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마가복음 3장 1-19절 | 종말론적 회복과 심판, 예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함, 택함을 받은 사람들의 임무

2024. 2. 14. 14:10성서유니온 매일성경/마가복음

목차


    마가복음 3:1-19

    찬송가 324장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2:28)"라는 말로 안식일에 대한 권위를 선포하셨습니다. 여기서 인자는 다니엘서 7장 13-14절에 나오는 종말에 임하는 메시아를 뜻합니다. 이 인자는 문자적으로 그 뜻이 사람의 아들이지만 그 의미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다니엘서에 보면 이 인자가 모든 인간과 나라와 인간의 제도들에 대한 권위를 부여 받습니다. 그러므로 이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자라고 하시고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심으로 당신님의 주권을 선포하셨습니다. 이것은 당시 사회체계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이려는 의논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6절).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셨다고 합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다시 "그 회당"에 들어가셨다는 말입니다. 원문을 보면 회당 앞에 정관사가 딱 붙어 있습니다. 여기서 "그 회당"은 1장 21절에 나온 그 회당입니다. 1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그 회당에 들어가신 날은 안식일입니다. 그러니까 그 회당에서 이미 안식일에 병을 고치신 적이 있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회당에 다시 가셨는데 이번에는 전과 분위기가 다릅니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관찰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관찰했냐면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는가 하는 것을 관찰했습니다(2절). 

     

    매일성경 | 마가복음 3장 1-19절 | 종말론적 회복과 심판, 예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함, 택함을 받은 사람들의 임무

     

    마음이 완악함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악한 의도를 다 아셨습니다. 아셨지만 손 마른 사람에게 한 가운데 일어서라고 하셨습니다(3절). 그를 공개적으로 고치신 것입니다(3, 5절).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시고 노하셨습니다(5절).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5절)"에서 완악하다(πώρωσις)는 말은 대리석처럼 단단하다라는 뜻입니다. 마음이 돌처럼 굳은 상태를 가리킵니다. 마음이 돌처럼 단단해져 있으면 가르침을 받지 않습니다. 무엇을 가르쳐도 튕겨져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신 말씀은 이미 튕겨져 나왔습니다(4절). 

    공개적으로 고쳐주시자

    예수님께서는 평소와 같이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1장 21절에서도 안식일에 귀신 들린 자를 고쳐주셨습니다. 바로 그 회장에서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고쳐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손 마른 자를 가운데 세우시고 공개적으로 고쳐주셨습니다. 그것을 본 바리새인들은 헤롯당과 함께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까 모의합니다(6절).  

    바리새인들과 헤롯당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은 당시의 체제가 유지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두 세력은 정치노선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습니다. 헤롯당은 친로마적입니다. 반대로 바리새인들은 공개적으로는 로마를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체제에서 두 세력은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는 세력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민중의 지지를 받았고 헤롯당은 정부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정치 노선이 다른 두 세력인데 예수님을 죽이는데 있어서는 힘을 합치고 있습니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예수님께서는 손 마른 사람의 손을 고쳐주셨습니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에서 회복되었다(ἀποκαθίστημι)는 말은 마가복음 9장 12절에 나오는 말입니다. 문맥은 종말을 말하는 문맥입니다.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이렇게 나오는 부분에서 아포카티스테미가 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손 마른 자를 회복시키신 것은 인간을 회복시키는 참된 안식일이 예수님 안에서 도래했다는 뜻입니다. 종말에 있으리라고 예언된 그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회복과 심판

    종말에 일어나리라고 예언된 회복이 일어날 때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해서 예수님의 물음에 잠잠했습니다. 이것은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종말의 회복에서 회복되는 사람이 있고 마음이 완악해서 심판을 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이 완악한 사람은 마음이 돌과 같아서 하나님의 아들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깨닫기는커녕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종말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살같은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믿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고 돌같은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한 자는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바다로 물러가시니

    7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르며
    8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많은 무리가 그가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
    9   예수께서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작은 배를 대기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셨으니
    10   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음이더라
    11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12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셨습니다.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7절). 예수님께서는 무리에게 휩쓸리지 않도록 바다 위에 작은 배를 대기시키셨습니다(9절).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자기들도 낫고자 하여 예수님을 만지고자 몰려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병 낫는 것을 원하셨지만 주권을 지키셨습니다. 즉 무차별적으로 하지 않으시고 고쳐주실 때에는 항상 깨닫고 믿도록 인도하셨습니다(막 9:20-22 참조). 

    귀신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경고하심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귀신들이 예수님께 엎드려 부르짖어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라고 할 때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금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 때문에 영적인 세계는 이미 재편이 되었습니다. 귀신들은 다 예수님께 무릎을 꿇어 굴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임하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당신님을 나타내는 것은 금하셨습니다. 선한 계시는 귀신들에게 맡겨진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귀신들이 선한 의도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리지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나타내시는 선한 일은 오직 예수님과 성령 하나님의 일입니다. 

    귀신들이 말하는 것을 금하신 이유

    하나님께서는 귀신들에게 묻는 것을 철저하게 금하셨습니다(신 18:11). 사울 왕은 신들린 자에게 찾아가서 자기 미래를 물었기 때문에 심판을 받았습니다(대상 10:13-14). 귀신들의 말이 다 틀리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틀리든지 맞든지 그것들에게 듣고 그것들을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금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귀신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신 것입니다(12절). 

    산에 오르사

    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16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17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18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나인 시몬이며
    19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셔서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습니다(13절). 마가복음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하면서 시작했습니다(1:1). 하나님의 아들은 곧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 나라의 왕이라는 뜻입니다(시 2:7). 예수님께서는 왕으로서 산에 오르시고 좌정하시어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어 열둘을 세우셨습니다(13-14절). 이 장면은 왕으로서 신하를 부르시는 장면과도 같습니다. 또한 왕의 명령을 전할 전령을 부르시는 것과도 같습니다(14절 하). 열둘은 택한 백성들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신 것은 하나님 백성들의 대표를 세우신 것과 같습니다. 장차 열두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할 것입니다. 그 증언을 토대로 교회가 세워질 것입니다. 

    택함 받은 자들의 임무

    열둘에게는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첫째, 예수님과 함께 있는 임무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어야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무슨 일을 행하셨는지를 증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보냄을 받는 임무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어디든지 가라고 하시는 곳에 가야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택함을 받은 사람들의 모습니다. 셋째, 전도하는 임무입니다. 이들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은 같이 갑니다. 넷째, 이들에게는 귀신을 내쫓는 권능이 주어졌습니다. 즉 이들은 귀신을 내쫓을 임무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가는 곳마다 영적인 세계가 재편되도록 하셨습니다. 교회는 영적인 권능이 있어야 합니다. 이 임무들은 지금까지 택함을 받은 백성들에게 주어져서 수행되는 임무들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부르심

    시몬에게는 베드로라는 이름을 더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돌, 바위,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에게는 보아너게라는 이름이 더해졌습니다. 보아너게는 우레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는 최조의 순교자입니다. 요한은 요한계시록을 쓴 사람입니다. 참고로 우레는 하나님의 임재에 동반되는 현상입니다. 18절에 가나나인 시몬이라고 할 때 가나나인은 아람어에서 온 말로 열심당원이라는 뜻입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인물은 가룟 유다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배반하여 팔아 넘긴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온전히 성취하시고자 다양한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구성원이 다양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다양한 사람들로 선을 이루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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