나님 나라를 제대로 누리려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귀신을 내쫓으시고 질병을 고쳐주시는 분으로만  인식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죄를 사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2:10). 예수님께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과 대척점에 있는 장면이 2장 13절부터 이어집니다. 

    큰 무리를 가르치심 

    13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큰 무리가 나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가르치시니라
    14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15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
    16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큰 무리가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면서 먼저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으셨습니다. 그러시다가 나병환자를 고치신 일 이후로(1:40-45) 당신님께 나아온 사람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십니다(2:2). 13절에도 큰 무리가 나아오자 그들을 가르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알아야 하나님 나라를 제대로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리와 죄인들

    예수님께서는 세리인 레위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14절). 이 레위는 마태복음을 쓴 마태입니다. 세리는 당시에 죄인으로 여겨진 사람들입니다. 15절에 보면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과 함께 앉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앉았다는 것은 함께 먹기 위해서 비스듬이 누웠다는 뜻입니다(16절). 여기서 죄인들은 세리처럼 사람들에게 죄인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입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죄인들을 부정한 사람들이라고 하여 그들과 함께 먹는 것을 금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이에 대해서 의문을 표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가 없고 병든 자라야 쓸 데가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17절)" 이것이 예수님께서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의문에 대한 답입니다. 

     

    매일성경 ❘ 마가복음 2장 13-28절 ❘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과 대척점에 섰던 당시 종교지도자들

    적극적으로 죄인들을 부르심

    예수님께는 죄 사함의 권세가 있으십니다. 예수님은 죄를 사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말은 죄인들이 예수님께로 오면 죄가 사해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만히 앉아서 그들이 오기를 바라는 분이 아니십니다. 여기에 값진 복음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길을 지나가시다가 죄인을 보시면 부르시는 분이십니다(14절). 즉, 적극적으로 죄인들이 당신님께 나아오도록 초청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죄인들은 누구라도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맞아주시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십니다. 죄인들과 동류로 인식되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당신님께서는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시면서 죄인들에게 찾아가시는 분이십니다. 

    죄 사함의 확신을 가지고 나아감

    회개할 때 우리는 언제나 적극적인 마음으로 죄 사함의 확신을 가지고 회개할 수 있습니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갈 때 예수님께서 받아주시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 같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당시 종교는 연약하고 힘이 없어서 죄인에게 가는 것을 금했습니다. 부정한 것이 옮을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함께 죄를 지을까 염려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는 이런 제약이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께는 부정한 것이 절대 옮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생명이 부정한 곳에 접촉해서 부정한 것을 정결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으로 정결하게 된 사람들이고 이 예수님을 증언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향하여 예수님을 증언할 곳은 죄인들이 있는 곳입니다. 

    금식에 관하여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20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21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22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과 대척점에 있던 문제가 이어집니다. 이어지는 문제는 금식문제입니다. 율법대로 하면 금식은 대속죄일에만 하기로 되어 있습니다(레 23:26-32). 그런데 이것을 확장하여 유대인들은 매주 둘째 날과 다섯째 날에 금식하는 법을 제정했습니다. 즉 그들은 일주일에 이틀을 금식하는 법을 지켰습니다(눅 18:12).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이 법을 지키고 있었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18절). 이에 대해서 사람들이 의문을 표했습니다. 

    금식의 때

    예수님께서는 금식의 때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먼저 혼인 집에서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는 금식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19절). 이것은 비유입니다. 신랑은 예수님이고 신랑과 함께 있는 사람들은 제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거하셨던 때를 혼인 집에 비유했습니다. 그 때는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들과 함께 거하시면서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들의 각종 질병을 고쳐주시면서 당신님이 누구신지를 가르치시는 때입니다. 이 때는 예수 그리스도로 임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며 즐거워하는 때였기 때문에 혼인 잔치에 비유됩니다. 아무도 혼인잔치 때 금식하지 않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함께 거하시는 그 때는 금식하지 않는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금식하는 때는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렀을 때입니다. 이 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당하시는 때입니다. 세상 모든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으로서 하나님의 무한 진노를 당하시는 그 때가 바로 금식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에 정하신 것도 이와 같습니다. 대속죄일에만 금식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가르침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금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에 임의로 덧붙이면

    예수님께서는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지 않고(21절) 새 포도주는 낡은 부대에 넣지 않고 새 부대에 넣는다고 가르쳐주십니다(22절).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을 사람이 임의로 바꾸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금식을 명하신 날은 대속죄일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거기에 무엇을 덧붙였습니다. 그 결과 새 것이 낡은 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법을 망가뜨린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새 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넣으면 포도주도 버리고 부대도 버리게 됩니다.

    생베 조각과 새 포도주

    하나님께서 명하신 법이 왜 그러한가를 깊이 생각하고 그 깊은 의미를 깨닫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입니다. 새 포도주보다 묵은 포도주가 좋습니다(눅 5:39). 즉 하나님의 법을 깊이 묵상하여서 그 뜻을 깨닫는 것이 율법을 참으로 지키는 것이지 자꾸 사람이 거기에 새 것이라고 하여 덧붙이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망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포도주를 묵혀야 제 맛이 나듯이 하나님의 법도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그 맛을 알면서 지킬 수 있는 법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비유로 주신 말씀의 의미입니다. 

    안식일에

    23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그의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24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26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27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과 대척점에 있었던 문제 중 중요한 문제는 안식일 준수에 관한 문제입니다. 제자들이 안식일에 이삭을 자르자(23절)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라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안식일에는 추수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안식일 할라카입니다. 할라카는 계명과 버금가는 권위의 법입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의 말은 제자들이 금지된 법을 어겼다는 뜻입니다. 

    다윗의 예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예를 듭니다. 당시 랍비들은 다윗이 진설병을 먹은 행동(26절)을 정당하다고 해석했습니다. 진설병은 제사장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제사장 아닌 사람에게는 금지된 떡인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랍비들은 다윗에 대해서는 예외라고 해석했습니다. 다윗의 필요와 배고픔 때문입니다. 이것을 하가다라고합니다. 하가다는 법에 대한 적용에 있어서 역사적인 실례를 모아 놓은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제자들이 밀밭 사이로 가면서 이삭을 잘라 먹은 것은 허용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가다로 할라카를 반박한 것입니다. 

    안식일의 의미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27절). 이것도 귀한 가르침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신 것은 쉬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을 누리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라고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에게 좋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지고 사람을 정죄하는데 쓰는 것은 옳지 못한 것입니다. 안식일 안에는 그 정죄도 쉬라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죄가 사해졌습니다. 그 누구를 정죄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참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뜻에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십니다(28절).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께서는 안식일로 영광을 받으실 분이신 동시에 안식일을 성취하신 분이십니다.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라고 말씀하신 이유

    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이 진설병을 얻어 먹은 이는 아히멜렉입니다. 왜 아비아달이라고 하셨을까요? 당시에 율법학자들은 이것을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비아달 때라고 하신 것은 그가 다윗 왕 때의 대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진설병을 준 것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왕에게 준 것이라는 의미로서 아비아달 때에 준 것으로 통합되어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진설병을 준 것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마땅히 드려야 할 것을 드린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제사장이 다윗에게 진설병을 준 것은 예수님께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신 것과도 연관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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