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마가복음 5장 21-34절 | 열두 해 혈루증 앓던 여인을 고쳐주신 사건의 의미

2024. 2. 21. 16:44성서유니온 매일성경/마가복음

목차


    마가복음 5:21-34

    찬송가 90장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레기온을 돼지 떼와 바다 속으로 몰아 넣으시고 사람을 무덤에서 건져내심

    예수님께서는 거라사인의 지방에서 군대 귀신 들린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군대, 즉 레기온을 당시 로마 사람들이 즐겨 먹던 돼지 떼에 들어가게 하신 후에 바다로 던져 넣으셨습니다. 그렇게 하셔서 그 귀신 들렸던 사람을 무덤에서 나와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어디든지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는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무덤 가운데 거하면서 귀신들의 괴롭힘으로 제 정신이 아니었던 사람들이 무덤에서 해방되어 온전해 집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 여자들을 고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열둘과 여자, 교회

    여기서 강조 되는 숫자는 열둘 입니다. 한 사람은 열두 살 된 소녀이고 다른 한 사람은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았던 여자입니다. 성경에서 열둘은 하나님 백성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 열두 지파, 열두 사도는 다 하나님 백성들을 상징합니다. 거기에 여자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본문에는 열둘이라는 숫자와 여자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열두 해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예수님의 능력으로 고침을 먼저 받고 그 다음에 예수님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열두 살 된 야이로의 딸은 죽었다가 살아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살리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날 교회에도 이런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리는 회당장 야이로

    21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가시니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22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23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회당장 중 야이로라는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예수님의 발에 엎드렸습니다(22절). 예수님께는 이미 큰 무리가 모여 있었습니다(21절) 야이로가 회당장이었기 때문에 큰 무리를 헤치고 예수님께로 나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야이로는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서 자기 딸의 죽을 병을 고쳐달라고 간곡히 구합니다(23절). 회당장이라는 신분을 마다하고 큰 무리를 헤치고 예수님께 털썩 엎드릴만큼 그 딸은 생명이 위태한 지경이었습니다.

    회당장의 지위

    당시 회당장은 그 마을에 하나 있는 회당의 장입니다. 그 지위와 신분에 있어서 누구에게 엎드릴 사람이 아닙니다. 그 지역에서 존경받는 사람으로서 그 지역을 대표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께 엎드렸다는 것은 사람이 지위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죽음의 비참함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속히 예수님께 엎드려야 합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대대로 교회에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다 예수님께 엎드렸습니다. 역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아는 사건은 바로 카노사의 굴욕입니다. 즉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하인리히 4세가 자신을 파문한 교황 그레고리 7세 앞에 엎드린 것입니다. 당시 상황에서 여러 가지 정치적인 문제가 겹쳐 있는 사건이지만 영적으로 본다면 이것은 큰 상징과도 같은 사건입니다.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도 영원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 교황은 그것을 권력으로 삼았지만 참 교회는 이것을 권력으로 삼지 않습니다. 오로지 지위가 높든지 낮든지 다 예수님께로 인도합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의 역할입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여자

    24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여자가 등장합니다(25절). 이 여인은 많은 의사에게 괴로움을 받았습니다.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병이 더 중해졌습니다(26절).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자 이 여인은 예수님의 옷에 손만 대어도 구원을 받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28절). 그래서 그 믿음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실행하기는 굉장히 부담스럽고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무리 가운데 끼어서

    성경에 혈루증은 부정한 질병입니다. 사람들 사이에 가면 안 됩니다. 접촉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무리가 에워싸서 미는 가운데 들어갔습니다.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왜냐하면 만약에 탄로난다면 이 여인은 사람들의 갖은 질타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정한 자와 접촉한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제물을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게 됩니다. 이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이 에워싸미는 중에 무리 가운데 끼어서(27절) 예수님의 뒤로 접근했습니다. 접근해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댔습니다(27절). 그러자 그의 병이 곧 나았고 자기도 병 나은 것을 알아차렸습니다(29절). 여인은 굉장히 기뻤을 것입니다. 여인의 믿음은 실현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 여자를 드러내시는 예수님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여인은 자기 질병을 숨기고 예수님의 옷 가에 손을 댄 후에 유유히 빠져나가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혈루병에 걸렸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면 그 사람들 모두에게 다 피해를 주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계획이 실패로 돌아갑니다. 예수님께서 갑자기 멈추셔서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라고 물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혈루증을 고치는 능력이 나간 것을 알아차리셨습니다. 

    예수님께 아뢰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음

    제자들은 그것을 몰랐기 때문에 사람들이 에워싸 미는데 왜 그런 것을 물으시는가 반문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누가 그랬는지 주위를 둘러보셨습니다. 그러자 이 여자는 더 이상 사실을 숨길 수 없다고 판단해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서 모든 사실을 아뢰었습니다(32-33절). 이제 죽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34절)"라고 말씀으로 한 번 더 건강을 선포해 주셨습니다. 또한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과 관계를 맺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혈루증을 앓던 여인을 드러내신 이유

    왜 예수님께서는 굳이 누가 그랬는지를 살피셨을까요? 여기에는 놀라운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사람이 소원이 간절하고 또 믿음이 생기면 그것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인격적 능력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소원이 이루어지면 사람은 자꾸 자기 능력에 기대게 됩니다. 그러면 이전보다 더 안 좋아집니다. 이 여자가 예수님의 옷 가에 손을 대어 병이 나은 것은 예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 예수님의 능력을 가져간 결과입니다. 모든 좋은 것은 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런데 좋은 것만 누리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좋은 것이 정말 좋은 것이 되려면 반드시 예수님과의 인격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원하신 것은 혈루증을 나은 것이 그 여자에게 정말 좋은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 여인에게 정말 좋은 일은 구원을 얻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굳이 그 여인이 스스로 자기가 한 일을 아뢰게 하시고 예수님으로부터 사랑이 담긴 말씀을 듣게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인격적 만남이 사람을 구원합니다. 

    매일성경 | 마가복음 5장 21-34절 | 열두 해 혈루증 앓던 여인을 고쳐주신 사건의 의미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는 과정에서 먼저 좋은 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좋은 일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 일은 진짜 좋은 일은 아닙니다. 진짜 좋은 일은 예수님께 내가 한 일을 아뢰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일입니다. 나에게 일어난 일을 예수님과 주고 받은 말씀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이 여자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신 것은 먼저 그 여자의 믿음을 칭찬하시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그 여자의 건강입니다(34절). 그는 예수님의 그 말씀으로 사랑을 느꼈을 것입니다. 

    스스로 부정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결국

    서두에서 말씀드렸듯이 열둘과 여자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혈루증을 앓던 여인처럼 성인이 되어 교회에 오는 분들 중에서 스스로를 부정하다고 느끼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기와 교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거룩한 곳이고 자기는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안에 발을 들려면 용기를 내야 합니다. 용기를 내어 교회에 왔다고 해 봅시다. 교회에 왔는데 신기한 일이 일어납니다. 해결되기를 간절하게 바랐던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좋은 일이 반드시 확고한 믿음으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확고한 믿음이 생기는 때는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주목하셔서 만나주실 때입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자기에게 일어난 일이 해석될 때입니다. 그 때에야 비로소 이 사람은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그 마음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이 때부터는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인을 굳이 드러내시어 그의 말을 들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신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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