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마가복음 8장 14-26절 |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과 맹인을 고치신 예수님

2024. 3. 2. 09:10성서유니온 매일성경/마가복음

목차


    마가복음 8:14-26

    찬송가 524장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바리새인들과 논쟁하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사천 명의 사람들을 먹이시고 그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8:9). 그들이 먹을 것이 없어 길에서 지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8:3). 예수님께서 먹이신 사람들은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이 사건 후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예수님과 논쟁하면서(συζητέω) 예수님께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과 논쟁을 벌인 주제는 바로 "예수, 당신은 누구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마음 속으로 깊이 탄식하셨습니다.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이 세대는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주는 때가 아닙니다. 이 세대는 믿음으로 반응해야 하는 때입니다. 설혹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주셨더라도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의 논쟁 후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배에 오르셔서 건너편으로 가셨습니다(8:13).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14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그들에게 없더라
    15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건너편으로 가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가르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바리새인들과 헤롯은 추구하는 바가 다릅니다. 바리새인은 로마를 적대하지만 헤롯은 친로마 성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두 부류는 같았습니다. 먼저 표적을 구하는 그들의 모습이 같습니다. 달마누다 지방에서 바리새인들은 표적을 구했습니다. 헤롯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복음 23장 8절에 보면 헤롯이 예수님을 보고 기뻐했다고 나오는데 그 이유는 혹시 어떤 이적이라도 행하시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바리새인들과 헤롯은 자기들의 의로 사는 사람들인 면에서 같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가지고 자기의 의로 삼았습니다. 헤롯은 성전을 건축하는 것으로 자기의 의를 삼았습니다. 셋째로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심히 반대하는 세력으로서 같습니다. 3장 6절에 보면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은 함께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 수 있을까 의논했다고 나옵니다. 그들은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로서 하나님 나라 운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반대했습니다. 자기들의 기득권에 위협이 될 것을 직감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바리새인들과 헤롯은 세 가지 측면에서 같습니다. 

    세 가지를 주의해야 함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심으로 그들의 영향을 받지 말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첫째, 불신앙으로 표적을 구하는 것을 본받지 말라. 둘째, 자기 의를 주의하라. 셋째, 하나님 나라 운동을 반대하지 마라. 이런 주의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러한 가르침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수군거리는 제자들

    16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누룩을 말씀하시자 갑자기 떡이 생각났습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떡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을 마음에 간직해서 깊이 생각했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말씀을 깨닫는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가 그것을 가르쳐줍니다. 말씀의 씨앗이 떨어지면 좋은 땅은 그것을 받아 간직합니다. 그것처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마음으로 받아서 간직하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말씀이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제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책망하심

    17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19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20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21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너희 마음이 둔하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여기서 둔하다는 말은 딱딱하다(πωρόω)는 뜻입니다. 마음이 딱딱해서 말씀이 들어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게 됩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기억도 못하고 있습니다(18절). 예수님과 그렇게 붙어 지내던 제자들도 깨닫는데 있어서는 이렇게 무능력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진리를 계속 들었지만 여전히 먹는 것에 매여있었습니다. 누룩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 아차, 떡을 안 가져왔네라고 말했고 그들의 주의와 신경은 온통 떡으로 향했습니다. 사람은 이렇게 영적인 일을 깨닫는데 있어서 전적으로 무능력합니다. 하나님께서 눈과 귀를 열어주셔야만 영적인 일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매일성경 | 마가복음 8장 14-26절 |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과 맹인을 고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다시 그들의 기억을 환기시키셨습니다(19-21절). 제자들에게는 더 이상 떡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입니다. 떡은 예수님께서 언제든지 공급해 주실 수 있으십니다. 이것이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의 특징입니다. 

    사람의 전적인 무능력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습니다(마 6:31-33).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일입니다(요 6:29). 예수님을 믿으려면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잘 듣고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제자들은 아직도 깨달음이 없었습니다. 사람의 눈과 귀를 열어서 깨닫는 것은 사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해주셔야 합니다. 이어지는 말씀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맹인을 고치심

    22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거늘
    23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24   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25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26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벳새다에 이르셨을 때에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고쳐주셨습니다. 마가는 그를 고쳐주시는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합니다. 맹인은 처음에는 명확하게 보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것을 나무 같은 것들이 걷는 것으로 보았습니다(24절). 예수님께서는 그의 눈에 한 번 더 안수해 주셨습니다. 그 때에야 모든 것이 밝히 보였습니다(25절).

    우리 눈을 여시는 과정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셔서 우리 눈을 여실 때에도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듣고 무엇인가 깨닫습니다. 그런데 그 깨달은 것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보이지만 희미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가리켜서 마치 청동거울로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고 말씀합니다(고전 13:12). 그런데 예수님과 교제하면서 말씀을 듣고 깨닫는 과정을 계속 거치면 점점 명확하게 알게 됩니다. 그것도 우리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우리 눈에 안수해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눈을 여시는 과정

    처음의 안수가 없었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안수가 없었다면 보기는 보되 사물을 제대로 분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보도록 우리가 듣고 깨닫도록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역사하셔야 우리가 밝히 보고 듣고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에게도 이런 일이 앞으로 남아 있습니다. 바로 오순절 성령강림이 그것입니다. 제자들은 지금 사물을 제대로 분간하는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성령께서 이들에게 임하셔야 밝히 보고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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