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마가복음 7장 24-37절 | 부스러기 은혜를 소중히 여긴 이방 여인, 복음이 이방으로 향한 이유

2024. 2. 29. 21:20성서유니온 매일성경/마가복음

목차


    마가복음 7:24-37

    찬송가 449장 예수 따라가며


    복음이 이방으로

    고향에서는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6:1-6).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6:44; 요 6:15 참조). 게다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7:6; 사 29:9-14). 이 모든 상황은 예수님의 발걸음을 이방으로 향하게 하였습니다(24절). 예수님의 행적은 복음의 경로와 같습니다. 복음이 이방인에게 향한 이유는 구약에서 하나님 백성이라 불렸던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복음의 경로는 예수님의 행적에 이미 나타나 있었습니다. 복음이 이러한 경로로 전파되는 이유를 사도 바울은 자녀로 시기나게 하려 하심이라고 설명합니다(롬 10:19). 

    두로 지방으로 가심

    24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25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8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30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예수님께서는 두로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두로 지방에 가셔서 한 집에 들어가셨는데 그것을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고 하셨습니다(24절). 예수님께서 숨기시려고 하신 이유는 아직 십자가의 때가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온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죄를 지적하셨습니다. 이것으로 당시 종교당국의 주목을 받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들이 곧 예수님을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선지를 두로로 정하시고 숨기려고 하신 것입니다. 

    이방 여인

    숨기려고 하셨지만 숨길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거기에 오셨다는 것을 한 여인이 들었습니다. 그 여인은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여인이었습니다. 그는 와서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엎드려서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26절). 그 여인은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었습니다. 마가가 그 여인을 수로보니게 여인이라고 소개한 것은 그 여인이 이방 사상을 가진 여인이었다는 뜻입니다. 

    이방인의 고정관념을 드러내심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좀 이상하게 대하십니다. 고쳐주시지는 않으시고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두 방향을 향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한 방향은 수로보니게 여인을 향합니다. 당시 이방인들은 각자 자기의 신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지역은 자기의 신이 관할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신에게 아무리 구해도 딸이 낫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능력이 있다고 소문이 난 예수님께 나아온 것입니다. 이런 사상을 그대로 가지고 오셔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은 유대인의 신이 아니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자녀다, 그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지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이렇게 말씀하심으로 각자의 신을 섬기는 이방인의 고정관념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유대인의 고정관념도 드러내심

    이 말씀은 또한 제자들을 향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제자들은 유대인들로서 이방인과 유대인을 구분하시는 하나님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하나님은 이방인과 유대인을 구분하지 않으시고 믿음과 인격적 신뢰를 더 우선하신다는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매일성경 | 마가복음 7장 24-37절 | 복음이 이방으로 향한 이유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훌륭하게 반응했습니다. 이 반응은 왜 복음이 이방으로 향했는지를 알려줍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께 답하기를 "주여 옳소이다마는"이라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이 옳으시다고 인정했습니다. 예수님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종교지도자들과 사뭇 다른 반응입니다. 옳으시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훌륭한 대답입니다. 자녀들은 아버지로부터 좋은 떡을 받습니다. 우리말로는 번역되지 않았지만 원어로는 "자녀의 좋은 떡"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즉 아버지가 자녀에게 준비한 좋은 떡을 개들에게 던지는 법은 없다는 뜻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자녀가 문제입니다. 자녀들은 좋은 떡을 받았지만 그것을 부주의하게 다룹니다. 그 결과 부스러기가 상 아래로 떨어집니다. 상 아래로 떨어진 부스러기는 개들이 접근해서 먹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와 사랑이라는 좋은 떡을 받은 이스라엘은 그것을 소홀히 다루었습니다. 그 결과 그 은혜가 이방인에게 미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바벨론으로 유배 상태에 처하고 또 온 땅 사방으로 흩어졌을 때 온 지역에 회당이 생겼고 그 지역에 살던 이방인들이 많이 유대교로 개종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방인들이 부스러기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이방인에게는 겸손을 일깨우시고 유대인에게는 그들의 편견을 무너뜨리심

    또 한 가지는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한 개들은 원어의 뉘앙스를 살려서 번역하면 강아지(κυνάριον)들입니다. 길에 다니면서 쓰레기를 주워먹는 부정한 개들이 아니고 집에서 기르는 애완용 강아지들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은 자녀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를 개들이 먹도록 그냥 둡니다. 그 개들도 그 집의 구성원이기 때문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말은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 지를 드러내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히 커서 이방인들도 그 은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의 말은 복음이 어떻게 해서 이방으로 향하게 되었는지를 잘 드러내 주는 말입니다. 이방인들에게는 겸손을 일깨우고 유대인들에게는 편견을 무너뜨리는 말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주도하심

    여인이 이렇게 말하도록 이끄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유대인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이방 여인의 믿음을 잘 드러내신 것입니다. 또한 복음이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된다는 것을 온전히 나타내셨습니다. 여인은 믿음대로 응답을 받았고 아이는 나음을 얻었습니다(29-30절).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로

    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32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33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35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36   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고하실수록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
    37   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복음이 이방으로 향하는 것에 대해서 계시하신 예수님께서는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셔서 갈릴리 호수로 돌아오셨습니다(31절). 예수님께서 오시자 사람들은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께서 안수해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32절).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간구에 응답하셨습니다.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가셔서 그의 귀와 혀에 손을 대시며 안수해 주셨습니다(33절). 안수해주시면서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면서 그에게 에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에바다라는 말은 열리라라는 뜻입니다(34절). 그러자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렸습니다. 못 듣고 말 못하던 사람이 듣고 말하게 되었습니다(35절). 

    이방인들이 대다수인 청중들

    이 사건에 대해서 마태복음 15장에서는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마 15:31)"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당시 청중 중에서 이방인들이 다수였음을 암시합니다. 아마도 그들은 데가볼리에서 예수님을 따라온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신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귀를 열어주셨기 때문에

    이 사건은 이방인들이 어떻게 복음을 믿게 되는지를 설명합니다.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고 깨달아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은 그들이 뭔가 유대인보다 우월해서도 아니고 그들에게 들을 귀가 있어서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귀를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즉 복음이 들어갈 때 성령께서 복음과 함께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복음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기 때문에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고 깨달아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며 믿음을 갖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자기가 믿는다고 자랑할 수 없습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귀가 멀고 말 못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깊으신 뜻대로 이방인의 귀를 열어서 그들로 먼저 복음을 믿게 하시는 것이지 이방인들이 믿었다고 자랑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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